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 하락 피해자 이의신청, “4년 전 우려가 현실로… 장애등급 판정 멈출 것”

“같은 자리에서 투쟁한지 벌써 4년이 지났다. 우리는 조금 더 늙어서 이 자리에 다시 왔다. 예고했던 우려가 현실이 됐기에 다시 온 것이다.
4년 전 우리는 ‘장애등급이 떨어지면 생사가 갈릴 것이고 그로 인한 불상사가 생길 것’이라며 장애등급제 폐지와 장애등급재심사 중단, 장애등급 하락 피해자들에 대한 긴급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벌였다.
4년 전 우리가 예고했다면 지금은 분명히 알고, 직접 당하고 왔다.
나의 장애를 두고 ‘얼마나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나, 얼마나 혼자서 옷을 입고 벗을 수 있나, 얼마나 혼자서 신변처리를 할 수 있나’에 대해 심사하는 것에 수치심을 느껴야했다.
그 수치심을 무릅쓰고 심사 받은 결과는 장애등급 하락이었다.
당장 오늘밤 화징실을 어떻게 가야할지, 밥을 어떻게 먹어야할지 걱정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그 원인은 단 한 가지, ‘내가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의한 것이 아닌 의사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

장애등급 하락으로 피해 받고 있는 당사자 2인을 비롯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장애등급제 폐지와 긴급지원대책을 촉구하며, 10일 오전 11시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장애등급심사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10년 9월 4박5일간 같은 장소를 점거하고 단식농성을 진행했다. 활동가 13인에 대한 벌금형과 4인에 대한 집행유예가 선고되기도 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장애계와 장애인서비스개편기획단을 구성해 논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해당 안건 추진은커녕 현재까지 장애등급으로 인한 피해는 계속 일어나고 있는 상태다.

▲ 송국현 씨.
▲ 송국현 씨.
서울시 성동구 자립생활체험홈에서 지내고 있는 송국현(53) 씨는 20여년을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생활하다가 지난해 10월 퇴소했다.

송 씨는 뇌병변장애와 언어장애가 있어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로,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하기 위해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아야 했다. 기존에 중복장애 3급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재심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긴급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게다가 장애등급 재심사에서도 기존과 같은 판정을 받아,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돼 있는 상태라는 것. 해당 구청 등에 항의한 결과 가사서비스를 신청하기는 했지만, 활동지원서비스와는 목적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소용 없다.

인천광역시에 사는 민병욱(52) 씨 역시 밥을 혼자서 먹지 못하는 등 활동지원서비스가 절실하지만, 장애등급 재심사로 중복장애 1급에서 뇌병변장애 5급으로 떨어졌다.

민 씨는 현재 요양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탈시설-자립생활을 하고 싶어도 활동지원서비스 및 장애인연금 등의 신청 자격이 없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 민병욱 씨.
▲ 민병욱 씨.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진영 소장은 “2010년 점거농성 당시 나는 손이 조금 움직이고 배변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로 장애등급이 1급에서 2급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해 죽으나, 단식해서 죽으나 매한가지였다.”며 “언제까지 동정과 시혜로 던져주는 것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주는 밥 먹으며 매일 똑같은 삶을 살아라는 말이다. 장애인이 사육당하는 짐승이 아닌 사회에서 함께 사는 인간이 될 때까지 함께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현 소장은 “2010년 점거농성으로 구치소를 다녀왔다. 국민연금공단은 생존권을 좌지우지하는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됐고,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을 전과자로 내몰고 장애인을 죽이고 있다.”며 장애등급제 폐지를 촉구했다.

이어 정부의 2014년 장애인정책 추진계획에 대해 “그 내용에 동의하지 못한다. 하지만 국민연금공단은 적어도 당장 장애등급 판정을 멈춰야 한다. 그것이 전달체계로서의 올바른 역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피해자 송국현·민병욱 씨외 4인은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와 이의신청 및 긴급지원 대책 촉구 면담을 갖기로 미리 약속한 상태였다.

▲ 전동휠체어는 들어갈 수 없도록 출입문 앞에 설치된 턱. 장애계단체가 항의하자 건물 관리자측이 설치된 턱을 치우고 있다.
▲ 전동휠체어는 들어갈 수 없도록 출입문 앞에 설치된 턱. 장애계단체가 항의하자 건물 관리자측이 설치된 턱을 치우고 있다.
▲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측은 ‘민원인의 편의를 위해서’라며 공개적인 자리 1층에 책상을 놓아 간이 상담실을 마련했다.
▲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측은 ‘민원인의 편의를 위해서’라며 공개적인 자리 1층에 책상을 놓아 간이 상담실을 마련했다.
11시 53분경 기자회견을 마치고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가 사무실이 위치한 6층으로 올라가려고 하자, 문 앞에는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도록 턱이 설치돼 있었다.

항의 끝에 턱을 치우고 들어갔지만, 마찰은 계속됐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공개적인 자리 1층에 책상을 두고 간이 상담실을 마련한 것.

관계자는 “원래는 없는 자리지만, 민원인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 및 활동가들은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의 한 직원은 동의 없이 사진을 찍어 물의를 일으켰다.

▲ 장애계단체가 출입문 턱 설치와 1층 간이 상담실 설치에 강하게 항의하자, 한동안 경찰들은 출입문을 아예 막아섰다.
▲ 장애계단체가 출입문 턱 설치와 1층 간이 상담실 설치에 강하게 항의하자, 한동안 경찰들은 출입문을 아예 막아섰다.
▲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측이 ‘공간이 좁다’·‘많은 사람이들어가면 원활한 소통이 어렵다’며, 당초 약속과 달리 적은 인원이 들어갈 것을 요구하고 있는 모습.
▲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측이 ‘공간이 좁다’·‘많은 사람이들어가면 원활한 소통이 어렵다’며, 당초 약속과 달리 적은 인원이 들어갈 것을 요구하고 있는 모습.
20여분 대치 끝에 6층으로 이동했지만, 여기서도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는 ‘공간이 좁아 이의신청을 하는 당사자만 들어갈 수 있다’고 막아섰다.

이에 활동가 1인이 사무실에 들어가 확인한 뒤 ‘공간이 충분하다’고 반박하자, ‘여러 명이 들어가면 원활한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활동가들은 ‘원래 약속했던 것을 왜 다시 뒤집느냐.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도 있고, 원활한 의사소통 및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함께 지낸 활동가들이 같이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측은 계속해서 ‘당사자 외 꼭 필요한 활동가를 포함한 5인만 들어갈 것’을 주장했고, 결국 현장에서의 이의신청서 작성 및 접수는 이뤄지지 못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은 “약속했던 것조차 지키지 않으니 접수를 거부한 것과 마찬가지다. 피해자 2인은 당장 긴급지원이 필요한 상태니 접수하겠지만, 이런 식의 응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규탄했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