국가인권위원회 장명숙 상임위원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설립된 독립 국가기관입니다.
정책, 조사, 구제, 교육, 홍보, 국내·외 협력 등 인권과 관련한 종합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출범 이후부터 호주제 폐지, 사형제 폐지,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 다양한 인권 분야에 대한 정책 권고를 통해 우리사회 인권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 3개년 계획에 사회적 약자인 이주민, 노인, 장애인,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돌 때 걷지 못했고, 서너 살 때도 걸으면서 종종 넘어졌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어머니께서 시골길에서 저를 업고 다니셨는데, 또래 아이들이 저를 놀리곤 했었습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자연스러워질 수 있도록, 그런 시선을 받아들이는 장애인의 태도 또한 자연스러워질 수 있도록 서로 많은 훈련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저는 경증장애인이지만, 경증과 중증을 떠나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아 왔고, 살아오면서 우리사회에 요구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생각해 왔습니다. 그것이 사회복지 전공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상임대표로 일한 바 있는데, 여성장애인의 문제는 생애주기 전체를 봐야합니다. 교육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초등학교 이하 학력이 많고, 고용 또한 어렵고, 결국 빈곤으로 이어집니다.

여성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모든 분야에 걸쳐 이뤄졌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만이 문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생애주기별 제도적으로 보완돼야만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정신적 장애인의 경우 성폭력 등 인권 침해 정도가 심각하므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합니다.

장애계의 염원과 힘을 모은 결과로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2007년 3월 6일 제정된 지 4주년이 지났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성과 중 가장 먼저 피부로 느꼈던 것은 보험 분야였습니다. 제가 1993년에 아이를 혼자 데리고 다니기 어려워 자동차를 샀는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보험사에서 가입을 거부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뒤 장애계가 보험 차별을 없애야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진정했는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를 내려 장애인이 보험에 가입하는 일이 더 쉬워졌습니다.

이밖에도 청각장애인이 버스에서 안내 문구를 문자로 볼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이 입·출금기 사용 시 음성 안내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등 많은 개선이 이뤄졌습니다.
단순히 장애인의 불편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이는 차별이다’라고 알리고, 함께 바꿔나가는 데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많이 방황했습니다. 어디에 취직해보려고 하면 ‘걸어봐라’라고 요구하는 등 그때는 삶이 먹먹하다고 느껴 집에서 자살소동도 벌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늦은 시기에 대학에 들어가서 서른이 넘어 졸업했습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돼 있고, 나이도 서른이 넘었고, 장애도 있어서 ‘내가 과연 일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일하게 됐고, 그런 제 삶을 보면서 늦는 것이란 없다고 깨달았습니다.

여성장애인은 사회 진출이 늦다고 합니다. 저도 서른 살이 훌쩍 넘어서 사회에 나왔는데, 그 전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일단은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몇 살이든, 어떤 장애든 관계없이 그때가 바로 ‘시작’이고 ‘기회’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에 온 지 얼마 되지 지나 상임위원으로서 해야 할 업무를 파악 중입니다. 아직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거창하게 말하기에는 뭐하지만, 제 삶속에서 요구하고 싶었던 것들을 짚어가며 하나씩 이뤄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여태까지 걸어온 길, 앞으로 가야하는 길, 모두 다 제 삶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다 지나고 난 뒤에는 제 삶을 글로 표현해서 전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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