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시설은 혐오시설’ 발언… 장애계단체 항의방문에 승강기 및 계단 원천봉쇄

▲ 장애계단체는 지난 27일 오후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은평문화원 박인호 원장에게 ▲막말에 대한 공개적 사과문 게재 ▲은평문화원장직 즉각 사퇴 ▲은평구에서의 전출을 촉구했다.  ⓒ정유림 기자
▲ 장애계단체는 지난 27일 오후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은평문화원 박인호 원장에게 ▲막말에 대한 공개적 사과문 게재 ▲은평문화원장직 즉각 사퇴 ▲은평구에서의 전출을 촉구했다. ⓒ정유림 기자

은평문화원 박인호 원장이 복지시설 혐오 발언에 이어 ‘정식 사과’가 아닌 ‘임시변통식’의 대처로 장애계단체의 빈축을 샀다.

박 원장은 최근 여러 차례에 걸쳐 복지시설을 혐오시설로 ‘폄하’하는 발언을 하며 장애계단체의 반발을 불러왔다.

은평시민신문 보도에 따르면 은평문화원 박인호 원장은 지난 11일 은평문화예술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립보건원 부지 활용 시민대책위원회 창립총회에서 "서울시는 정신병원, 결핵병원, 요양원, 불우청소년육성시설, 소년원, 장애보호육성시설, 천사원, 갱생원 등을 은평구에 50년 동안 버리듯이 했다.”며 “은평구가 결핵환자가 많은 동네도 아니고, 정신병자가 많은 동네도 아니다. 그런데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모든 그런 혐오시설을 은평구에 퍼부었다.”고 발언했다.

또한 “내가 정신병원 앞에 한 30년을 살았는데 택시를 타고 정신병원에 가자고 하면 택시 기사가 꼭 뒤돌아본다."라며 "이게 얼마나 부끄럽고 혐오스럽고 화가 나는 일인가?”라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해 7월 박 원장은 은평구 지역신문인 ‘은평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서울시의 혐오시설인 정신병원, 결핵요양환자 수용시설, 소년원, 갱생원, 장애인아동보호시설 등을 받아 온 은평구는 홍제동 고개를 지나 녹번삼거리를 접하는 순간부터 경제적, 문화적 자산이 없는 무능력하고 어두컴컴한 죽은 도시로 전락했다.”고 표현했다.

이같은 발언에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계단체는 지난 27일 오후 4시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원장의 반인권적인 발언은 결코 순간적인 실수나 무지의 소치가 아니라 뿌리깊은 차별의식과 복지혐오에서 비롯된 상습적 행위.”라며 ▲막말에 대한 공개적 사과문 게재 ▲은평문화원장직 즉각 사퇴 ▲은평구에서의 전출을 촉구했다.

▲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는 은평구의 지역장애인 김성북 씨  ⓒ정유림 기자
▲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는 은평구의 지역장애인 김성북 씨 ⓒ정유림 기자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용기 대표는 “장애인에 대한 고의적인 차별 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중대한 범죄.”라며 “상처받은 당사자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지역주민에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인권의식이 없는 박 원장의 자진 사퇴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이명묵 관장은 “은평구는 지역 내에 사회복지시설이 들어올 때마다 한번도 강제시위를 한 적이 없고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도 많이 하며 더불어 사는 지역으로 다른 지역의 모범이 되는 곳.”이라며 “은평구 내 37개 사회복지시설을 대표해, 최근 반복되고 있는 박 원장의 복지시설에 대한 모욕 발언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지적장애인 아들을 둔 은평구 거주 주민으로 자리에 참석한 장애인부모회 유재숙 회장은 “25년 넘게 은평구에 거주하며 복지시설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품으며 살았는데 박 원장의 발언을 듣고 난 후 희망이 꺾여 버렸다.”며 규탄 발언을 이어갔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활동가는 “현재 개인 간 모욕 및 비하 발언에 대해 인권위 진정이 이뤄지는 등 장애인에 대한 비하 및 모욕적인 발언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분명히 ‘차별’로 명시돼 있다.”며 “그런데 문화원장이라는 직책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함부로 장애인을 비하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는 것은 법적으로 분명한 ‘법률 위반’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 차별을 아무리 얘기해봐야 뭐하겠나. 작금의 사태는 장애인을 이 사회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살기 힘든 ‘폐기물’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박 대표는 지난해 하조대해수욕장 내 장애인숙박시설인 ‘하조대 희망들’ 건립을 놓고 반대를 고수한 양양군수의 사례를 들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양양군의 건립거부는 차별행위라는 의견을 표명했고 법적으로도 얘기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장애인 차별’을 꼬집었다.

