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화재사건 남매 누나 끝내 죽음 맞이해…‘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개선 시급

▲ ⓒ안서연 기자
▲ 불길 속에서 동생(11, 뇌병변장애 1급)의 손을 꼭 부여잡고 있던 누나(13)의 손이 차갑게 식었다. 영정사진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누나. ⓒ안서연 기자
불길 속에서 동생(11, 뇌병변장애 1급)의 손을 꼭 부여잡고 있던 누나(13, 주의력결핍행동과잉장애·경계성발달장애)의 손이 차갑게 식었다.

지난 7일 오후 5시경, 병원 중환자실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던 박준희(가명) 학생이 끝내 숨을 거두고야 말았다.

지난 달 29일 화재로 유독가스에 질식해 병원에 실려온 지 꼭 10일 째 되던 날이었다. 그날 오전, 병원 측에서는 “혈압이 계속 떨어져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며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고 통보했다. 사건이 있은 후 처음으로 일터에 나갔던 남매의 아버지는 부랴부랴 병원으로 쫓아왔고, 어머니는 딸아이의 발을 붙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지난 2일 뇌사 판정을 받은 남동생은 묵묵히 누나 곁에 누워 있었다.

곁에서 이들 가족을 지켜본 새누리장애인부모연대파주지부(이하 부모연대) 회원은 “처음엔 남동생의 증세가 더 심각해 누나가 먼저 가리라곤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이틀 전, 평소 노래를 좋아하던 준희를 위해 엄마가 누워있는 아이의 귀에 mp3 이어폰을 꽂아주기도 했다.”면서 “도대체 어쩌다가 일이 이지경까지 됐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유가족들을 대신해 부모연대 회원들이 간간히 찾아오는 조문객을 맞았다. 준희의 짧은 생만큼이나 쓸쓸한 식장 안. 눈시울이 붉게 물든 부모연대 송희정 회장이 입을 열었다.

송 회장은 “평소에는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의원, 시장, 기자들이 찾아온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할 때 좀 목소리를 들어주지. 아이가 죽고 난 다음에 찾으면 뭣하냐.”며 “더 이상 장애아동들이 죽지 않도록 '눈물' 대신 '대책'을 내놓아달라.”고 말했다.

이어 “남동생이 뇌사 판정을 받은 지난 2일, 파주시 이인재 시장이 중환자실을 찾았다. 시장에게 ‘장애아동양육지원서비스을 알고는 있었느냐’, ‘부모연대가 제출한 정책제안서를 보기는 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아이가 죽게 된 게 시장 책임이냐’는 것이었다.”면서 “시장이 이토록 책임의식이 없는데, 우리는 누구에게 어려움을 토로해야 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부모연대는 지난 6일 파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장애자녀를 두고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가족을 위해 3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파주시에 무한돌봄서비스를 요구했으나 무시된 채 방치돼 왔으며, 지난해에는 장애아동양육서비스를 신청했으나, 파견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결국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파주시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무한돌봄서비스를 신청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히며 “하지만 남매 부모가 신청했다고 하더라도 장애아동이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서비스를 지원받을 순 없다.”고 설명했다.

무한돌봄서비스는 소득기준 최저생계비 170% 이하, 재산 8,500만 원 이하, 통장재산 300만 원 이하인 가정에 주 소득자가 사망·가출·행불·구금 등으로 인해 생계가 곤란할 경우에만 지원이 가능하므로,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서비스 대상자로 선정될 수 없다는 것.

이에 대해 송 회장은 “3년 전에 신청한 것은 사실이다. 아마 담당자가 바뀌면서 이전에 있었던 일을 모르는 것일 것. 이처럼 담당자가 바뀜으로써 전달체계가 제대로 구축 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꼬집으며 “당시 무한돌봄서비스가 있다는 걸 알고 파주시에서 3명의 장애아동에 대한 서비스를 지원해달라고 신청했으나, 모두 탈락했다. ‘위기가정’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얼마나 절박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장애가족을 위한 다른 방안이라도 마련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어 “탈락했더라도 꾸준히 서비스를 신청 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돌보미만 있었더라도 준희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우리가, 내가 준희를 죽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하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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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특수학교를 다니면서 표정이 밝아졌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라고 말하며 안타까워하는 부모연대 회원. ⓒ안서연 기자
파견 인력이 부족해서 지원받지 못한 장애아동양육지원서비스, 장애등급제 및 대상 제한·부족한 시간·본인부담금 등의 문제를 갖고 있는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이들 가족이 응당 누렸어야 이 제도들의 문제는 모두 ‘예산 부족’이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적은 상황.

