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었던 복지제도는 장애등급제를 매겨놓고 신청 자격도 안줍니다. 비명도 못 지르고 불타 죽은 사람을 3급 장애인이래요. 이게 우리나라가 죽인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故 송국현 씨 앞에 사죄라도 하라고 그의 집에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깡패로 보이십니까? 우리가 법 어기고 싶어서 그냥 생난리 치는 이상한사람들로 보이시나요?”

▲ 경찰의 진압에 눈물 흘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
▲ 경찰의 진압에 눈물 흘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故 송국현 씨가 장애등급제와 활동지원서비스 부재로 죽음을 맞이한 것에 대한 사죄를 받으러가는 것이라며, 자신들을 죄인 취급하는 경찰들을 질타하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타고 싶어도 타지 못하는 버스… 2001년부터 투쟁했으나 ‘제자리’ 이동권

▲ 장애계의 10대 요구안을 담고 출발하려 했던 희망버스는 끝내 시동을 걸지 못했다.
▲ 장애계의 10대 요구안을 담고 출발하려 했던 희망버스는 끝내 시동을 걸지 못했다.
지난 20일 장애계는 홀로 화마에 목숨을 잃은 故 송국현 씨의 죽음은 장애등급제가 만든 사회적타살이라고 외쳤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420공투단) 등 장애계와 시민단체는 오전 10시 20분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모여  ‘장애등급제 희생자 故 송국현 동지 추모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故 송국현 씨를 추모함과 동시에 변하지 않은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하며, 일명 ‘희망버스 타기’를 진행한 것.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도건 집행위원장은 “장애인은 저상버스 한 대 타기 위해 기본으로 한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설령 저상버스가 왔다고 해도 장애인을 태우지 않거나 기사가 저상버스를 다룰 줄 몰라 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우여곡절 끝에 탔다고 해도 내릴 때 리프트가 작동하지 않아 추락사고가 난 적도 있다.”며 장애인의 처절한 이동권 현실에 대해 고발했다.

이어 “정부는 저상버스 도입에 돈 쓰고 있다고 생색을 내고 있지만 정작 관리는 하지 않고 있다.”며 “잦은 고장으로 인한 수리비, 보전 비용 등은 민간에게 알아서 하라고 한다. 정부는 이동약자를 위한 이동권 보장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다.”고 규탄했다.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3조에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장애인 등의 교통약자가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고속버스 및 시외버스, 농어촌버스, 광역버스, 공항버스, 마을버스 등에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다. 시내버스에만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휠체어를 탄 채 탑승할 수 있는 저상버스가 도입돼 있으나 이마저도 법정대수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420공투단과 시민단체는 오전 11시 50분 경 약 200여 명의 장애인들이 미리 구입한 대전행 차표를 들고 ‘장애인차별철폐 희망고속버스 타기’를 진행하기 위해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안으로 이동했다.

이날 희망고속버스에는 20개의 버스에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발달장애인법 제정 ▲수화언어법 제정 ▲탈시설 권리 쟁취 ▲장애인 이동권 쟁취 ▲장애인노동권 쟁취 ▲장애인교육권 쟁취 ▲장애인정보문화권을 위한 법 개정 등 10대 요구안을 구체화한 20개의 희망을 하나씩 담을 예정이었다.

420공투단과 시민단체는 정당하게 표를 구입하고서도 끝내 버스를 탈 수 없었다. 경찰측은 이들의 탑승을 철저하게 막았고, 심지어 최루액을 살포하기까지 했다. 420공투단과 시민단체는 최루액을 맞으며 고통과 분노의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냈고, 몇몇은 구토 증상을 보였다.

서초경찰서 1,000여 명의 경찰은 이렇다 할 법적 근거 없이 장애계의 출입을 통제했고, 이에 분노한 420공투단과 시민단체 사이에 한 시간 가량 충돌이 계속됐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승객의 탑승할 정당한 권리’를 막는 경찰을 질타하며 서초경찰서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서초경찰서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이같은 경찰의 통제가 아니더라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들은 절대 버스를 탈 수 없다며, 장애인 이동권의 취약성을 비판했다.

김대근(부산, 40세)씨는 뇌병변장애인으로 직접 고속버스에 오르는 시범을 보였지만, 남자 2인이 휠체어를 끌어 올려야 했고, 버스 안에 도착해서도 장애인좌석이 따로 배치돼 있지 않아 탑승자체가 불가능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누구든 고속버스를 타는 것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며, 이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한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경찰측이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것을 불법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헌법 제 1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 법을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차별하고 탄압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헌법 제 11조 1항에는 누구든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모든 삶의 영역에서 차별 받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며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영역에서 차별당하고 무시당해 왔다. 이것들을 부술 수 있는 것은 헌법을 지키는 것이다. 헌법을 무시하는 정부와 그 정부를 지키기 위해서 공권력으로 진압하는 경찰들에게 우리는 행동으로 맞서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 최루액을 살포하는 서초경찰서 측.  
▲ 최루액을 살포하는 서초경찰서 측.
   

인간답게 살 권리 ‘자립생활’ 망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장애등급제

한편 420공투단과 시민단체는 버스 탑승에 실패한 뒤 오후 3시경, 지난 17일 활동보조인 없이 홀로 지내던 故 송 씨가 화재로 목숨을 잃은 사건에 대한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죄를 촉구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마저도 경찰 측의 과도한 통제에 막혔다. 300여 명의 참가자들이 횡단보도를 지나가던 중 경찰측이 행렬의 뒷부분을 차단하면서 격한 몸싸움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인 한종선 씨가 크게 다쳤다.

한종선 씨는 경찰 방패에 찍혀 출혈과 함께 허리가 꺾이는 등 중상을 입어 119에 실려 갔다. 그 외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또한 경찰측은 비장애인 활동가 3인을 연행하는가하면, 420공투단의 방송차를 견인하기 위해 견인차량을 동원하기도 했다.

행진이 멈추면서 참가자들은 경찰측과 수차례 충돌했고, 한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오후 5시 20분경 보건복지부장관의 집 근처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계속해서 경찰측의 통제에 막혔고, 양측의 마찰은 끊길 줄 몰랐다.

오후 6시, 모든 참가자들이 보건복지부장관이 살고 있는 곳 근처에 다시 모였고 아침 10시부터 진행한 장애인의 날 행사의 마감집회가 진행됐다.

수유너머N 이진경 활동가는 “보건복지부 장관은 자신이 故 송국현 씨를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세상에는 악의로 이뤄지는 불행은 없다고 생각한다. 선의로 인한 불행이나 아무런 의도 없이 만들어진 불행이 대부분.”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장애등급제가 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이를 폐지해 달라고 촉구하는 농성이 2년이 다돼 가는데, 이 또한 몰라서 이렇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장애등급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는 전제 아래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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