한편, 기자회견이 있기 전 은평문화원 박인호 원장은 웰페어뉴스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지난 11일 열린 국립보건원 부지활용 시민대책위원회 창립총회에서의 복지시설 혐오발언에 대해 ‘발언을 한 것이 맞다’고 시인했지만, 발언 취지는 보도된 것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박 원장은 “발언을 했을 당시에는 장애인단체나 장애인을 지칭해서 한 말이 아니다. 은평구 녹번동 옛 국립보건원 부지에 최근 확정된 ‘서울혁신파크’는 경제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 좀 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시설이 들어서면 어떨까 하는 와중에 적절치 못한 발언이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어쨌든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을 인정하고 장애계단체에 사과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 시간 여 ‘대치’…장애계단체와 협의해 다시 사과하기로

하지만 ‘사과하겠다’는 박 원장의 말과 달리, 박 원장은 승강기와 계단을 봉쇄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장애계단체는 성명서를 전하기 위해 2층으로 이동하려 했지만, 대표단 중 3인을 제외한 나머지 관계자들은 경찰에 막혀 한동안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경찰 관계자는 “대표단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올라갈 수 없다.”고 맞섰고, 경찰의 체증까지 이뤄졌다.

▲ 사과문을 낭독하고 있는 은평문화원 박인호 원장  ⓒ정유림 기자
▲ 사과문을 낭독하고 있는 은평문화원 박인호 원장 ⓒ정유림 기자
기자회견이 끝난 지 한 시간가량이 지난 오후 5시 48분이 되어서야 박 원장은 1층으로 내려와 사과문을 낭독했다.

박 원장은 “지난 11일 국립보건원 부지활용 시민대책위의 창립총회에서 그간 낙후된 은평구 현실을 발언하던 중 장애인단체, 시설 등 복지시설을 혐오시설로 실언한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말씀 드린다.”며 “잘못된 발언이기에 죄송함을 표하며 앞으로 은평구 장애인을 위한 복지활동에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장애계단체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반성문이 아닌 진정성 있는 공개 사과.”라며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장애계단체가 요구한 원장직 즉각 사퇴에 대해 박 원장은 “문화원은 특수법인체이기 때문에 원장 임명권자가 없어 따로 총회를 열어 부결이 돼야 원장직이 박탈된다.”며 ‘즉각 사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장애계단체는 “당초 공개사과의 방식을 거치기로 했고 차별받은 당사자 입장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원장직의 자진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박 원장은 추후 장애계단체 대표단과 다시 만나 협의를 거쳐 사과문을 다시 작성하기로 하고, 지역신문과 장애인 관련 매체에 공개 사과문을 싣겠다고 약속했다.

▲ 경찰이 승강기를 봉쇄하며 2층으로 올라가려는 장애인들을 막고 있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정유림 기자
▲ 경찰이 승강기를 봉쇄하며 2층으로 올라가려는 장애인들을 막고 있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정유림 기자
▲ 경찰들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를 원천봉쇄하는 모습  ⓒ정유림 기자
▲ 경찰들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를 원천봉쇄하는 모습 ⓒ정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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