하지만 현재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3년 장애인활동지원 예산안'을 살펴보면, 2012년 3,099억 원에서 3,214억 원으로 3.7% 인상안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서비스 수가 3% 인상한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서비스 확대는 전혀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송 회장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고 꼬집으며 “복지부에서는 국회에 이미 예산안을 제출해 이제 자기들 소관이 아니라고 하는데, 예산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 아니냐.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장애인복지정책을 고민할 때는 무엇보다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들어가야 한다. 장애아동은 스스로 자기 주장이 어려워 부모들이 대신 당사자가 되어 말하는 것.”이라며 “제발 장애아동의 환경과 서비스 욕구를 정책에 반영해달라.”고 촉구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장차연)가 지난 8일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예산확대 촉구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스웨덴의 경우 자기관리원칙에 의해 본인이 활동지원서비스의 필요성을 기술하고 그것을 사회복지사가 판단해 서비스 정도 여부를 결정한다. 영국도 마찬가지로 사회복지사 등의 전문가가 판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또한 캐나다의 경우에는 본인이 활동지원서비스 신청서를 제출하면 동료판정위원회(장애인으로 구성)에서 심사해 판정결과를 주정부에 보고하고 본인에게 통지한다. 일본의 경우는 한국과 가장 유사하지만 장애등급제에 의한 서비스 제한이 없고, 장애정도구분이 판정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나 환경과 욕구를 감안해 지자체 심사위원회에서 서비스를 결정한다.

송 회장은 “우리나라는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할 경우 등급 재판정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특히나 장애아동 같은 경우, 서비스를 받는다 할지라도 하루 고작 2~3시간 밖에 받지 못해 체계적 관리가 불가능하다.”며 “이로인해 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곁에서 함께하던 부모연대 회원은 “얼마 전 비장애인인 딸이 내게 ‘엄마, 내가 오빠 책임져야 하는 거지?’라고 묻는데, 울컥하더라. '내가 죽기 전까지 아들이 살 궁리를 마련해놓고 죽겠다' 딸아이에게 말은 뱉어놓았지만, 사실 나도 방법을 잘 모르겠다. 국가는 장애인들을 가족에게만 너무 떠맡기고 있다. 장애인들이 가족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이어 “오늘같은 경우만 해도 그렇다. 수능 날이라 학교가 쉬게 되니까, 장애아동을 둔 엄마들은 꼼짝없이 집에서 아이를 봐야 한다. 따로 맡길 곳이 없는 게 현실이다. 장례식장을 더 지키고 싶어도, 애를 혼자 두고 무언갈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장애인가족에 대한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모연대의 또다른 회원는 “모두가 충족할만한 제도가 갖춰질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줘야 할 것이 아니냐. 그리고 나서 함께 시스템을 보수하고 개선해나가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장례식장을 찾은 기자들에게 송 회장은 “이번 참사를 그저 ‘특종거리’로만 내보내지 말고, 사회 전반에 장애아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을 수 있도록 보도해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지난 2일 뇌사판정을 받은 남동생은 여전히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중환자실에서 12일째 사투를 벌이고 있으며, 어머니는 지난 7일 저녁 실신한 뒤 현재는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상태다. 수척한 얼굴로 준희의 영정사진 곁을 지키던 아버지는 긴 침묵 끝에 “나도 발 좀 뻗고 자고 싶다.”며 근심을 털어놓았다.

장애아를 둔 가족들이 마음 놓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장애인들이 생명의 위협 속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개선이 시급한 가운데, 9일 오전 11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고 박준희 학생을 추모하는 노제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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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연대 송희정 회장은 이번 사건이 그저 '특종'이 아닌, 장애아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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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의 짧은 생만큼이나 쓸쓸한 장례식장 안. ⓒ안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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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희가 생전 가장 좋아했다던 치킨과 콜라가 영정사진 앞에 놓여 있다. ⓒ안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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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6시 30분, 남매의 어머니가 힘든 몸을 이끌고 남동생를 보기 위해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있다. ⓒ안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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