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홀로 잠든 사이 화재 발생… 3도 화상, 의식 및 수술 여부 ‘지켜봐야’

▲ 지난 10일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 앞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폐지와 피해자 이의신청 및 긴급지원 대책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송국현(왼쪽) 씨. 그의 이야기를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정동은(오른쪽) 사무국장이 대신 전하고 있다.
▲ 지난 10일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 앞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폐지와 피해자 이의신청 및 긴급지원 대책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송국현(왼쪽) 씨. 그의 이야기를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정동은(오른쪽) 사무국장이 대신 전하고 있다.

“저는 송국현입니다. 저는 24세 때 넘어져 뇌출혈로 장애가 생겼습니다. 말을 할 수 없고 오른쪽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살아갈 방법이 없어서 25세 때 시설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27년을 살았습니다. 지금 나이가 53세입니다.
시설의 생활은 내가 원하는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곳을 다니고 싶었고, 일하고 싶었고, 결혼도 하고 싶었습니다.
나보다 중증인 장애인들이 자립생활을 한다고 소개했을 때 너무 부러웠습니다. 자립생활을 하면 나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다는 분홍빛 꿈을 꾸게 됐습니다.
27년간 살아온 시설을 나올 때 두려워서 갈팡질팡 했었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시설을 나왔습니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것은 첫 번째 밥을 먹는 문제였습니다. 쌀통에 쌀을 씻어 통을 들어야 하는데, 팔에 힘이 없어서 들 수 없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혼자서는 목욕을 할 수 없습니다. 혼자서는 양치질을 잘 할 수 없습니다. 빨래도 혼자서는 어렵습니다. 물건을 사는 데도 혼자서는 사기가 어렵고, 사람들에게 부딪히면 넘어지기 일쑤고, 휠체어를 타야하지만 밀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밥 먹는 것부터 생활하는 것까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싶습니다. 야학에 가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꽃구경도 가고 싶습니다. 동료들을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모임에서 나들이를 갈 때도 같이 가고 싶습니다.
현실을 분홍빛이 아니라 죽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1년 동안 체험활동을 해서 자립생활을 준비해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계속 발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너무 슬픕니다. 너무 우울하고 답답해서 밤에 잠을 못잔지 오래됐습니다. 이제는 잠을 못 자서, 더 고통스러워서, 약을 먹어야만 잠을 잘 수 있습니다. 나는 너무 우울하고 죽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송국현 씨의 이야기. 2014.04.10 ‘장애등급제 폐지와 긴급지원대책 촉구 기자회견’ 중-

▲ 송국현 씨가 자립생활의 꿈을 키우며 지내온 자립생활체험홈이 불에 탄 모습. ⓒ복지TV 김선영
▲ 송국현 씨가 자립생활의 꿈을 키우며 지내온 자립생활체험홈이 불에 탄 모습. ⓒ복지TV 김선영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던 송국현 씨. 그의 꿈은 날개를 채 펴기도 전에 장애등급과 활동지원서비스 부재로 불에 타고 말았다.

13일 서울시 성동구 무학봉에 위치한 자립생활체험홈에서 불이 나, 그곳에 혼자 있던 송국현(53세) 씨가 3도 화상을 입었다.

▲ 송국현 씨.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 송국현 씨.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오전 10시 56분경, 윗 층에 사는 집주인이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고 소방서에 신고했다. 소방대원이 도착했을 때 송 씨는 혼자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상태였으며, 잠들어 있는 사이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송 씨는 오전 11시 11분 한양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고, 검사를 마친 뒤 다시 오후 1시 베스티안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는 두 팔과 두 다리에 심한 화상을, 얼굴 및 가슴에도 화상을 입었다.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으며, 진정제 및 진통제 투여로 의식 및 수술 여부 등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송 씨는 1990년 25세 때 장애인거주시설에 들어가 생활하다가 지난해 10월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나왔다.

너무 긴 시간 동안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았던 송 씨는 가족과의 연락이 끊긴지 오래됐으며, 오른쪽 마비와 언어장애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많아 활동지원서비스가 꼭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종합장애등급 3급(언어장애 3급, 뇌병변장애 5급) 판정으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다.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기 위해 지난해 11월~지난 1월 병원에서 3~4회 진단을 받고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로는 ‘기존 판정 뒤 악화 소견이 확인되지 않는 점’, ‘보행과 대부분의 일상생활 동작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신이 수행하나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때가 있으며, 수정바델지수가 81~89점’이라는 것.

▲ 송국현 씨가 자립생활의 꿈을 키우며 읽고 공부했던 책들이 검게 그을린 채 화재 현장에 남아있다. ⓒ복지TV 김선영
▲ 송국현 씨가 자립생활의 꿈을 키우며 읽고 공부했던 책들이 검게 그을린 채 화재 현장에 남아있다. ⓒ복지TV 김선영
▲ 소방대원이 사고 현장에서 송국현 씨를 발견한 장소. 송 씨는 당시 침대 위에 혼자 누워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TV 김선영
▲ 소방대원이 사고 현장에서 송국현 씨를 발견한 장소. 송 씨는 당시 침대 위에 혼자 누워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TV 김선영

발목 잡는 ‘장애등급제’, 죽음으로 모는 ‘활동지원서비스 제한’

하지만 이는 현실과 다른 소견이었다. 혼자서 식사는 물론 씻는 것조차 어려웠던 송 씨는 활동지원서비스가 없어 불안한 생활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었다.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송 씨를 위해 사업비 및 후원금 등을 모아 그의 일상생활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이는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송 씨는 장애계단체 및 관련 기관 활동가들의 손을 빌려야만 했고,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누군가가 도와줄 수 있는 상황’에 자신의 생활을 끼워 맞춰야 했다. 심지어 누군가가 도와주기 어려운 주말에는 이미 탈시설-자립생활을 한 다른 사람들의 집을 돌아가며 지내야 했다.

활동가들은 지난달 장애등급 재심사 판정으로 활동지원서비스를 ‘당연히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고, 이에 지난 10일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장애등급심사센터)를 찾아 장애등급제 폐지와 이의신청 및 긴급지원 대책을 촉구했다.

하지만 당시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측이 당초 약속과 달리 사무실이 아닌 1층에 간이 상담실을 설치하고, 출입을 제한해 현장에서의 이의신청 등은 이뤄지지 못했다.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정동은 사무국장은 “장애인거주시설에서의 생활환경과 지역사회에서의 생활환경은 다르므로, 단순히 악화 소견만으로 판정하는 것은 한계다. 한 번도 국민연금공단에서 송국현 씨를 보러 온 적이 없고, 의료적인 수치만 갖고 판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정 사무국장은 “아주 평범한 목표를 갖고 지역에 나왔는데, 그마저도 이루기도 전에 장애등급에 발목을 잡혀 큰 사고를 당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등급과 상관없이 필요한 사람들이게 지원돼야 한다. 활동보조서비스만 이뤄졌더라도 불을 피해 나올 수 있었다. 故 김주영 열사도 활동지원서비스가 없어 세상을 떠났다.”며 “제2, 제3의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반드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필요한 서비스가 지원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은 “다음 주 안으로 이의신청 및 긴급지원을 다시 한 번 더 촉구할 예정이었는데, 이런 사고가 일어났다.”며 “14일 국민연금공단 성동광진지사를 찾아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 송국현 씨가 있는 중환자실 앞에서 장애계단체 활동가들이 면회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 송국현 씨가 있는 중환자실 앞에서 장애계단체 활동가들이 면회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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