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도가니’는 끝나지 않았다

2013년 4월 25일, 대법원은 ‘도가니’ 사건의 주범인 인화학교 전 행정실장 김 모씨의 상고를 기각하며 징역 8년과 정보공개 10년, 전자발찌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였다.

자신이 보살펴야 할 장애인 학생을 강간하고 이를 목격한 학생을 무자비하게 폭행하였음에도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한 김 모씨의 뻔뻔한 작태에 비한다면 대법원의 선고는 솜방망이 처벌과 같기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지만,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불러 일으켜 가해자를 엄벌하고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 정비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가니’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원주 귀래 사랑의 집 사건이나, 인천 명심원사건 등 장애인에 대한 폭행과 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중증장애인의 경우 장애로 인하여 외부와의 소통을 하기 어려운 특성상 학대와 가혹행위가 은폐되기 쉬워 현재 드러난 문제들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단순한 법제정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장애인의 인권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소설 ‘도가니’와 동명의 영화로 세상에 알려진 이 사건은 아동 및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의 처벌을 강화하고 공소시효를 폐지한 ‘도가니법’을 제정하게 하는 등 장애인의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으나, 수화를 사용하는 농아인의 의사소통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2012년 ‘도가니’사건의 피해자들이 국가배상소송을 냈을 때 농아인인 원고가 출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농아인 방청객이 있는 방청석에 대한 수화통역을 불허하여 논란이 된 사건과, 농아인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도가니’에 한글자막이 제공되지 않아 대부분의 농아인이 극장에서 도가니를 관람할 수 없었던 사건은 수화를 사용하는 농아인이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농아인에게는 수화가 모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인식하였다면 이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사회 전반의 인식이 수화가 농아인의 언어라는 사실에까지 미치지 못한다면 농아인은 언제 어디에서든 의사소통의 제한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당할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농아인이 꼭 필요할 때 적절한 소통을 지원받지 못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이 저급한 손짓으로 취급받아 신뢰받지 못한다면 농아인은 여전히 ‘도가니’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가해자에 대한 심판은 끝났으나, ‘도가니’가 남긴 과제의 해결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2013. 4. 26.

한국농아인협회장

변 승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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