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대한민국의 저소득층 국민들을 위해 생계·교육·의료·주거·자활 등에 필요한 경비 지원을 통해 최소한의 기초생활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줄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다.

하지만,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포함되지 못한 비수급 빈곤층이 410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8.4%에 달하는 등 심각한 빈곤사각지대를 양성하고 있어 제도의 원활한 시행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명시된 부양의무자의 기준으로 꼽히고 있다.

부양의무자란 제5조에 따르면 ‘수급권자를 부양할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수급권자의 1촌의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를 말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명시된 부양의무기준은 노인이나 장애인 등 경제적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의 부양을 가족의 책임으로 전가해, 가족이 일정 소득이 최저생계비 185%인 444만8,603원을 초과하면 부양능력 있음으로 간주되고, 그 금액 이하를 미약이라고 결정해서 초과하면 기초생활수급에 제한을 받는다.

이러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실제 부양의무자의 경제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있고, 부양의무자의 소득 기준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 4월 4일 ‘기초법의 올바른 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민주당 남윤인순 의원은 “2012년 국정감사에서 정부 자료를 분석해 보니, 2011년에 기초생활수급자격을 박탈당한 19만 3,591인 중에서 10.3%인 1만 9,978인이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이었다.”며 “자격을 박탈당한 부양의무가구의 평균 소득은 233만 원 수준으로 전국가구 평균소득 345만 원의 67% 수준에 불과하다.” 고 전했다.

이어 “현 빈곤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정부지원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지원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매우 많다는 사실.”이라며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탈락한 이유 중 74.2%가 부양의무자 기준을 초과한 것이라는 자료가 이를 말해준다. 최저생계비 이하 계층 272만 명 중에서 기초보장제도의 수급을 받는 인구는 155만 명으로 수급율이 57%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인갑 답게 살기’ 강제 포기

쪽방에서 살고 있다고 밝힌 김한식(74세) 씨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권리도 누릴 수 없다며 비판했다.

김 씨에게는 세 명의 자식이 있지만, 1998년 IMF의 타격으로 사업에 실패한 뒤 아내와 이혼하는 등 가족과의 연락을 끊었다.

김 씨의 매달 생활비는 노령연금 8만 원과 노인일자리로 근로생활을 하며 버는 20만 원이 전부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기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지만, 부양의무자가 셋이나 있다는 이유로 신청이 무산됐다.

김 씨는 “연락조차 되지도 않는 자식들이 부양의무자로 인정돼 신청이 무산됐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현재 빈곤층들의 생존권 문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중증장애인의 경우 자립생활과 맞물려 더 큰 문제가 된다.

▲ 노들장애인야학 하상윤 활동가.
▲ 노들장애인야학 하상윤 활동가.
중증장애인의 경우 노동시장 진입의 기회가 닫혀 있기 때문에 장애인연금이나 기초생활수급은 ‘생존권’과 직결되기 때문.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활동하고 있는 하상윤 활동가 역시 중증장애로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지만, 매번 돌아오는 것은 탈락이었다.

하 씨는 열 살 때부터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았다. 그는 ‘지옥’ 같은 생활을 끝내기 윟해 동료들과 해당 시설을 나왔고, 현재 자립생활 체험홈에서 살고 있다.

하 씨는 “자립생활 하기 위해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재산과 내 명의로 된 차가 있다는 이유로 거부 당했다.”고 밝혔다.

부양의무자로 돼 있는 아버지는 골프장 관리직으로 한 달에 50만 원의 월급을 받고 있다. 부양 능력이 있다고 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금액인데다, 하 씨는 아버지와 5년 동안 연락 없이 지내고 있는 상태다.

하 씨는 부당함을 알리고자 여러 번 신청을 시도했지만, 해당 기관은 ‘부양의무자 기준에 의해 수급권자가 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하 씨는 현재 장애인연금과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받는 장학금을 합친 30~40만 원으로 한 달을 생활한다고 밝혔다.

