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아이' 저자와의 두 번째 만남…참석자들, "거대한 담론 속에 잊고 있었던 진실 전한 책"

‘살아남은 아이’의 두 번째 ‘저자와의 만남’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가톨릭청년회관 바실리오홀에서 개최됐다.

▲ 이날 '살아남은 아이 저자와의 두 번째 만남' 사회를 맡은 엠네스티 고은태 국제위원  ⓒ정유림 기자
▲ 이날 ‘살아남은 아이 저자와의 두 번째 만남’ 사회를 맡은 엠네스티 고은태 국제위원 ⓒ정유림 기자
이날 행사에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이자 책을 직접 쓴 한종선 씨, 엠네스티 고은태 국제위원, 영화감독 변영주 씨가 참석해 책의 의미에 대해 독자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를 맡은 고은태 위원은 “글을 읽으며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추천사를 써야 해 간신히 숙제를 하는 것처럼 책을 다 읽었다.”고 운을 뗀 뒤 “우리가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은 이러한 고통스러움을 직면하는 ‘용기’다. 다같이 모여 사건을 되짚어보며 시대의 증인이 되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복지원의 기억을 서술해달라는 고 위원의 부탁에 한 씨는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 씨는 “이 책의 내용이 솔직히 복지원의 정보를 다 끄집어냈다고 표현하기는 힘들다. 백분의 일 정도로 추려서 냈다고 보면 된다.”며 “복지원에 들어갔을 당시 나이가 어려서 견뎠는데, 지금이라면 고문과 성폭행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그 곳에서 아마 목을 매고 죽었을지 모른다. 사람이 살 곳이 아니었다.”고 일축했다.

▲ 영화감독 변영주 씨  ⓒ정유림 기자
▲ 영화감독 변영주 씨 ⓒ정유림 기자
변영주 감독은 “책을 읽으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 밝혔다.

변 감독은 1990년대, 일본군 위안부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를 제작한 바 있다.

변 감독은 “한 위안부 할머니가 끌려가면서 봉선화를 봤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시기는 겨울이어서 꽃이 필 수 없는 계절이었다.”며 “어린 시절의 기억은 굉장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할머니가 봉선화를 기억했다는 것을 무시할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기억 언저리에 있던 봉선화가 무엇이었는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관적인 기억들 너머의 객관적인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으면 그 사건을 완벽하게 복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변 감독은 “1995년에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를 처음 개봉할 때, 젊은 친구들이 왜 이런 영화를 만들어서 날 고통스럽게 하느냐고 했는데 그것은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두려웠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영화 ‘화차’의 경우 불행한 삶을 살았던 주인공을 보며 관객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 불행은 주인공이 ‘선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제복지원 사건은 ‘강제화’된 불행이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괴로울 수밖에 없었고, 더 강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평했다.

변 감독은 책을 읽으며 ‘왜 우리는 거대담론에 대한 투쟁만 고민했고, 사회적인 문제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에 관한 성찰도 하게 됐다고 전했다.

국가폭력은 아직 '현재진행형'…끊임없는 '과거 성찰' 필요

고은태 위원은 “국가폭력은 일회성이 아니라 계속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밝혔다.

고 위원은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비롯해 6.25 전쟁 중 국민방위군 사건 등의 국가폭력은 굉장히 보편적이고 무차별적으로 저질러지는 것이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는 영화 ‘남영동 1985’에서 고문경찰 역할을 한 배우 김의성 씨도 참석해, 책을 읽은 감상평을 전했다.

김 씨는 “책을 읽고 한종선 씨를 만나는 게 두려웠다. 어렸을 때 짐승의 시간을 보냈었고, 몸과 마음의 상처를 지니고 있는 젊은이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김 씨는 “이 책의 부제인 ‘우리는 어떻게 공모자가 되었나’라는 문구를 심히 공감한다.”고 밝혔다.

