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아인협회·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성명서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흥이 넘치는 축제’를 콘셉트로 내세우며 지난 10월 3일부터 12일까지 부산에서 개최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흥이 넘치는 이 축제의 장에 장애인은 여전히 들러리에 불과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말을 인용해 부산이 ‘배리어프리’라는 새로운 개념이 활성화 되고 있는 지역이기에, 영화제의 협조를 통해 각종 장애요소를 극복하고 장애인들에게 보다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며 126석 규모의 장애인전용관이 마련되었다고 홍보해왔다.

이를 위해 지난 2011년부터 이곳에서 상영되는 모든 작품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극자막을 지원하며 현장에서는 점자 안내문 또한 비치하여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나 올해 장애인전용관에서 상영된 한국영화 <베를린>은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이 영화를 관람하기에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영화 <베를린>은 지난 2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와 한국농아인협회에서 시청각장애인을 위해 화면해설과 더빙, 한글자막을 제작(영화진흥위원회, CJ-CGV 지원)하여 전국 17개 상영관에서 49회나 성황리에 상영된 작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의 요청을 받아 무상으로 제공한 것이다.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의 무성의한 태도로 우수하게 제작된 화면해설과 한글자막이 형편없는 서비스로 변질되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제공되는 화면해설은 적절한 타이밍에 해설이 삽입 되어 화면해설과 영화의 원음이 잘 어우러져야 일반인과 동등하게 영화의 재미와 감동이 제대로 전달 될 수 있다. 특히 영화 ‘베를린’의 경우 배우들의 외국어 대사가 많아 적재적소에서 더빙이 제공되어야 하지만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장애인전용관에서 상영된 영화 ‘베를린’은 화면해설 및 더빙이 전체적으로 4초가량 뒤로 밀리면서 엉뚱한 곳에서 화면해설과 더빙이 제공되어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될 정도였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러한 문제를 검수 과정에서 발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영화란 타이틀로 상영했다는 점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잘못된 장애인식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 청각장애인의 영화 관람을 위해 상영되는 한국영화의 한글자막의 경우 가로에 정렬되고 있으며, 영어 자막이 있을 경우 그 위에 정렬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영화 가로 자막에 익숙해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엔 상영 된 영화 <베를린>은 영어자막 배치로 인해 한글자막은 오른쪽 세로 열에 배치 된 채 상영되어 청각장애인들이 쉽게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기본적인 대사 외 소리와 효과음, 이중 대사의 경우에도 극중 화자의 이름 표기 등이 필요하지만, 이를 자막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으며, 배우들의 기본적인 대사의 오타는 물론, 부적합한 문장 및 사투리와 표준어 자막 등이 혼용되어 있었고, 소리와 휴대전화 진동음 등의 표현의 방식에도 차이가 없었다.

이 자막은 농아인의 한글자막을 제작하는 전문가 또는 전문 단체가 아닌, 부산국제영화제 자막지원팀에서 제작한 것으로 수준 이하의 자막이라고 보여 진다.

이렇듯 시청각장애인 당사자가 관람 할 수 없는 수준의 영화를 장애인전용관에서, 장애인영화라고 상영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행태를 보며 장애인당사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우리 두 단체에서는 경악을 금 할 수 없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영화를 상영함에도 불구하고 점자유도블록 및 음성유도기와 같은 기본적인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이 매우 열악했으며 경사로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영관에 지체 및 뇌병변장애 등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과연 영화를 관람 하러 갈 수 있을지 의심된다.

이러한 문제점들의 원인은 부산국제영화제가 갖고 있는 장애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 부족을 여실히 드러낸 것으로 우리 두 단체는 심각한 우려를 표하는 바이다.

우리 두 단체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잘못된 장애인식의 개선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향후 이와 같은 문제가 또다시 재발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것이다. 또한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축제로 불리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에 걸맞게 장애인의 영화관람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13. 10. 14.
사단법인 한국농아인협회장 변승일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장 최동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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