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노숙인 인권 후퇴 권고, 국가인권위원회를 규탄한다!

 

어제(5일) 국가인권위는 “노숙인 인권 상황관련 쟁책 개선 권고”를 결정, 발표하였다. 인권위는 “노숙인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하여” 복지부장관, 고용노동부장관, 국토해양부장관, 광역자치단체장에게 정책 개선을 권고하기 위한 것으로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권고가 인권위가 말하는 노숙인 인권의 개선은커녕 오히려 인권을 후퇴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인권위는 ‘주문’을 통해 광역자치단체의 장에게 “노숙인의 음주행위에 대하여 지정된 장소에서 하도록 권장하는 등 무분별한 음주행위에 대한 계도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였다. 또한 ‘소결’을 통해 “역 주변 등 노숙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유발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 대한 음주제한 구역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구체적으로 장소를 특정하기까지 하였다.

반면, 인권위는 동 권고의 ‘이유’에서 노숙인 관련 정책이 “권리의 보장에서 접근하기보다는 노숙인에 대한 관리정책으로 접근해 왔다”고 평가하며, “‘노숙인’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집단적 낙인”은 “집단적 차별로 변이”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이렇듯, 노숙인 관리정책과 노숙인에 대한 집단적 낙인을 우려한다는 인권위가 결국 채택한 방법은 소위 ‘음주금지구역’이란 것이다. 술 마시는 노숙인들로 인해 노숙인들의 이미지가 안 좋으니 술 마시는 모습을 감추라고 권고한 것이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러나 노숙은 알코올 중독이라는 원인에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인과관계를 볼 때, 노숙장기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알코올과 같은 중독성 질환은 물론 각종 건강상 위기상황에 노숙인들은 처하게 된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은 중독질환 치료를 위한 의료지원체계를 강화하고, 지역기반 알코올 질환관리대책(알코올상담센터의 확대 설치 등)이 마련되어야 하며, 인권위는 이 부분의 허술함을 지적했어야 했다. 병을 숨기는데 급급할 게 아니라 적극적인 치료 재활대책 마련을 주문했어야 했다.

또한, 위 정책 권고는 작년 1월 30일 부결된 인권위의 “노숙인 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 권고안”의 후속작업이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권고안은 철도공사의 야간노숙행위 금지조치가 인권침해적 속성이 있고, 노숙인의 탈노숙 의지를 감퇴시키므로 전면 재검토할 것을 주문하였다. 그러나 현병철 위원장은 서울역 노숙행위 금지조치에 따른 문제를 “시급한 것 같지는 않다. 시급했으면 뭔가 일이 나지 않았겠는가”라며 희화하였고, 결국 의결을 통해 권고안을 부결, 추후 노숙인 정책 개선 권고 작업을 진행하도록 지시하였다.

서울역 야간노숙 금지조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의 후속 결과물이 결국 역 주변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에 대한 통제로 되돌아 올 기막힌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인권위는 철도공사의 하위 파트너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것인가? 서울역에서 내몰린 것도 모자라 이제는 또 다른 게토를 만들고 노숙인들을 가둬두려는 것인가? 철도안전법을 근거로 한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 지하철역사 통로 심야시간 폐쇄, 서울시의 노숙자율금지구역지정 등으로 노숙인들의 운신의 폭은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

최근에는 지자체마다 공원, 정류장 등을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하는 조례가 속속 제정되고 있다(서울의 경우 12개구에서 조례 제정). 인권위의 권고가 없더라도 노숙인들의 음주를 제한할 제도적, 기술적 장치가 이미 완벽한 상황에서 내려진 이번 권고는 자칫 ‘노숙금지구역’의 전국 광역단위로의 대량 지정으로 귀결될 우려가 다분하다.

이렇듯 노숙인 인권에 상당한 위해를 가할 권고를 내린 인권위는 정작 정부부처에게는 하나마나한 권고로 일관하고 있다. 의료급여 선정기준(시설입소 3개월이상, 건강보험 6개월 이상 체납자 등의 기준)과 진료제한(지정병원제 운영)과 같은 핵심 문제를 누락한 채 의료권을 보장하라거나, 1인가구용 주거취약계층 임대주택 공급 부족(2012년 전국공급분=36가구)과 같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 채 주택형태면에서 이미 과잉인 가족단위 거처마련을 권고하고 있다. 즉, 인권위는 정부․지자체에 노숙인 복지를 강화하게 하기 위한 아무런 하중도 주지 않은 채 노숙인들을 통제할 수 있는 근거만을 선물한 것이다.

우리는 작년 서울역 야간노숙행위 금지조치 재검토 권고의 부결 이후, 인권적 가치의 실현은 오히려 인권위와 반목하는 데 가깝다는 참담함을 토로한 바 있다. 나아가 어제의 정책 권고는 이 판단을 더욱 더 확고하게 하였다. 노숙인에 대한 관리와 집단적 차별을 주문한 어제의 권고 이후, 노숙인 인권 개선을 위한 일련의 활동에 인권위가 개입할 여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인권의식이 실종된 인권위는 노숙인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제발 침묵하라. 그것이 현 인권위가 노숙인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선의이다.

 

2013. 2. 6.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방침 철회/공공역사 홈리스지원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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