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본인부담금에 ‘본래 취지와 철학 잃어’

“한 중증장애인으로부터 상담이 들어왔습니다. 그의 상담 내용은 ‘결혼해도 되나요?’였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하지 말라’고 대답했습니다. 왜일까요? 그가 받고 있는 활동지원서비스 추가급여 250시간이 결혼하는 순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관계자에게 직접 물었더니, 그는 대답을 피한 채 자리를 떠났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게 장애인활동지원 장애등급제 폐지와 본인부담금 폐지를 위한 제도 개선 정책 권고를 촉구하며 26일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줄여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장애등급제와 본인부담금 등으로, 장애인 당사자로부터 목적과 취지를 거스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 5일 정부가 행정예고한 ‘장애인활동지원 급여비용 등에 관한 고시’ 개정안은 장애인 당사자에 대한 서비스는 늘지 않은 상태에서 본인부담금만 올리고 있다는 평가다.

▲ 지난 5일 정부가 행정예고한 ‘장애인활동지원 급여비용 등에 관한 고시’ 개정안. 이는 다음 달 1일부터 시행한다.
▲ 지난 5일 정부가 행정예고한 ‘장애인활동지원 급여비용 등에 관한 고시’ 개정안. 이는 다음 달 1일부터 시행한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일상생활수행능력을 바탕으로 필요성을 인정받아야 하며, 장애등급 1·2급에게만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5월 대구광역시에서 탈시설·자립생활을 시작한 한 여성장애인은 이미 활동지원서비스의 필요성을 인정받아 서비스를 받고 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장애등급심사에서 등급이 3급으로 떨어졌다는 이유 때문에 활동지원서비스를 더 이상 받을 수 없었다.

또한 장애인의 실질적 소득과 무관한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본인부담금을 부과, 특히 상한이 정해지지 않은 추가급여의 경우 계속해서 본인부담금이 늘고 있는 상태다.

뿐만 아니라 추가급여는 1인 가구 및 18세 이하 또는 65세 이상인 가족만으로 구성된 가구나 1·2급 장애인으로 구성된 가구에게만 이뤄지고 있어, 중증독거장애인이 장애등급 3급인 사람과 결혼할 경우 추가급여가 없어진다.

전장연 남병준 정책실장은 “정부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약속했지만 장애등급심사를 계속해서 강행하고 있다. 개개인을 1급, 2급, 3급으로 나누는 행정편의적인 장애등급심사를 깨지 못하면 장애등급제는 폐지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남 정책실장은 “활동지원서비스가 많이 필요한 사람일수록 경제적 상황이 안 좋을 수밖에 없음에도, 개인소득이 아닌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잡아 ‘열악한 사람일수록 많이 내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난 해 故 김주영 활동가와 경기도 파주시의 한 남매가 숨을 거두는 사건 등으로 정부는 활동지원서비스를 조금 확대했고 바우처 급여 역시 조금 올랐다. 하지만 이는 장애인 당사자가 아닌 활동보조인에 대한 심야·공휴일 할증 수가.”라며 “기본급여는 상한이 있지만 추가급여는 상한이 없어 계속해서 오를 위험이 있으며, 장애인 당사자의 서비스가 늘지 않아도 활동보조인의 월급과 사업기관의 수수료가 오르는 만큼 본인부담금이 오르고 있다.”고 질타했다.

남 정책실장은 활동지원서비스 대상자여도 본인부담금이 부담돼 스스로 활동지원서비스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 해 7월 복지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활동지원서비스 대상자 중 25%가 해당 서비스를 쓰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부담금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한 2011년 11월을 기준으로 봤을 때, 2월과 6월의 이용률이 각각 80.4%와 85.5%인 반면 2012년 1월과 5월은 73.2%와 74.4%를 기록하고 있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전장연 박경성 상임대표는 “정책은 본래 취지와 철학에 맞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중증장애인은 노동시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회적 구조는 우리를 ‘기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사회에서 살고자 하는 중증장애인에게 본인부담금을 물리는 것은 취지와 철학에 어긋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장연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권위에게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독소조항’인 장애등급제와 본인부담금을 폐지하도록 정책권고할 것을 요구하며 의견서를 접수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측이 국가인권위원회에게 진정 접수 및 의견서를 전달하고 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측이 국가인권위원회에게 진정 접수 및 의견서를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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