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이 중심이 되는 구조부터 바뀌어야

최근 민간어린이집 교사의 아동학대 논란에 이어 급식부정 사태 등 보육서비스의 ‘질’ 제고를 주장하는 부모 및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선을 앞둔 현 시점에서, 각 정당의 후보들 또한 너나할 것 없이 ‘보육’ 분야의 공약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미래의 성장동력인 어린이를 올바로 키우기 위해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해결책으로, 전문가들은 주저없이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을 1순위로 꼽는다.

현재 시설유형별 보육 구성 비율을 보면, 국공립 어린이집과 법인어린이집 등 공공성이 비교적 강한 어린이집의 수는 전체 어린이집의 9.2%로 소수며, 개인이 설치·운영하는 어린이집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간어린이집 규모는 평균 50인 수준으로, 소규모 자본으로 진입이 가능하고 교사, 원장 기준도 어렵지 않게 갖출 수 있다. 대부분이 임대로 진입한 만큼 민간어린이집은 임대 시설 허용, 자기 자본 미고려 등으로 상당부분 수익을 내야 하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수익률이 낮은 어린이집에서는 그만큼 교사 인건비 등 보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줄어들 위험이 높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민간어린이집이 전체 보육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구조부터 뜯어 고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말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 심선혜 의장은 “보육을 민간시장에 맡겨놓고, 거기에서 보육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는 논리에는 맹점이 숨어 있다.”고 꼬집었다.

심 의장은 “민간어린이집은 수요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빚을 내서라도 개·보수를 하는 등의 과정이 불가피하고, 빚을 갚기 위한 노력과 적정이윤을 남기려고 하는 욕심이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다.”며 “급식부정, 교사 임금 착취 문제는 이로 인해 당연히 파생될 수 밖에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개인 소유의 운영구조로 관리감독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민간어린이집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전국 4만여 곳에 달하는 어린이집에 대한 지도와 감독 책임은 현재 시·군·구 공무원이 담당하고 있지만, 보육 담당 공무원 수의 제약으로 급․간식 등의 관리는 물론 아동과 교사의 허위등록 등 부정과 불법에 대한 관리가 불충분하고, 이에 대한 대응 수준이 미약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특별활동과 관련한 비용기준과 회계처리에 있어서도 투명성이 보장될 수 없는 체계라는 것.
지난 2009년 보건복지부의 보육실태 조사 결과,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에 따라 ▲영유아의 영양 및 안전 ▲보육시설의 예산 및 결산 등을 심의하는 보육시설운영위원회의 설치율이 국공립 보육시설은 98.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영에 대한 평가 역시 ‘잘 운영되고 있지 못하다’는 답변이 국공립은 14.4%, 민간은 45.4%에 달해 두 시설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렸다.

영유아를 자녀로 둔 학부모들 또한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선호하고 있는 상황이다.

8개월 된 자녀를 둔 김영주 씨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해도 오랫동안 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자리만 생긴다면 민간보다 전문성이 있고, 투명성이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는 보육 시설 확충과 함께 지난 2006년 양질의 보육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보육 프로그램 및 보육교사 등을 평가하는 ‘평가인증제도’를 시행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인증제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1년 12월 기준, 전체 어린이집의 78.6%가 평가인증을 통과하는 등 평가인증을 받은 시설의 규모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평가인증을 받지 않아도 어린이집 운영에 지장이 없고, 질적 수준이 낮은 어린이집에 대한 퇴출 기능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박차옥경 국장은 ‘평가인증제가 본연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박차 국장은 “평가인증제는 도입 초기에는 퇴출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의무사항도 아닌 상황이 돼 평가인증만으로는 보육의 질을 측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돼 버렸다.”며, “평가인증제를 의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고, 더불어 평가인증의 질도 함께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간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원장도 “정부의 말바꾸기 정책과 지나친 규제로 인해 혼란스럽다.”고 호소한다.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박천영 회장은 “보건복지부가 규제와 제도를 수시로 변경하고 바꿔 이를 따라가기 벅찬 것이 현실.”이라며 “유아 교육적 관점에서 볼 때 국공립 어린이집 등 다른 시설과 비교해 차별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힘든 부분이 많다.”고 항변했다.

재정 지원은 노림수에 불과‥ 제대로 된 정책적 지원 이뤄져야

서울시는 올해 상반기에 선정한 국공립어린이집 확충대상 95개소를 발표하고, 이 사업에 총 773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개인 소유의 공공형 어린이집 확대에 더 무게를 두겠다는 정부의 계획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보육정책과 유정민 행정사무관은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하는 데 드는 시간이나 소요되는 비용, 현재 90% 정도 가량이 민간·가정 어린이집인 현실을 고려했을 때, 국공립 어린이집만 확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저소득층 밀집지역이나 취약지역 중심으로 기본적인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계획안을 가지고 있고,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대하는 방안과 우수한 민간어린이집의 품질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 두 가지를 병행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심선혜 의장은 “부모, 교사, 사회가 전반적으로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하라는 요구가 있는데, 정부는 당장은 확충할 수 없다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며 “서울시의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방안에서 보듯 이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심 의장은 “사실 공공형 어린이집은 민간어린이집의 재산이나 운영권 등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교사 인건비 등을 지원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윤을 남기려고 하는 구조적 문제는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공공형 어린이집은 보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는 또 다른 보육문제 개선방안으로 올해부터 만 5세 담당 교사에게 처우개선비를 30만원씩 지원하고 있다. 내년에는 만 3~4세를 담당하는 교사에게도 확대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단순히 재정지원을 늘리는 것으로 보육 문제의 실마리를 풀 수 없다는 것은 정부가 올 초 시작한 무상보육 정책이 현재 좌초 상태에 놓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부는 현재 지난해 말 0~2세 영유아 전면 무상보육 정책을 지자체와 협의 없이 강행하며 예산 부족으로 무상보육 중단 위기를 맞고 있다.

학부모 허지영 씨는 “장기적이지 않고, 예산도 준비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너무 즉흥적으로 무상보육 정책을 발표한 것 같다.”며 올해 대선을 앞두고 보육정책이 정치적인 수로 흐르는 것에 대한 반감을 표출했다.

박차옥경 국장은 “우리의 목적은 단 한 가지다. ‘우리아이를 어떻게 잘 키울 것인지’. 이를 위해 교육부, 어린이집, 보육교사 등 보육주체는 각각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부모는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지 함께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각자가 알아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는 중구난방의 상황.”이라며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좋은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안정적인 보육기반을 제공하는 국공립어린이집 확충과 보육의 공공성 담보, 보육교사의 처우 개선 3가지의 대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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