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침묵’, 그 속살을 들여다보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에 따르면, 척수장애인 중 90% 이상이 사고 등으로 척수가 손상됐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교통사고로 인해 사고를 당했다. 아무 불편함 없이 몇 십년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지 또는 하반신이 마비된다면, 그로인한 불편과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할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장애로 인해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딪히다 보면 성생활도 자연히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과연 척수장애인에게 있어 성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하는 영역인 것일까?

2부 “척수손상 후 ‘성관계’ 괜찮은 걸까요?”

▲ 안권수(36, 척수장애 1급), 이현숙(34) 부부와 딸 안시은(4) 어린이.
▲ 안권수(36, 척수장애 1급), 이현숙(34) 부부와 딸 안시은(4) 어린이.
“감각이 마비됐는데, 성욕이 생길까?”

지난 2002년 교통사고로 흉수 5번이 손상된 안권수(36, 척수장애1급) 씨는 “사고가 나고 4개월 쯤 흐른 뒤, 재활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다신 예전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동안 당연스레 해왔던 모든 일들에 있어서 걱정과 두려움이 앞을 가렸다. ‘성생활’도 그 중 하나였다. ‘가슴 밑으로는 전혀 감각이 없는데 과연 예전처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의 막막함을 토로했다.

그 순간, 안 씨의 곁을 지키던 사람이 바로 지금의 아내인 이현숙(34) 씨다. 이 씨는 “1년쯤이 지나서야 사고 후 처음으로 남편과 잠자리를 함께 했다. 다쳤다는 충격에 아무런 생각도 못할 줄 알았는데, 그날 ‘줄곧 너를 만지고 싶었다’라는 말을 하더라.”며 “그제서야 감각은 마비됐어도 마음은 똑같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국립재활원 성재활실 유정아 상담실장은 “장애를 입은 초기에는 신체적인 요인, 먹는 약의 요인으로 인해 많이 우울해지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손상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성적 욕구가 감소되는 경향이 있지만, 7~8개월이 지난 다음부터는 대부분 성적 욕구를 느끼기 시작한다.”며 “실제로 척수손상을 입는다고 해도 성적 욕구까지 손상을 입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남성척수장애인 75% ‘발기’ 문제 겪어…해결 가능

하지만 두 사람의 성생활은 쉽지 않았다. 안 씨는 하반신에 감각이 전혀 없는 상태라 발기가 되지 않고, 됐다 하더라도 지속 시간이 짧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약물치료’와 ‘주사’다.

지난 2011년 국립재활원 성재활실에서 발간한 ‘장애인 성재활 가이드북’에 따르면, 발기부전은 남성척수장애인들이 고민하는 가장 큰 성 문제로, 남성척수장애인 100인 중 25인 정도만 성교가 가능할 정도로 발기가 되며, 50인 정도는 발기가 되기는 하나 충분히 딱딱하지 않거나 지속시간이 짧아서 성교가 안 되는 불완전 발기상태다. 그리고 나머지 25인 정도는 발기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발기문제에 있어서 의학적인 도움이 필요한 남성척수장애인이 75%가 되는 셈이다.

유 상담실장은 발기부전을 해결하는 일차적인 방법으로 먹는 약을 추천했다. 발기를 유발하는 약으로는 비아그라, 시알리스, 레비트라 등이 있으며, 성생활을 하기 전에 복용했을 경우 70% 이상이 효과를 볼 수 있다. 먹는 약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을 시에는 음경해면체 부분에 직접 주사를 놓는 방법이 있으며, 이 경우 90% 정도가 충분히 발기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음경진공흡입기 등의 방법이 있으며, 이러한 방법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 경우 최후의 방법으로 음경보형물 삽입의 수술방법이 있다.

이처럼 발기부전은 의학적인 도움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므로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아예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단, 척수손상 후 발기기능의 회복은 6개월에서 2년에 걸쳐 이뤄지므로 발기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2년까지는 기다릴 필요가 있으며, 수술 등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그 후에 고려해도 늦지 않다.