하 씨는 “아버지와 연락을 하지 않은지 오래됐지만 설령 연락한다고해도 아버지의 월급이 나를 부양할 수 있는만큼 많은 것도 아니고, 71세의 아버지가 나를 부양하라는 것자체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이미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된 사람은 소명절차를 밟아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은 사람의 경우, 아무리 생존에 어려움을 겪어도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가 기초생활수급을 받기 위해서는 가족과 강제로 헤어지는 것 뿐이며, 이것이 바로 부양의무자 기준의 역효과다.

지난 2012년 9월 국회도서관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수급자 증언대회’에서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양유진 활동가는 가족의 기초수급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 사례를 전했다.

양 활동가는 “장애가 있는 아버지를 둔 나는 가족의 기초생활수급권 유지를 위해 휴학도, 외국여행도, 대학원 진학도 할 수 없었다. 하나씩 선택할 때마다 수급비가 삭감되거나 박탈 당할 위기에 처했다.”며 “20대 모든 삶의 선택에는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라는 제도가 돌부리처럼 튀어나왔다.” 고 전했다.

그는 대학생 시절, 혼자 배낭여행을 다녀오기 위해 휴학했다. 하지만 휴학하게 되면 실제 노동을 하지 않더라도 노동능력이 인정돼 수급비가 삭감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양 씨는 “아무리 일해도 나는 아버지를 먹여 살릴만큼의 돈을 벌 수가 없다고 따져 물었지만, 결국 수급비는 삭감됐다.”고 말했다.

이어 “나에게 가족이란, 함께한 시간동안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공간이며 관계다. 누가 누구의 삶을 몽땅 책임져주는 관계가 아니다.”며 “오히려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말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책임과 의무의 관계로 규정 짓고 불안하게 만들었다.”며 부양의무자 기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장애계 단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요구에 정부는 ‘동문서답’

▲ 장애계단체와 시민단체는 부양의무제가 빈곤층을 ‘깡통’차게 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 장애계단체와 시민단체는 부양의무제가 빈곤층을 ‘깡통’차게 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냈다. 하지만 이는 시민단체로부터 ‘부양의무자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권리성 급여를 훼손한 개악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유재중 의원안으로 상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부양의무 기준을 그대로 유지함은 물론 수급자 선정과 급여 수준을 정하는 최저생계비 개념을 해체하고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교육급여 ▲해산급여 ▲장제급여 ▲자활급여로 구성된 기존 7개의 급여를 각 해당 부처에 위임하는 내용을 담았다.

시민단체는 “유재중 의원의 대표 발의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일부 개정안은 사실상 최저생계비를 무력화했다. 각 급여의 선정기준과 보장 수준을 각 부처 장관이 정할 수 있게 해 민주적 정당성을 훼손하고 예산에 종속된 복지제도로 전락시켰다.”고 질타했다.

지난 17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 반대와 장애인연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결의대회에서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유재중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 의지에 맞춰놓은 개정안을 확인해보니 적어도 최저생계비는 보장이 됐던 수급권자의 권리를 장관 제량이라는 말로 대체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최저 생계비가 필요한 장애인들에게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 같다.”며 “최저 생계비는 생존을 위한 기준, 사회적 합의 따른 기준인데 이것을 장관의 제량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생존권을 예산에 짜 맞추겠다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또한, 지난 27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장애인공약 파기! 복지 0점! 박근혜 정부 1년 규탄 기자회견에서 빈곤사회연대 김영윤 사무국장은 “우리가 말하는 개별 급여는 현재 정부가 말하는 개별급여가 아니다. 최저생계비 이하 빈곤층을 안전하고 단단하게 보장하고 다른 급여들을 필요에 따라 지원하는 ‘진짜 맞춤 급여’를 말한다.”며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주장들은 번번이 예산 문제로 무산됐다.”고 전했다.

2014년, 박근혜 정부의 맞춤형 복지에도 불구하고 빈곤 사각지대에 놓인 많은 이들의 신음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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