김 씨는 “책을 보면 복지원 원장은 매년 15억에서 20억이나 되는 돈을 국가에서 받아 거의 대부분을 착복하고,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고도 지역의 유지로 떠받들어졌다. 받은 돈은 말단공무원부터 국회의원까지 광범위하게 퍼졌을 것이고, 그 부스러기는 어떤 식으로든 부모님과 나까지 떨어졌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 우리 사회에 속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아주 구체적인 ‘공모자’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열심히 학생 운동권에 발을 걸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소련이 무너지고 난 뒤 사상적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그래서 기껏 결심한 것이 사회적인 삶을 살지 말고,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남에게 폐 끼치지 말고 살 것’을 다짐한 것이 돌파구였다.”며, “그런데 내 바로 옆에서 이웃들이 갇혀 지냈다니, 책을 읽으며 뼈저리게 고통스러웠다. 대선 후 이제 다른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든 손을 잡고 살지 않으면 내 삶이 무의미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고 위원의 ‘복지원 폐쇄 후 사회 적응 과정’을 묻는 질문에 한종선 씨는 “내가 일반인과 지금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해서 다들 고맙다고 말하는데, 아직도 사회에서는 나를 비롯한 시설에서 나온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손가락질 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철이 없을 때 그곳에 들어갔기 때문.”이라며 “철있을 때 (시설에) 들어간 사람들은 피해의식이 굉장히 심하다.”라고 전했다.

▲ '살아남은 아이'의 저자인 한종선 씨  ⓒ정유림 기자
▲ ‘살아남은 아이’의 저자인 한종선 씨 ⓒ정유림 기자
뒤이어 가진 독자와의 대화에서 한 남성 독자는 책에 언급돼 있는 ‘기초생활수급권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한 씨는 “3인 가족 기준으로, 우리 집은 누나와 아버지가 중증장애인이기 때문에 대략 98만 원 정도가 나오는데 병원비를 빼고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58만 원 쯤 된다. 어떤 이들은 왜 나에게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않느냐고 묻는데, 만약 내가 3인 가구 최저 생계비 이상으로 돈을 벌게 되면 우리 가족 모두 기초생활 수급자에서 탈락해, 일을 못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이어 한 씨는 “지금 있는 복지제도는 ‘눈가리고 아웅’식.”이라고 비판하며, “중증장애인 가정의 자녀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러므로 중증장애인에게 의료혜택은 꾸준히 지원해주되, 부양의무자 기준은 빼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 씨는 독자들에게 ‘큰 것을 보지 말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 씨는 “사실 책이 많이 팔리고 안팔리고는 중요한 게 아니고, 이 사건이 사회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 씨는 “지금 저의 글을 읽고 ‘도가니 사건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도가니사건의 피해자에게는 정말 실례인 것이다. 그 피해는 살아가면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는 ’제2의 한종선‘이 생기지 않게 성숙된 시민의식으로써 우리를 도와달라.”라고 부탁했다.

한 여성독자는 “영화를 봐도 기승전결 구조가 있는데 이 사건은 책 어디를 봐도 결론이 없다. 박근혜 당선인이 ‘쌍용차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힘쓰겠다’고 하는데 아직 끝나지 않은 ‘형제복지원 사건’은 왜 신경을 쓰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라고 일갈했다.

이에 한 씨는 “박 당선인이 누차 해왔던 ‘과거는 잊고 미래로 가자’라는 말은 과거의 성찰 없이 또다시 그 일을 되풀이하자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어렸을 때 복지원에 잡혀가 어른이 돼 사회에 나왔을 때는 이미 공소시효가 끝나 있었다. 법이 강제로 용서해 준 것.”이라고 분노했다.

‘어렸을 때의 꿈이 무엇이었나’라는 한 독자의 질문에 한 씨는 “복지원에 있었을 때는 이 곳을 나가면 중국집을 차려 자장면을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는 게 첫 번째 꿈이었고, 책을 쓰면서는 가족을 복원하는 것, 더 나아가 일이 순차적으로 잘 해결된다면 복지시설들을 찾아다니며 곧 사회에 나올 어린이들에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식’이나 ‘사람을 믿어야 하는 관점’ 등을 이야기해 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변 감독은 “‘남영동 1985’를 보면서 ‘나도 저 형사라면 저렇게 행동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는데, 사람은 너무나 쉽게 괴물이 될 수 있지만 누군가가 시켰더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잘못된 명령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으면 심장에서 단호해져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추후사회에서도 그에 대한 처벌은 행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살아남은 아이’의 저자와의 만남은 내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 지난 22일 개최된 '살아남은 아이 저자와의 두 번째 만남'에는 추운 날씨 속에서도 60여 명의 독자들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정유림 기자
▲ 지난 22일 개최된 ‘살아남은 아이 저자와의 두 번째 만남’에는 추운 날씨 속에서도 60여 명의 독자들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정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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