성관계 도중 ‘실금’ 생기지 않도록 장·방광 비워둬야

다음으로 안 씨가 토로한 어려움은 바로 ‘실금’의 문제다. 안 씨는 “척수장애인은 소변이나 대변을 비장애인처럼 보지 못하다보니 성관계 도중 소변이 마렵거나 실제로 나오는 상황도 발생했다.”며 “성관계는 서로 좋아서, 좋은 면만 보여주면서 하게 되는 건데 실수를 하다보니까 자존심도 상하고, 수치심도 느끼게 되더라.”고 털어놓았다.

▲ 국립재활원 성재활실 유정아 상담실장.
▲ 국립재활원 성재활실 유정아 상담실장.
이같은 문제에 대해 유 상담실장은 “우선 실금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성생활 2시간 전부터는 수분섭취를 제한하고, 성생활을 갖기 이전에 넬라톤(Nelaton catheterization, 소변을 배출시키기 위해 요도에 관을 넣어 주는 행위)을 통해 소변을 다 빼주고, 장을 비워둔 상태로 성관계를 갖는 것이 좋다.”고 권유했다.

이어 “만약의 요실금을 대비해 성행위 전에 미리 엉덩이 밑에 패드나 수건을 깔아 두고, 혹시나 도중에 실수를 하게 되더라도 사전에 배우자와 충분히 얘기를 해뒀다면 당혹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씨는 “우리 부부 같은 경우, 분위기가 무르익은 상태에서 갑자기 소변이 마려우면 어색하긴 하지만 불을 켜고 자연스럽게 넬라톤을 한다.”고 밝히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는 조금 쑥스럽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상대방이 마음 상하지 않도록 받아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감각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경계선, ’제2의 성감대’ 될 수도

하지만 이같은 문제들을 해결한다고 해도 성기부위의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성기부분을 자극한다고 한들 과연 성적인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안 씨는 “사고 전과 똑같은 성적 느낌을 받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다만 성생활을 통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척수장애인은 성적인 영역에 있어 언제나 ‘불만족’인 상태로 머물러야 하는걸까?

▲ 한국척수장애인협회에서 2012년 9월~11월 전국의 척수장애인 303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생활 만족도’ 조사 결과. 출처/한국척수장애인협회.
한국척수장애인협회가 지난해 9월~11월까지 전국의 척수장애인 303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척수장애인 욕구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35%가 매우 불만족이라고 답했으며, 보통이 29.3%, 불만족이 27.9%, 대체로 만족이 1%로 나타났다. 약 63%가 성생활에 대해 불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설문조사에 응한 대상자에게 ‘성재활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전문가 상담이 31.2%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그 다음으로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이 24.6%, 척수장애인의 동료상담이 24.6%, 약물·수술적 요법의 개발이 8.8%, 비디오 혹은 가이드북 제작이 6.3%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로부터의 성상담을 가장 절실히 원하는 척수장애인. 이들이 성적 만족을 느끼기 위해 성생활에 어떻게 임해야할 지에 대해 유 상담실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성생활을 생각할 때 비장애인이었을 때처럼 삽입 성교를 하는 쪽으로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두 사람이 함께 어떤 체위들이 더 편안한지, 몸의 어떤 부분들이 감각이 더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연구하면 성적 만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척수장애인의 경우에 감각이 없는 부분이 생김으로써 감각이 살아있는 부분이 훨씬 더 예민하다.”며 “제2의 성감대를 찾기 위해 감각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경계선을 잘 애무해보라.”고 권유했다.

