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침묵’, 그 속살을 들여다보다

장애인의 성에 대한 비장애인의 편견을 다룬 지난 1부에서 말했다시피 뇌병변장애인에게도 분명 성적 욕구가 존재하며, 성 기능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운동능력이 저하돼 걷는 것, 팔을 사용하는 것, 말하는 것 등에서는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만, 이들은 비장애인과 다름없는 감각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마비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거나 심리적 또는 사회적 문제 등으로 인해 성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3부 “나에게서 ‘성적 매력’이 느껴지나요?”

▲ 김정근(64)·김진옥(56, 뇌병변장애 1급) 부부.

기혼 뇌병변장애인 ‘경직’과 ‘경련’으로 인한 어려움 호소

성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경직’이나 ‘경련’으로 인해 체위를 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팔이나 다리가 빳빳해지거나 떠는 증세가 발생하다보니, 중증 여성 뇌병변장애인은 남성이 다가갈 수 있도록 다리를 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럴 경우에 해결책은 여성의 다리가 오그라진 상태에서도 성교를 가능하게 하도록 남성이 여성의 뒤쪽에서 체위를 취하는 것이다.

결혼 16년차 김진옥(56, 뇌병변장애 1급)·김정근(64) 부부는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보니 체위가 단조로울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으며 “하지만 할 수 있는 체위에 있어서 최선을 다 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어우러지면 충분히 만족을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 부부의 경우에는 남편이 비장애인이다보니 다른 중증장애인 부부에 비해 성생활이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부부가 둘 다 중증장애인일 경우, 성생활의 어려움은 더욱 크게 드러난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만나 지난 2011년 결혼에 골인한 김동림(52, 뇌병변장애 1급)·이미경(44, 뇌병변장애 1급) 부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삽입성교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김 씨는 “둘 다 중증이다보니 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고 토로하며 “발기는 잘 되는 편이지만, 삽입이나 피스톤 운동 등이 어려워 서로 만족할 만큼의 성관계는 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 이미경(44, 뇌병변장애 1급)·김동림(52, 뇌병변장애 1급) 부부.

‘성 서비스’에 대한 장애인 당사자 의견 분분…어디까지 괜찮은가?

지난 2009년 개봉한 영화 ‘섹스볼란티어’에서는 중증장애인의 성생활을 돕기 위한 방안으로 ‘성 자원봉사’와 ‘성 도우미’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누구보다 성 도우미를 원할 것으로 예상되는 김동림·이미경 부부에게 ‘혹시 성생활을 돕는 성 도우미가 생긴다면 이용하겠느냐’고 묻자 의외의 대답이 흘러 나왔다. 이들 부부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아무리 성생활이 어렵다고 할지라도,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둘만의 성스럽고 고귀한 시간에 누가 옆에 있다면 자연스럽게 성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성 서비스 이용을 꺼려했다.

▲ 굿잡자립생활센터 김재익(49, 뇌병변장애 1급) 소장.
반면, 굿잡자립생활센터 김재익(49, 뇌병변장애 1급) 소장의 경우에는 성 서비스 도입을 적극 찬성했다.

김 소장은 “중증장애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성적인 부분에 있어서 전문 교육을 받은 간호사 등이 중증장애인 부부의 성관계를 지원해주는 건 윤리적으로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최소한 원하는 사람들은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지원서비스가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결혼하지 않은 뇌병변장애인들은 성 서비스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까? 미혼의 경우에도 기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의견이 분분했다.

뇌병변장애 1급 최동우(35) 씨는 “중증장애인의 경우,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을 뿐만 아니라 손이 자유롭지 않아 자위행위조차 어렵다.”고 토로하며 “장애인의 전반적인 생활을 돕는 활동보조인처럼 직접적인 접촉이나 행위 등으로 장애인의 성적 욕구 해소를 돕는 성 활동보조인이 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호식(41, 뇌병변장애 1급) 씨는 “물론 성적 욕구가 인간의 기본적 욕구 중 하나지만, 성생활이 인생에 전부는 아니므로 직접적인 성 도우미까지 이용해서 성욕을 해소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다만 활동보조인이 성과 관련한 자료를 구해주는 것까지는 괜찮다고 본다.”고 말했다.

성 서비스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 범위에 있어서는 의견이 나뉘고 있는 가운데, 구자윤(36, 뇌병변장애 1급) 성 활동가는 김호식 씨와 마찬가지로 ‘제한적 찬성’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구 활동가는 “성 도우미가 직접적인 성관계 파트너가 되길 바라는 것은 사실상 성매매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것이며, 나아가 장애를 무기화 시키는 주장.”이라고 꼬집으며 “윤리적인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남성 도우미에 비해 여성 도우미가 확연히 부족할 것이므로 실효성 또한 전혀 없다.”고 말했다.

