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10대 청소년 노동 실태조사 보고대회 열려

▲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트가 지난 6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10대 밑바닥노동 실태조사 보고대회’를 열고, 청소년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정유림 기자
▲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트가 지난 6일,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10대 밑바닥노동 실태조사 보고대회’를 열고, 청소년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정유림 기자

“정작 제가 집을 나와보니까 할 수 있는 건 ‘알바’밖에 없는 거예요. 먹고 살기 위해서 하루 12시간 씩 일해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피곤해서 자 버리게 되는……. 제가 알바 하려고 사는 건지 살기 위해 알바를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탈가정한 후 고기집 알바, 푸드코트 알바 등 다양한 종류의 일을 해온 청소년 A 씨-

“학교를 다 졸업을 해야지 정규직이고 좋은 노동자가 되고 좋은 데서 일할 수 있잖아요. 근데 저처럼 소위 말하는 중도탈락 이런 학생들은 파견직이나 비정규직 밖에 못하고. 그 체제에 잘 순응하고 적응한 학생들이 그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노동자가 되는 그런 시스템인 것 같아요.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불순분자들은 소위 말하는, ‘하찮은’ 이런 거고.”

- 음식점 알바, 패스트푸드점 알바 등 다양한 종류의 노동 경험을 갖고 있는 청소년 B 씨-

청소년인권단체인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가 지난 6일, 서울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10대 밑바닥노동 실태조사 보고대회’를 열고, 청소년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네트워크에 따르면 “청소년 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난 2000년 이후 정부 차원의 대책이 여러 차례 발표된 바 있지만, 정부의 이 같은 노력은 전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네트워크 배경내 활동가는 그 이유로 ▲청소년 일자리 감소 ▲간접고용·특수고용 등 불안정노동 확산 ▲청소년 노동에 가족 배경이 영향을 미친다는 점 등을 꼽았다.

이날 청소년 노동자들은 영상 보고를 통해 자신들이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음을 전했다.

최근 사업장에 직접 고용되지 않고 배달대행업체와 계약을 맺고 음식을 배달하거나 잔심부름 배달을 해주는 배달대행 알바의 경우, 사고가 나도 산재 신청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시간외 수당이나 퇴직금 등 각종 법적 보호를 제대로 누릴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택배 물류 단지가 집결돼 있는 충북지역이나 경기지역의 청소년들이 노동에 많이 참여하는 택배물품 분류 노동은 청소년들에게 속칭 ‘지옥 알바’로 불렸다.

해당 노동은 초보인 단기 아르바이트생에게 중량물을 쌓거나 던져 올리는 가장 힘든 일이 배치되는데, 쌓아둔 물건이 언제 쏟아져 내릴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위험 상황을 견뎌야 했고, 폭언과 고함을 중심으로 작업지시가 이뤄지는 험악한 작업 환경이 버티고 있었던 것.

▲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배경내 활동가.  ⓒ정유림 기자
▲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배경내 활동가. ⓒ정유림 기자
배 활동가는 “청소년 노동자들의 불안정 노동은 고용 형태만을 두고 문제라고 할 수 없다.”며 “임금과 수수료를 중간에서 착취하는 호텔연회장 서빙, 위험노동을 일용화하는 택배물품 분류 노동 등 노동조건이 후퇴하고, 생활의 불안정화를 동시에 수반한다는 것이 ‘진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역시 청소년 노동이 비정규직에서 더 나아가 간접고용, 특수고용 등 불안정노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데 우려를 표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는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는 청소년 불안정노동의 새로운 양상에 대한 대책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변호사는 “정부가 아무리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도록 사업주 교육을 하더라도 간접고용, 특수고용, 무급인턴 등 청소년노동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날 보고회에서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가정 청소년의 노동 문제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청소년 노동자 C 씨는 “불충분한 급여 수준으로 꾸준히 일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일자리에서 받는 소득으로 인해 수급 자격이 박탈될 수 있어 4대 보험이나 소득신고를 하지 않는 ‘비공식 노동’을 주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급 가정의 청소년은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요구하기 이전에 부당한 근로계약의 내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기초생활을 보장받을 권리와 노동의 권리는 서로 타협할 수 없는 권리.”라고 꼬집었다.

김 사무국장은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에게는 ‘일을 하거나 제도 밖으로 나가라’는 회초리만 있을 뿐, 제대로 된 일자리를 함께 만드는 노력은 빠져 있다.”며 “이는 ‘자활을 돕는다’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취지와도 어긋날 뿐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빈곤문제를 반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탈가정 청소년들의 노동권 현실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됐다.

움직이는청소년센터 EXIT 변미혜 센터장은 “탈가정 청소년들의 건강한 노동 환경과 조건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청소년 범죄와 폭력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와 기업, 개별 단체들이 협력해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인턴십, 단기형 일자리, 청소년자활지원센터 등)를 연결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배 활동가는 “정부가 요란하게 발표한 정책들에 비해 실효성을 구조적으로 뒷받침할 법 개정이나 노동시장 정책은 미비하기 이를 데 없다.”며 “청소년들의 노동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중심이 아닌 불안정한 고용문제와 관련한 법률의 정비가 필수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불안정고용, 탈가정, 기초생활수급 등 청소년 당사자들의 조건을 고려할 때 정부는 청소년 노동정책 뿐 아니라 복지정책, 가족정책, 교육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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