아울러 “이같은 조언은 여성척수장애인에게도 해당되며, 다만 여성의 경우 남성과 달리 성감대가 널리 분포하고 있으므로 유두나 입술, 또는 귀 뒤 부분 등도 성감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한국척수장애인협회에서 2012년 9월~11월 전국의 척수장애인 303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성재활을 위해 필요한 것’. 출처/한국척수장애인협회.
‘임신’ 아무 문제 없나?…남성 ‘사정’의 문제 겪어

한편, 유 상담실장에 따르면 여성척수장애인은 사지가 마비된 사람도 큰 어려움 없이 성생활을 할 수 있다. 성교의 행위에 있어서 여성은 남성의 성기를 받아들이는 입장이므로 모든 여성척수장애인들은 삽입에 의한 성교가 가능하다.

다만, 척수손상 후에 성교시 윤활작용을 하는 질 분비액이 감소되거나 분비되지 않아 빡빡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윤활액(젤리)을 사용하면 되며, 윤활액은 따로 구입할 필요 없이 넬라톤할 때 쓰는 젤리를 이용하면 된다.

임신 및 출산 또한 물론 가능하다. 척수손상 초기에 한 50% 정도에서는 월경이 끊기는 현싱이 있을 수도 있지만, 평균 6개월 정도면 다시 월경을 시작하게 돼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능력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남성척수장애인의 경우 ‘사정’이 되지 않아 ‘불임’일 확률이 높다. 국립재활원 성재활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척수손상 후 사정이 가능한 경우는 역행성 사정을 포함해도 20% 정도에 불과하며, 정자의 활동력도 떨어져서 의학적인 도움없이 자연스럽게 임신이 되는 경우는 약 10% 미만이다. 즉 남성척수장애인 10인 중 1인만이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기구로는 ‘음경진동자극기’와 ‘직장전기자극기’ 등이 있으며, 아기를 갖기 위한 방법으로는 사정된 정액을 모아서 아내의 자궁에 넣어주는 방법, 시험관에서 수정한 다음 수정란을 아내의 자궁에 넣어주는 방법(시험관 아기), 정자를 직접 난소에 주입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 경우 남성척수장애인 부부의 60% 정도가 자녀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안 씨의 경우 시험관 아기를 시도해 지난 2008년 건강한 딸을 출산했으며, 현재 둘째를 계획 중이다.

▲ 국립재활원 성재활실.
▲ 국립재활원 성재활실.
‘성재활’과 ‘대화’로 행복한 성생활 가능

첫 아이를 낳고, 또 다시 둘째를 갖겠다고 결심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들이 있었지만, 이 부부를 지탱해준 것은 무엇보다 ‘대화’라고 한다.

이 씨는 “결혼 첫 날, 남편이 ‘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그것은 부끄러운게 아니라면서 말이다. 이후 나는 언제든 남편에게 털어놓았고, 성관계 전에도 자주 대화를 나눴다.”고 털어놓으며 “비장애인들은 ‘감각도 없는데 무슨 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비장애인부부 못지 않게 서로를 사랑하고, 성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부부는 사고 후 처음으로 성에 대해 터놓고 말할 수 있었던 ‘국립재활원 성재활실’을 떠올리며 “덕분에 자연스럽게 성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기회가 생겼고, 이로인해 연인관계를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유 상담실장은 “성재활실은 주기적으로 성재활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척수장애인 부부 또는 미혼척수장애인끼리 소그룹을 만들어 성상담을 진행하기도 한다.”며 “이 외에도 개별적으로 상담을 원할 경우에는 성재활실(서울 강북구 수유동 520)을 방문하거나, 전화(02-901-1625)를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척수장애인에게 성재활 상담·교육·치료 등을 실시함으로써 성생활이 가능하도록 도와주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국립재활원 성재활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척수장애인 욕구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살펴본 결과 ‘성재활 정보를 얻은 적이 없다’고 답한 사람이 13.6%나 되는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성재활에 대한 정보 제공의 기회를 더욱 늘리는 대책이 필요하겠다.

장애인 당사가 적절한 성재활 정보를 아는 것이야말로 재활의욕을 높여 주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긍적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생기도록 할 것이다.

▲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국립재활원.
▲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국립재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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