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아이’ 저자와의 만남…한종선 씨, “더이상의 피해 없어야”

▲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기록한 책 ‘살아남은 아이’의 발간을 기념하기 위한 ‘저자와의 만남’이 지난 12일 저녁,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렸다.  ⓒ정유림 기자
▲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기록한 책 ‘살아남은 아이’의 발간을 기념하기 위한 ‘저자와의 만남’이 지난 12일 저녁,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렸다. ⓒ정유림 기자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기록한 책 ‘살아남은 아이’의 발간을 기념하기 위한 첫 ‘저자와의 만남’이 지난 12일 저녁,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렸다.

지난달 26일 발간된 ‘살아남은 아이’는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살아남은 피해자 한종선 씨, 한국예술종합합교 영상원 전규찬 교수, 인권활동가 박래군 씨가 저자로 참여해 12년 동안 무자비한 폭력과 인권유린을 자행한 부산 형제복지원의 실태에 관해 낱낱이 기록한 책이다.

이날 ‘저자와의 만남’ 행사의 사회를 맡은 한겨레신문 안영춘 기자는 “정규학력을 가진 사람이 책을 집필하기에도 어려운데,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한 씨는 생생한 문체로 글을 써 내려갔다. 누군가가 반드시 환기시켜야 할 문제를 당시 피해자가 터뜨렸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시대에 기자같이 주로 관찰자들이 기록한 것을 ‘저널리즘’이라 평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 씨가 쓴 이번 책이야말로 진정한 ‘저널리즘’이라 평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안 기자는 “형제복지원은 철저하게 원장과 중대장, 소대장, 총무 등의 직급에 따라 상명하복 시스템으로 돌아가는데, 다른 시설들은 조직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이에 박래군 인권활동가는 “형제복지원은 ‘감옥’과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규정지으며, “형제복지원의 시스템은 약자를 통제하는 전형적이면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수법이다. 또한 형제복지원은 폭력적이라는 특징 외에도 끊임없는 세뇌와 우상화를 통해 원장에게 감히 도전할 수 없도록 강압했다. 당시 부랑인 수용시설과 장애인시설이 대개 그랬을 것이고, 그것을 가능토록 한 것은 바로 ‘족벌체계’였다.”고 꼬집었다.

이어 “시설 조사를 하며 느낀 공통점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이 내일 죽을지 모르는 그 안에서도 수용자들끼리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부분을 더 찾으려 한다. 이 체계가 한번 깨지면 쉽게 무너지는데 오래 하면 할수록 벗어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대형시설 배불리기는 '아직도'

‘복지원을 나온 후 국가라고 하는 권력기구가 어떤 작용을 했는지 느낀 적이 있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한 씨는 “형제복지원은 ‘전시행정’의 표본이었다.”고 일축했다.

한 씨는 “여러분 각자 개인이 형제복지원에 잡혀갔다고 생각해 보라. '나는 평범한 일반 국민이다’라고 복지원에 얘기한들 믿겠나. 여러분이 바로 형제복지원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윗분들이 ‘이렇게 하면 잘 되겠지’라고 정책을 세우면 인권단체에서 계속 수습하고 있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 '살아남은 아이'의 저자인 인권활동가 박래군 씨  ⓒ정유림 기자
▲ '살아남은 아이'의 저자인 인권활동가 박래군 씨 ⓒ정유림 기자
박래군 인권활동가는 “국가가 관리감독을 하면서 시설의 문제를 드러내고 원생들의 형편을 살펴야 하는데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국가와 경찰이 나서서 그 원장의 빽이 되어준 꼴.”이라며 “양지마을 사건 같은 경우는 우리가 정말 철저하게 조사했다. 진술서, 증언서 다 있었는데 집단폭력 같은 죄는 다 무시하고 공금유용 및 횡령죄만 인정했다.”고 분노했다.

이날 한 씨는 복지원 이후의 삶을 ‘천국’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형제복지원에서의 삶은 지옥과도 같았다는 뜻. 한 씨는 형제복지원이 폐쇄된 뒤 서울 소년의 집으로 이송된 후 서울 마리아 갱생원을 거쳐 지난 1992년 사회에 나왔다.

