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복지법’ 아닌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수급자 기준 적용

서울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영양사로 일하고 있는 A씨는 식단을 짤 때마다 골머리를 앓는다. 학기 중에는 아이들이 학교 급식으로 먹는 점심값을 아껴 저녁 식사 때 조금 더 나은 급식을 공급한다고는 하지만, 정부에서 제공받는 월 주·부식비 12만8,000원만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재료는 한계가 있다. 그만큼 기업의 후원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A씨는 “일반미 20kg 한 포대에 4만5,000원씩 하는데 그거 가지고 애들 얼마나 먹겠나, 그 식단가에. 지금 아시다시피 채소와 고기 물가가 말도 못하게 오르고 있지 않나. 참 힘들다.”고 운을 뗐다.

방학 때 모든 아이들에게 세 끼를 공급하게 되면 아무래도 정부 지원금을 쪼개 쓸 수밖에 없어 후원받는 물품들로 식단을 구성할 수 밖에 없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현재 이곳에서 생활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모두 80여 명. 부모의 실직이나 이혼 등으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다. 지금은 학기 중이어서 모든 아이들이 세 끼 식사를 하지 않지만, 방학 때에는 아이들에게 세 끼 모두 챙겨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업체에서 후원받고 있는 라면 등의 면류를 더 먹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A 영양사는 “아이들이 지금 자라는 학령기이기 때문에 2,200~2,600kcal 이상을 지급해야 하고 단백질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며 “솔직히 이 단가로는 아이들에게 충분하게 식단을 제공하긴 힘든 실정.”이라고 호소했다.

최근 아동복지시설의 한 끼 급식단가를 3,000원 선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관련단체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예산안에 상정된 한 끼 밥값은 고작 1,500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정부가 아동복지시설과 지역아동센터의 급식단가를 차등적용 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민주통합당 최동익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방과후 지역사회 아동의 보호 및 교육, 건전한 놀이와 오락의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지역아동센터의 경우 한 끼 급식 단가가 3,000원으로, 아동복지시설 한 끼 급식단가의 2.1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이 아동복지시설과 지역아동센터의 급식단가가 차등적용된 것은 급식정책에 대한 기준이 부재한 정부의 정책 때문이다.

정부는 지역아동센터의 급식비를 ‘아동복지법’에 따라 지원하고, 사회복지시설 생활자들에게는 아동과 노인 등 급식대상자의 구분 없이 급식단가를 ‘기초생활보장법’ 수급자 기준인 1,420원으로 동일하게 책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아동복지협회는 지난 7월, 보건복지부에 “현재 아동복지시설에 지원되고 있는 1인당 한 끼 지원단가 1,148~1,420원으로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양섭취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저소득층 가정의 아동 1인당 한 끼 급식 단가를 3,000원 이상으로 산정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한국아동복지협회 김홍기 정책위원장은 “지난 2010년 대비 2011년에는 시설아동의 한 끼 급식단가가 33원, 그리고 작년 대비 2012년에는 55원이 인상됐다. 안타까운 것은 시설에 있는 아이나 가정에 있는 아이, 지역아동센터에 있는 아이들에게 밥은 똑같이 먹여야 하는데 왜 이런 차별이 주어지는지 정말로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역아동센터에게 한 끼 급식단가가 3,500원이 지급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3,500원 가지고 나가서 밥 한 끼를 사먹을 수 있겠나. 하다못해 분식집에 가서 라면 한그릇을 먹어도 3,500원이 넘는데 지역아동센터와 비교했을 때 시설의 아이들은 한끼에 1,420원으로 어디 가서 뭘 먹겠나.”라고 하소연했다.

현재 아동복지시설의 급식단가를 지역아동센터 등과 맞춰 지급하면 연간 295억 원 정도가 추가 소요되는 상황이지만, 보건복지부는 당장 시설아동의 한끼 급식비를 올릴 생각은 없으며 30인 미만 시설에 한해 식비 인상을 검토해 보겠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 박성민 사무관은 “현재는 최저생계비 관측 시 별도로 시설 유형별로 차이를 두고 있지 않다. 내년도가 최저생계비 계측 연도인데 그 때 시설 유형별로 특성을 고려해 식비를 적용할 수 있을지 내부적으로 검토할 생각.”이라며 “지금은 내부적으로 30인 미만 시설에 한해 식비를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아동복지시설과 지역아동센터의 단순비교는 어렵다."며 "아동복지시설의 식비 인상 건에 대해서는 현재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동복지지설 같은 경우에는 하루에 세 끼 다 식사하고, 휴일 상관없이 월 90식 제공을 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와 비교했을 때 더 많은 식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복지부의 항변이다.

현재 대선을 앞두고 예산안 처리가 뒷전으로 밀려난 가운데, 아름다운재단은 내년 1월 말까지 시민들의 기부참여를 통해 시설아동에 급식비를 지원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아름다운재단 측은 몇 군데 시설을 지정해 정부예산과 현실과의 차액을 이른바 ‘시민예산’으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11월부터 한 달 간 홈페이지나 전화 모금, 문자 기부를 통해 받은 시민들의 기금이 벌써 1억2,000여 만원이나 모였다.

재단 측은 캠페인의 기획 취지에 대해 “요즘 초등학교 급식도 한 끼에 2,580원, 중학교 급식도 한 끼에 3,200원 정도 되는데 왜 시설 어린이들은 1,400원짜리 밥을 먹어야 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캠페인을 출발하게 됐다.”고 밝혔다.

아름다운재단 캠페인팀 서경원 팀장은 “정부에서 보호를 받아야 하는 요보호아동들에게 투여될 정부 예산이 현재 100원 인상안이 상정된 상태에서 일단은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시민예산을 편성하고, 그 예산을 통해 이렇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정부에게 알리고 싶다. 시민들의 변화에 대한 갈망이 실제 정부예산이라는 부분으로 반영이 되길 바란다.”며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했다.

아동복지법 제2조 1항에는 ‘아동은 자신 또는 부모의 성별, 연령, 종교, 사회적 신분, 재산, 장애유무, 출생지역, 인종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받지 아니하고 자라나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오늘도 현재 280여 곳의 아동생활시설에서 약 1만6,000인에 달하는 어린이들이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한창 정신없이 클 아이들에게 간식을 충분하게 주지 못하는 마음, 얼마나 안타까운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우유라도 하나 줄 수 있는 환경을 빨리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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