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계와 시민사회단체 “가난한 이들을 더 이상 죽음으로 내몰지 말라”

지난달 26일 발생한 송파구 세 모녀의 자살에 대해 장애계가 “현재 복지체계가 만든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과 ‘기초법개악저지 빈곤문제해결을 위한 민생보위’는 3일 청운 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 모녀의 죽음을 비롯해 기초생활 수급 신청자들의 어려움 앞에 정부는 ‘선별’하기에 급급했다.”며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포함한 복지제도의 전면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한편, 이에 대한 질의서를 청와대 민원실에 제출했다.

월세 38만 원과 20만 원 생활비…가난을 넘지 못한 세 모녀의 삶

지난달 26일 송파구 송파대로의 단독주택 지하방에서 나란히 누워 숨진 어머니 박모 씨와 두 딸이 발견됐다. 세 모녀 옆에는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힌 봉투가 놓여 있었고, 봉투 안에는 현금 70만 원이 들어 있었다.

▲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박경석 대표
▲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박경석 대표
어머니 박 씨의 남편은 12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고혈압과 당뇨가 심했던 큰 딸은 병원비 부담에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박 씨가 인근 놀이공원 식장에서 번 돈과 둘째 딸이 종종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월 38만 원 집세와 매달 20만 원 정도인 전기세 등 생활비를 충당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 달 전 박 씨가 식당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넘어져 크게 다치면서 식당일을 그만두게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경찰은 외부인 출입이나 타살 흔적이 없고 번개탄을 피운 점 등으로 미뤄 동반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공동행동 박경석 대표는 “가난 때문에 죽는 것이 박근혜 정부가 말한 ‘맞춤형 복지’인지 의문.”이라고 질타했다.

박 대표는 “현 정부는 ‘맞춤형 복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세 모녀는 어려움 속에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했다.”며 “그리고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해야 하는 정부가 의무를 다 하지 못하는 사이에 소외계층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폭 좁은 복지제도 “가난만 넓어져 간다”

수급신청 방식과 폭 좁은 복지제도의 문제도 지적됐다.

사회진보연대 윤혜숙 활동가는 “사각지대에 빠져있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복지제도에 다가올 수 있도록 안내해 할 때 법에서 정하는 권리가 실현되지만 우리나라의 복지 수급권은 ‘신청’을 통해서만 발생할 뿐.”이라며 “하지만 부족한 행정인력, 빈곤층과 복지수급자를 예비범죄자로 보는 우리 사회 풍토, 근로능력평가와 부양의무자기준 등이 가난한 이들을 ‘선별’하는데 집중돼 있다.”고 전했다.

▲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
▲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 보건복지부는 ‘급여신청을 하지 않아서다’라고 이야기했다. 긴급지원 신청하지 않은 것도 이유로 설명했다.”며 “만약 이 사람들이 기초수급 신청을 신청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 해봤다. 먼저 어머니가 수급신청을 하러 갔다면, 한 달 전에 수급이 있었기 때문에 두 달간의 의료기록 및 ‘소득 없음’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구두로 신청을 거절당할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고 까다로운 수급 기준을 지적했다.

이어 “또, 두 달을 기다리고 신청하더라도 넘어져서 다친 어머니는 소득을 받을 수 있는 질병이 아니고, 나이가 61세라 근로 능력이 인정되기 때문에 진단서를 내거나 계속해서 의료기록을 제출하고 빠른 시일 내에 근로능력평가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이라며 “아프던 첫째 딸도 근로능력이 인정됐을 것이다. 근로능력자가 아니라면 꾸준히 병원통원기록을 통해서 만성질환자로 인정받아야하는데 이들은 돈이 없어서 병원을 못 다녔기 때문에 인정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어려움에 처해있는 이들은 까다로운 신청방식과 기준 속에서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 장애계와 시민사회단체의 지적이다.

김 사무국장은 “긴급지원제도가 있지만 화재 또는 부양자가 구금시설에 갇힌 경우만 인정돼 ‘알아도 신청 못하는’ 사례들이 있다.”며 “빈곤층 우선지원과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홈리스행동의 박사라 활동가는 송파구 세 모녀를 비롯한 많은 빈곤층이 부양의무자 기준 등 잘못된 제도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박 활동가는 “매년 300인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와 쪽방 등에서 아프고 먹지 못하지만 지원을 받지는 못한다.”며 “아파서 일을 못하기도 하고, 연락이 두절된 자식 때문에 수급이 깍기기도 한다. 이것이 소외계층의 현실이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머금었다.

이어 “이뿐만 아니라 수급신청을 하거나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세금을 갉아 먹는 사람’ 취급하는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다. 막상 수급이 필요한 사람들도 내가 이돈 때문에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하고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사회의 잘못된 시선을 지적하며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삶을 살아가는 권리를 위한 지원이지만, 빈곤층을 적극적으로 찾는 것보다는 부정수급을 적발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이 끝나고 박경석 대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정부의 입장 등을 묻는 ‘공개질의서’를 청와대 민원실에 제출하기 위해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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