박래군 인권활동가는 현재 연간 3,000명을 수용하는 종합복지시설인 충북 음성의 ‘꽃동네’를 예로 들며, 대규모 복지시설은 ‘절대 천국이 될 수 없음’을 밝혔다.

박 활동가는 “대형시설들 같은 경우에는 천국이 될 수 없다. 요즘은 시설 자체가 소형화, 탈시설화 되고 있다. 마리아갱생원이나 소년의집 수녀님들과 이야기할 때 처음에는 시설생활자들의 문제의식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들이 수동화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며 “사회복지시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대규모 시설로 자리잡은 ‘꽃동네’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어떻게 해체시켜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시설은 폐쇄됐지만 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

박 활동가는 시설이 폐쇄된 후 국가가 취한 행동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었다는 발언을 이어나갔다.

박 활동가는 “형제복지원이라는 지옥을 보장해 준 것도 정부고, 폐쇄 후 책임을 회피한 것도 정부다. 정말 너무 무책임했다.“며 ”트라우마 치료와 맞춤형 정책이 필요한 사람들을 그대로 거리에 돌려보낸 것 자체가 문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살아남은 아이'의 저자인 한종선 씨  ⓒ정유림 기자
▲ '살아남은 아이'의 저자인 한종선 씨 ⓒ정유림 기자
안 기자는 “지금도 복지원 운영자였던 사람이 어마어마한 권력을 쥐고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며 “시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과 시민들이 사건을 수용하는 데 있어 사건의 탈정치적 성격 때문에 부담감 없이 가볍게 인권감수성을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 씨도 “형제복지원 사건은 나의 일이 아닌 너의 일이다. 이미 터져버린 형제복지원 사건을 강력한 표본으로 삼아 처음부터 꼼꼼히 사건에 대해 짚어보고, 제2의 형제복지원 사건이 재발하지 않게 우리는 막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건의 의미에 대해 짚어달라는 사회자의 말에 박 활동가는 “결론적으로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활동가는 “복지원 운영자였던 박인근은 지금도 당시의 사건을 반성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금 언론사에서 책 발간 후 이 사건에 대해 많이 다루고는 있는데 또 큰 사건이 나오면 덮힐까봐 걱정스럽다.”며 “국가가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기 보다는 정책적으로 관조한 것이기 때문에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뒤이어 가진 독자와의 질의응답 시간에서 자신을 43기 사법연수생이라고 밝힌 한 시민은 “형제복지원 관련된 국가기록원 기록을 보게 됐다. 처음에는 시설문제로 생각했다가 국가의 묵인 등이 반복적으로 나타난 기록을 보게 된 후 이 사건의 본질은 ‘과거사’가 아닐까 생각했다.”는 의견을 밝혔다.

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시민도 독자로 참석해 “역시 과거사 차원에서의 해결밖엔 답이 없다. 국가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해 민주화 운동을 했던 분들의 명예는 많이 회복된 반면, 국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폭압을) 당한 사람들은 크게 돌아온 것이 없다.”며 “이분들의 명예를 어떠한 식으로든 돌려줘야 하고, 이를 위해 과거사 정리와 관련된 법이 입법화 된다면 잘 달성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복지원을 나온 후 강연을 다니면서 치유의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데, 그러한 와중에 느낀 점이 무엇인가‘라는 한 독자의 질문에 한 씨는 “일반 사람들은 드러냄으로 인해 치유가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직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상태에서 지금 상태는 치유 단계가 아니라 더 이상 곪아터진 부분을 더 크게 번지지 않게 애쓰고 있는 단계.”라며 “'선동정 후대책'이 아니라 선대책 후 그것이 안됐을 경우 피해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 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살아남은 아이’ 다음 저자와의 만남은 이번 달 22일 오후 3시, 카톨릭 청년회관 바실리오홀에서 개최된다.

▲ '살아남은 아이'의 저자 한종선 씨가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형제복지원에서의 기억을 설명하고 있다.  ⓒ정유림 기자
▲ '살아남은 아이'의 저자 한종선 씨가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형제복지원에서의 기억을 설명하고 있다. ⓒ정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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