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서 장애인 참여 제한 및 CCTV 녹화 등으로 인권침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지난 5월 27일~29일까지 진행한 ‘2013년 장애분야 인권강사 양성과정’ 교육에서 장애인을 차별하고 CCTV 등 인권침해 행위를 일으켜 논란이 되고 있다.

해당 교육에 참여했던 당사자를 비롯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나야장애인인권교육센터 등은 20일 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사건에 대한 진정을 다음주 안으로 접수할 것을 밝혔다.

‘2013년 장애분야 인권강사 양성과정’ 교육은 인권 친화적 장애인 복지 실현을 위한 장애분야 종사자 교육에 필요한 강사 양성과, 장애인 시설에 대한 인권침해 예방 및 장애인 인권 증진을 도모하고자 마련됐다.

인권위는 신청 대상으로 장애인 관련 단체 활동 경력 2년 이상, 사회복지학과 강사 이상, 장애분야 시설 근무자 중 사무장 급 이상 경력 2년 이상, 지역 사회복지시설 및 복지관 등에 소속된 사람으로 장애인 인권 강의를 진행하는 사람, 장애분야 관련 업무를 진행하는 공무원, 기타 장애인분야 관련 경험 또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으로 정했다.

장추련 김성연 활동가는 “추측하건데 인권위는 신청 대상을 이미 ‘높은 사람’으로 정했던 것 같다. 인권위는 최종 32인을 선발했는데, 그 선발 과정이 투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발했는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 2013년 장애분야 강사 양성 과정 신청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홈페이지
▲ 2013년 장애분야 강사 양성 과정 신청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홈페이지
신청서 양식에는 이름, 생년월일, 성별, 주소, 전화번호, 소속, 직급, 경력 등만 적도록 했으며 장애유무·장애유형 등은 묻지 않았다. 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 항목 또한 없었다.

상상행동 장애와여성 마실 김광이 대표는 “인권위는 ‘장애인’이라고 표시하는 것 자체가 분리·배제가 될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신청 양식에 장애유무·장애유형을 적는 것은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맞는 정당한 편의제공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 위한 것.”이라며 “설령 장애인이 참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인권위라면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의 참여’를 기본 전제 조건으로 갖추고 시작했어야 한다.”고 질타했다.

편의시설 개선 없는 곳을 교육 장소로… 장애인화장실 등 ‘엉망’

차별은 교육 장소 선정과 교육 과정까지 이어졌다. 교육 장소는 충청북도 충주시에 자리 잡은 건설경영연수원으로, 인권위는 2011년과 2012년 건설경영연수원 측에 장애인 편의시설 개선을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장추련에 따르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장애인화장실은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있으며, 남자화장실은 휠체어가 들어갈 수조차 없는가하면 입구에 턱이 있고 소변기 옆에 안전손잡이가 설치돼 있지 않다. 승강기 사용에서도 장애인용 조작반이 없어 장애인 혼자서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

건설경영연수원까지 가는 길 안내에서도 장애인콜택시 상황 및 휠체어리프트 장착 차량에 대한 이야기는 없이 ‘자가용 이용’만을 안내했다.

▲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시형 활동가.
▲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시형 활동가.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시형 활동가는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교육에 참여하고자 했다. 신청을 한 뒤 인권위측으로부터 ‘정당한 편의 제공이 필요하냐’는 문자가 왔다. 이에 ‘필요하다’고 했더니 ‘대구 지역 담당자와 이야기 끝났다’는 답변 하나로 끝맺었다. 당사자가 어떤 것이 어떻게 필요한지 확인하는 게 상식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교육 장소까지 갈 수 있는 교통편의가 없어 문제를 제기하니, 그제야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알아보고 연락 주겠다’는 말만 남겼다. 결국 교통편의가 마련되지 않아 장애인콜택시를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교육 과정에서의 차별은 더욱 심각했다. 문자 통역 없이 수화 통역사 1인만 지원했으며, 참여자들의 동의 없이 강의실 안에 CCTV 설치·녹화했다.

이밖에도 사전 사이버교육 참여에서는 플래시로 화면이 구성돼 있고, 텍스트 형태의 강의노트가 있는 부분을 찾기 어려워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이 떨어졌다.

▲ 교육 장소를 찾아가는 길 안내에서도 장애인 및 이동 약자를 위한 안내 없이 '개인 승용차'로 가는 방법만 안내돼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홈페이지
▲ 교육 장소를 찾아가는 길 안내에서도 장애인 및 이동 약자를 위한 안내 없이 '개인 승용차'로 가는 방법만 안내돼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홈페이지
장추련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장애인의 사회권, 결정권, 자유권은 사회적 참여에서 이뤄진다. 사회적 참여는 접근권이 보장될 때 이뤄지며, 접근권은 정당한 편의제공이 있어야만 보장될 수 있다.”며 “인권침해에 대해 시정 권고를 내리는 역할을 맡고 있는 인권위가 이를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인권위는 이번 사태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와 분명한 입장을 보여야 할 것이며, 인권 교육 및 차별금지 교육을 다시 받아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는 “장애인 인권교육에 정작 장애인은 고려되지 않은 상황이 당황스럽다. 인권위는 인권 기구로서 정기적인 인권 교육을 받아야한다. 현병철 위원장을 비롯한 한태식 위원 등이 주도적으로 인권위를 망하게 하고 있지만, 직원들 또한 책임이 있다는 게 이번 사건을 통해 분명히 드러났다.”고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명숙 활동가는 “인권 감수성이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인권위 직원들이 공무원으로서 자기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태도를 벗지 못하는 한, 이 같은 일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김광이 대표 역시 “인권위는 인권교육을 1년에 250회 정도 진행하고 있다. 인력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있는 조건 안에서 예산을 확보하고 노력하는 게 직원들의 몫이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데 긍긍했기 때문에, 장애인을 차별하고 스스로가 진정 대상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규탄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인권교육 수료증 발급에 대한 문제점을 꼬집었다. 고작 2박3일 동안의 교육만으로 수료증을 주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

김성연 활동가는 “과연 인권교육이 2박3일만에 완벽하게 이뤄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인권위는 인권 감수성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에 따른, 보다 책임 있는 교육과 수료증 발급을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 2박3일간이 교육을 마치면 전문 강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수료증을 발급, 자격 요건과 검증 절차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홈페이지
▲ 2박3일간이 교육을 마치면 전문 강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수료증을 발급, 자격 요건과 검증 절차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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