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새벽 2시, 서울시 성동구 행당동의 원룸형 주택 1층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나 뇌병변장애 1급 김주영 씨가 사망했습니다.

10년 넘게 자립생활을 하며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과 장애인 권리보장 운동에 참여해온 김씨는, 전날 오후 11시 활동보조인이 퇴근 한 뒤 홀로 잠들어 있었고, 화재가 발생하자 119에 신고를 하고 원격 조종기로 문을 여는 등 탈출을 시도했지만 혼자 거동이 어려워 화재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INT-지역 주민
냄새에 일어나서 나가보니 벌써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 그때 빨리 깨서 수건으로 막고 나오면 괜찮은데 몸이 불편하니까 못 나온 거죠.

하룻밤 사이에 화재현장이 되어버린 김씨의 집, 생전에 그가 타고 다녔던 전동휠체어는 앙상하게 뼈대만 남았고,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컴퓨터 아래로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사이버대학에 다니던 김씨가 시험을 앞두고 공부하던 자료들이 남아 그의 꿈을 대신 전했습니다.

INT-활동보조인
취미생활 하러 다니셨어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셔서 그림을 보러 다니거나, 요즘은 시험기간이어서 시험공부도 하셨고요. 집도 이직을 해서 그쪽으로 맞춰서 이사하려고 이사 준비도 하고 있었고요.

김씨의 빈소는 한양대학병원에 마련됐습니다. 장래식장에 그의 이름이 쓰이고, 영정사진이 놓이자 가족과 지인들의 울음이 터져나왔습니다.

현장음- 어머니
나보다 더 잘알잖아 얼마나 씩씩하고 용감했는지, 내가 못한 것 언니들이 다 해줬는데, 왜 저기에 올라가 있어 저 아이가 왜…….

 

김씨의 소식에 더 많은 이들이 슬픔을 참지 못하는 이유는 위험상황에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INT-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희정 팀장
평소에 활동보조지원 시간이 부족해서 24시간 있을 수가 없으니까 퇴근하기 전에 주영씨가 주로 찾는 물건이나 물을 옆에 놓아주고 활동보조인이 퇴근하고 나면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든요. 더이상 중증장애인에게 이런 비극적인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장애인도 다 같은 인간이고, 함께 살 고 싶어서 나와서 생활하고 있는데, 자기가 지원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 시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은 억울하잖아요. 너무 꽃다운 나이에…….

김씨가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받아온 장애인활동지원은 매 달 363시간. 중증장애와 독거가 인정돼 보건복지부와 서울시로부터 최대한 받을 수 있는 183시간과 180시간을 각각 지원받아 하루 12시간여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혼자 물을 마시는 것도 힘겨운 김씨에게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사용해야하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고 지인들은 증언합니다.

이 또한 12만 원 가량의 본인부담금을 내야 해 김씨는 평소 큰 부담을 느껴왔고, 학교와 직장을 다니고 있어 각각 10시간 씩 추가 지원이 가능했지만 돈이 없어 포기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위험을 감수하며 살고 있는 중증장애인의 삶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INT-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이원교 회장
복지라는 것은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고, 예산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연히 국가와 정부와 사회가 고민하고 책임져야 하거든요.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다같이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한편 김씨의 죽음 앞에 장애계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제한된 시간으로 장애인을 위험에 방치한 정부의 책임이라고 지적하며 제도 확대를 촉구하는 성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어, 그간 예산을 이유로 제도 확대를 미뤄왔던 정부가 장애인의 죽음 앞에 어떠한 답변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영상촬영/ 신민철
영상편집/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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