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 정보 없어 학부모 불안감 ‘증폭’, 위험 인식조차 미비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로 방사능 오염수가 누출되면서 방사능에 취약한 어린이들의 급식 안전이 위협 받고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서울의 25개 자치구에 ‘어린이집별 수산물 납품업체 현황’에 대한 자료를 공개 청구한 결과 마포구와 서대문구, 종로구 등 3곳을 제외한 나머지 구에서 어린이집 급식에 제공되는 수산물 식재료의 원산지 정보를 확보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공립뿐 아니라 서울형 및 민간어린이집에서 제공되는 급식 식재료의 원산지 표시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개 청구 결과, 서울시내 대부분의 구에서는 수산물 납품업체 현황에 대한 자료를 보유하거나 관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린이집별 수산물 원산지, 납품 품목, 납품 수량, 급식학생 수 등 주요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노원구는 ‘국내산 위주’라는 답변으로 일관했으며, 나머지 21개 구가 관할하는 어린이집에서는 원산지 확인과 관련한 어떠한 자료도 구비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어린이집에 관해 보고를 받거나 조사, 또는 그 밖의 서류를 검사할 수 있는 관리·감독은 ‘영유아보육법’에 의해 구청이 하도록 돼 있다.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과 ‘식품위생법 시행령’에 따르면 1회에 50인 이상 식사를 제공하는 학교, 기업체, 기숙사, 공공기관 등의 집단급식소에서는 가공품의 원료에 대해 원산지를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자료 분석 결과, 서울시내의 서울형 어린이집 중 50인 이상의 어린이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곳은 ▲구로구 59개소 ▲강서구 51개소 ▲노원구 43개소 ▲관악구 40개소 등이었으며, 대체로 한 자치구당 20~30개소가 50인 이상의 어린이들에게 급식을 하고 있었다.

또한 서울형 어린이집에서 급식을 제공받는 영·유아의 수는 각 자치구별로 적게는 1,000여 명, 많게는 7,0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료를 제공하지 않은 자치구를 제외하더라도 8만 명이 넘는 어린이의 수가 서울형 어린이집에서 급식을 제공받는 것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강언주 간사는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서울의 각 구에서 관할 어린이집의 수산물 납품 실태와 원산지 표기 등에 대해 허술하게 관리하고 있음이 드러났다.”며 “이에 대해 각 지자체는 엄격한 관리 및 감독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민적인 불안감이 증폭되는 시점에서 학부모들 또한 영·유아 급식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자녀 한 명을 키우고 있다는 학부모 안미정(경기도 용인시) 씨는 “사실 요즘 뉴스를 보면 집에서도 불안해 아이에게 수산물을 못 먹이고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확인도 안 된 음식을 먹여야 한다면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전면 금지’…한국은 위험 인식조차 없어

그렇다면 방사능에 대한 국민의 우려는 과연 기우일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농림수산검역본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2년에만 일본에서 수입된 냉장 명태에서 34회, 냉동 고등어에서 37회, 냉동 대구에서 9회 가량 세슘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방사능 물질이 생선의 몸속에 축적되고 있지만 국내의 방사능 관리체계는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나라 정부가 정한 기준치는 요오드의 경우 100Bq/kg(우유 및 영·유아용 식품) 또는 300Bq/kg(그 밖의 식품), 세슘의 경우 370Bq/kg이다. 다만 일본산 수입 수산물에 대해서만 지난 2012년부터 세슘 기준치를 100Bq/kg으로 운용하고 있다.

이미 지난 2011년 일본 5개 현의 모든 식품에 대한 수입을 금지한 타이완과 10개 현의 모든 식품과 사료에 대해 수입을 금지한 중국의 조치와 비교했을 때 느슨한 규제인 것.

이러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학교급식에 사용되는 식재료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조례 제정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경기도와 서울시에서 각각 ‘학교급식 방사능오염 식재료 사용제한에 관한 조례’와 ‘방사능 등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식재료 공급에 관한 조례’가 제정됐으며 다른 지역에서도 학교급식을 방사능 위험으로부터 지켜나가자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녹색당은 “경기도와 서울시에서 제시됐던 조례 내용이 어린이집 급식까지 확대 적용돼 영·유아의 안전한 먹을거리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법과 제도의 개정뿐 아니라 지역 차원의 선전전을 벌일 계획이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회 하승수 위원장은 “조례 제정이 방사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녹색당이 발표한 모범조례의 내용은 △방사성물질 검사에 관한 체계를 갖추고 필요한 인력 및 장비 확보 △최소한의 검사 주기(연 2회 이상) 명시 △방사성물질 검사체계, 품목, 주기, 방식 등을 포함하는 방사성물질 검사계획 등을 심의·의결할 감시 기구를 갖추고 학부모 등의 참여 보장 △방사성물질이 검출될 경우 식재료 사용 제한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하 위원장은 “조례 제정을 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많은 토론이 이뤄질 수밖에 없고 행정부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며 “학교 및 어린이집 급식의 방사능 검사 체계를 확실하게 명기한 조례 제정을 추진하는 것이 사회적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학교(유치원 포함) 급식과 어린이집 급식의 안전관리는 각각 교육청과 기초지방자치단체로 나뉘어져 있어 교육자치와 일반지방자치가 분리돼 있다는 것이 문제.”라며 “책임주체와 협력주체를 명확하게 구분짓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한국YMCA연합회 생명비전연구소 이윤숙 소장은 “어린이와 청소년 급식에 방사능 오염 먹거리가 공급되고 있는지 그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 조치.”라며 “무엇보다 먹거리의 방사능 안전 여부를 시민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관련 조례안을 제정하는 등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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