▲ 김호식(41, 뇌병변장애 1급) 씨.
성 서비스 ‘있고 없고’ 문제 아냐… 근본적인 해소 있어야

이같은 논의에 대해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는 “장애인이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타인에게 의존해야한다는 것을 스스로 전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며 “어찌됐든 성 서비스는 욕구 해소에 초점을 맞춘 차선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왜’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해 일반적인 성 파트너가 아닌 성 도우미를 불러오게 됐는지 근복적인 문제를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
배 대표는 “우리 사회의 성문화는 ‘비장애인’, ‘정상체위’, ‘삽입성교’ 중심으로 지나치게 고착화 됐다.”고 지적하며 “정형화된 성문화에 맞춰 일회성으로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성 서비스로 규정하지 말고, 개념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김호식 씨가 호소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뇌병변장애인은 활동의 제약 등으로 인해 비장애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은 편이다. 육체적인 요인 외에도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은 성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기도 한다. 이를테면 ‘장애인이 무슨 성생활이냐?’, ‘임신이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등의 우려로 인해 애초에 성적 권리를 무시당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신감을 상실한 장애인 당사자는 자기 혐오감에 휩싸여 ‘과연 누가 나를 좋아해줄까?’, ‘나에게 성적 매력이 있을까?’하는 생각에 이성에게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곤 한다.

배 대표에 따르면, 독일의 한 ‘장애인 자기결정 상담소(ISBB)’에서는 장애인 스스로 성적 권리, 성적인 것과 관련한 가능성 혹은 관계성 등을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바디페인팅, 탄트라 마사지 등을 통해 자기 몸의 성감대, 성적 에너지가 어딘지를 확인하도록 한다. 여기서 핵심은 성기 삽입이 없더라도 충분히 성적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배 대표는 “장애여성공감의 상담 사례를 살펴보면, 실제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자신의 몸을 제대로 보지 못한 중증장애인이 많다.”고 밝히며 “성생활에 앞서 자신의 몸, 성감대 등을 먼저 알도록 하는 것이 그 어떤 성 서비스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앞으로 국내에서도 이러한 성 워크숍이 자주 진행될 수 있도록 국가적 예산이 마련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이성을 만나지 못하는 장애인 당사자는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자위 행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증장애인일 경우에는 이마저도 힘든 실정이며, 중증장애인의 장애정도에 맞는 자위 기구의 개발은 아직 미비하다.

이를 위해 김재익 소장이 제기한 것이 ‘가상현실을 통한 섹스’다. 김 소장은 “가상현실이라는 기술적 발전에 근거해 실제로 성행위를 하진 않지만, 마치 실제로 하는 것처럼 오감에서 인지되도록 하는 ‘사이버 섹스’의 개발이 가능하다.”며 “인간의 뇌는 성적 욕구를 해소할 때 시각적인 부분이 90%를 차지하므로 3차원 가상세계를 구축해 이미지를 보여주고, 최첨단 성기구를 통해 10%의 신체적 접촉까지 곁들인다면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미혼중증장애인의 성적 요구 해소를 위해 대안으로 ‘가상현실을 통한 섹스’가 제기됐다. 출처/3D 온라인 게임 쓰리필.

이성 만남 기회 부족… ‘자기愛’, ‘장애인 사회적 여건 개선’ 필요

‘맞춤형 자위 기구의 개발’이나 ‘가상현실을 통한 섹스’ 등은 미혼 중증장애인의 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아직까지 합법적으로는 인정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이성과의 만남을 통해 정서적 만족을 동반한 성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여느 비장애인들은 “그러면 장애인끼리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사귀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곤 한다.

▲ 구자윤(36, 뇌병변장애 1급) 성 활동가.
하지만 구 활동가는 “그렇게 쉽게 말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꼬집으며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만나 가난했던 과거를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장애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여기는 장애인들이 상대방과 장애유형이나 정도가 차이가 날 경우 배려하고 감싸기보다는 내가 더 힘들어지고 싶지 않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혼 성인 장애인들끼리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여느 복지관에서 단체 미팅을 실시하기도 했으나, 그다지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구 활동가의 설명이다.

구 활동가는 “사람인 이상 조건을 전혀 따지지 않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장애인 스스로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더불어 국가적 차원에서 장애인의 사회참여권, 취업권, 교육권, 이동권 등이 확실히 보장돼야만 한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이성에게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전히 자신의 성적 권리를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김진옥, 김정근 부부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길 바라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하지 말고, 행복을 잡을 수 있는 지혜를 갖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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