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없는 승강장 추락 사고, 시각장애인 탓이라고?
안전 없는 승강장 추락 사고, 시각장애인 탓이라고?
  • 최영하 기자
  • 승인 2013.07.2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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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전철 선로추락사건 패소 결정… '항소장 제출' 기자회견
▲ 시각장애인 선로추락사건 패소 및 항소장 제출에 따른 기자회견이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열렸다.
▲ 시각장애인 선로추락사건 패소 및 항소장 제출에 따른 기자회견이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열렸다.

경기도 양주 덕정역 승강장에서 지난해 9월 14일 발생한 시각장애인 김모(20대, 시각장애 1급) 씨 전철 선로 추락사건 판결에 당사자를 비롯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공익인권변호사모임희망을 만드는 법은 22일 항소할 뜻을 밝히고 법원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 씨는 지난 해 9월 14일 덕정역에서 목적지 방향으로 가는 전철이 곧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전동차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전동차에 오르려고 했다. 하지만 전동차는 반대편 승강장에 도착한 것이었고, 김 씨는 결국 선로로 떨어졌다.

이어 김 씨는 승강장 아래 공간으로 몸을 굴려 간신히 목숨을 구했지만, 전치 6주의 중상을 입었다.

당시 덕정역에는 안전문(스크린도어)이 설치돼 있지 않았고, 현장에 안전 요원 또한 배치돼 있지 않았다. 이에 김 씨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법률위원단의 소송 대리로 같은 해 12월 26일 한국철도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진행 과정에서 재판부는 15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으나 원고는 거부했고, 지난 3일 재판부는 한국철도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기자회견에서 단체는 덕정역 관리주체인 한국철도공사의 태도를 꼬집으며, “책임 있는 보상도,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모든 것이 김 씨의 탓이고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식의 항변.”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배상금 관련해 재판부의 ‘그것도 많이 챙겨주려고 한 것이었다’는 입장은 법원의 장애인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헤아릴 줄 모르는 미약한 인권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상식과 전문성이 있는 재판부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이들은 “재판부의 결정은 단순 사고의 손해배상금 책정기준으로써 액수를 떠나 김 씨가 겪었을 생명의 위협과 공포, 철도공사 측의 장애인에 대한 안전조치의무를 가볍게 여긴 결정으로 이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날 항소에 앞서 기자회견에서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 나병택 센터장은 “이 같은 사건은 모든 시각장애인들을 무시한 행위.”라며 “시각장애인은 정당한 편의시설이 필요한 약자다. 담당 재판관은 안전문이 없으면 늘 불안할 수밖에 없는 약자들의 상황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사건 피해자인 김 씨가 패소결정에 불복하는 뜻을 밝히며, 당사자 발언을 하고 있다.
▲ 사건 피해자인 김 씨가 패소결정에 불복하는 뜻을 밝히며, 당사자 발언을 하고 있다.

당사자이자 원고인 김 씨는 아무런 책임 없다는 덕정역 역무원 관계자와 지하철 공사의 태도에 화가 난다며, 진심어린 사과를 원했다. 또한 “2심 때는 확실하고 공정한 판결을 촉구하며, 지하철 공사와 재판관이 고개를 숙여 약자를 생각하는 방향으로 진행 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이승철 연구원은 “오래 전부터 이런 사고들에 대해 ▲안전문 설치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 확충 ▲공익요원 또는 상시 안전요원들 배치 ▲CCTV설치 등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해 왔지만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며 “공공기관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상황.”이라고 질타했다.

특히, 그는 “사회정의를 실현시켜야할 재판부의 이같은 결정이 하나의 판례로 남는다면 앞으로 장애인들은 공공기관에서 사고를 당하더라도 어떤 정당한 요구도 할 수 없을 것이며, 이 사회의 마지막 정의가 무너지면 우리 장애인들은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올바른 판결을 촉구했다.

이번 항소심은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공익인권변호사 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김재왕 변호사가 변호를 맡을 예정이다.

한편, 덕정역은 김 씨의 사고가 발생하기 3개월 전 시각장애인 2인이 동시에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고, 2003년 5월에는 송정역·2004년 11월 이수역·2008년 7월 제물포역·2010년 8월 주안역·2012년 12월은 부전역에서 시각장애인이 선로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 선로추락사건 패소 결정에 대한 항소장 제출.
▲ 선로추락사건 패소 결정에 대한 항소장 제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