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뿐인 실업팀, 창단 기대에 한목소리… 인천장애인AG에서도 좋은 성적 낼 것

▲ 지난 14일 막을 내린 2014 인천세계휠체어농구선수선수권대회를 통해 팬들을 열광시킨 대한민국의 ‘영웅’들이 탄생했다.
▲ 지난 14일 막을 내린 2014 인천세계휠체어농구선수선수권대회를 통해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직장 때문에 눈치를 보고, 휴가를 써 가며 겨우 대회에 나오는 동료들이 많다. 실업 팀이 1~2개 더 생겨 마음 편하게 운동을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오동석(27)-

“처음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하며 대회에 임했지만 경기를 거듭하면서 세계적인 강호들과도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동현(27)-

“이번 대회를 통해 ‘마당쇠’라는 별명도 생겼는데, 기분 나쁘지 않다.” -김호용(42)-

지난 14일 막을 내린 2014 인천세계휠체어농구선수선수권대회를 통해 팬들을 열광하게 한 ‘영웅’들이 탄생했다.

실업팀이 겨우 하나(서울시청팀) 뿐인 열악한 국내 현실에서도 선전하며 새로운 역사를 쓴 휠체어 농구 한국 국가대표팀. 최초로 8강에 진출한 데 이어 세계 6위의 최고 성적표를 받는 감격을 누렸다.

 3점 슛의 ‘귀재’ 오동석 선수… ‘올스타 베스타5’에 선정

▲ 오동석 선수.
▲ 오동석 선수.
이번 대회를 통해 가장 크게 떠오른 선수는 ‘올스타 베스트 5’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은 오동석 선수. 키 1m70㎝, 체중 52㎏에 체격은 왜소한 편이다.

12세 때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 된 척수장애인다. 그는 누구보다 빠르고 강한 ‘휠체어농구의 김승현’이다. 별명도 ‘날쌘돌이’, ‘재간동이’ 등 다양하다.

그는 휠체어농구 동호회를 거쳐 2010년부터 한국의 유일한 휠체어 농구 실업팀인 서울시청의 창단 단원으로 뛰고 있다.

오동석 선수는 팀을 국내 대회 전관왕을 이끌기도 했고, 지난해 아시아 오세아니아 대회에서 베스트 5에 든 바 있는 실력파다. 그러나 세계 대회에서 베스트 5에 뽑힌 것은 처음.

오동석 선수는 체격이 작지만 넓은 시야와 한 박자 빠른 패스로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패스뿐만 아니라 3점 슛도 정확하다. 지난 7일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팀 득점의 절반이 넘는 28점을 쏟아내며 55-46 승리를 이끌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은 당초 목표였던 8강을 넘어서 6위라는 사상 최고 성적을 거뒀다.

8경기에서 112득점·35리바운드·26어시스트를 기록한 오동석 선수는 “베스트 5는 혼자만 잘해서 받은 상이 아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받았다.”며 기뻐했다.

해외파 ‘주력 선수’ 김동현… “집중력 발휘한다면 인천장애인AG 금메달 노려볼만”

김동현 선수는 한국 팀의 명실상부한 ‘주력 선수’로, 그는 휠체어농구 프로리그에 진출, 이탈리아 ‘산토스테파노’에서 센터로 맹활약한 바 있다.

▲ 김동현 선수.
▲ 김동현 선수.
그가 오른쪽 다리를 잃은 것은 6세 때. 좌절에 빠진 그에게 희망을 준 것이 휠체어농구였다.

김 선수는 “어렸을 땐 장애를 비관했다. 의족을 차고 걷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걸 사람들이 알아챌까봐 억지로 비장애인처럼 걸으려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넘어져서 다치기도 했다.”며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이어 “지금은 달라졌다. 농구를 시작한 다음부터 자신감이 생겼다고 할까. 이젠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더운 날엔 반바지도 입는다.”며 “있는 그대로, 보여줄 건 보여주자. 이게 다 나 자신의 모습인데, 과감해지자. 이렇게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제주특별자치도 팀 소속인 그가 이탈리아로 섭외된 것은 2012년 12월.

2010년 영국 버밍엄 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서 펼쳐진 그의 활약상을 눈여겨 본 산토스테파노팀 측이 제안해 이뤄졌다. 당시 김동현 선수는 생활체육지도사인 권아름 씨와 결혼식을 올린지 3개월째인 새신랑이었고, 부인과 상의 끝에 부름공세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해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올랐었다.

특히 김동현 선수는 세계 최상 호주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대표팀은 지난 12일 8강전에서 우승후보 호주에게 50:61로 패했지만, 김동현 선수는 4쿼터 막판 퇴장을 당하기 전까지 18점, 9리바운드로 맹활약했다.

장신의 호주선수들을 맞아 물러섬이 없었다. 경기 후 김동현 선수는 “강팀 호주를 맞아 즐기면서 하자고 했다. 하다보니까 충분히 붙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며 자신감을 나타내는 한편 “선수층이 얇은 한국 팀에게는 가장 큰 변수였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 “자만하지 않고, 집중 한다면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사현 감독은 “워낙 힘이 좋은 김동현 선수는 이번 대회를 통해 좋은 경험을 많이 했을 것.”이라며 “슛 정확도를 좀 더 높이는 등 조금만 보완하면 대형 스타가 될 만하다.”고 평가했다.

새로운 별명 ‘마당쇠’, 김호용 선수… 든든한 버팀목 역할 ‘톡톡’

김호용 선수는 팀의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전천후 선수이다.

가드 오동석 선수는 ‘선장’ 혹은 ‘지휘자’, 센터 김동현 선수는 ‘서장훈’과 ‘기둥’으로 불린다. 그리고 김호용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마당쇠’라는 별명을 얻었다.

▲ 김호용 선수.
▲ 김호용 선수.
힘이 좋아 수비, 인터셉트, 리바운드, 속공 등 모든 면에서 활약하지만 특히 체력 좋은 외국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이겨내며 버티어주는 버팀목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한때 삼성이 지원하던 무궁화전자팀(수원) 소속으로 뛰며 팀을 전국 대회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무궁화전자 소속 휠체어농구 선수들은 기업체 후원이 끊기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김호용 선수의 현재 소속은 제주특별자치도로, 생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에 소재한 휠체어 제조 업체 휠라인에 근무하며 업체 측의 배려를 받아 틈틈이 운동을 계속해왔다.

그는 가끔씩 무궁화전자 팀 코트에 나가 후배 선수들을 지도하는 봉사활동과 본인의 연습을 병행한다. 그가 ‘주경야독파’가 된 이유다.

이번 대회에서는 100 득점, 48 리바운드, 36 어시스트, 21스틸&굿디펜스로 맹활약한 김호용 선수.

그는 “원래 고향 경상남도 창녕에서 양파 농사를 짓다 휠체어농구가 좋아 선수가 됐는데 나이로는 코치로 뛸 나이지만 이번 대회에서 자신감을 더 얻었다.”며 “앞으로 체력이 허용될 때까지 많은 외국 선수들처럼 운동에 전념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한국장애인농구협회 남경민 사무국장은 “한국이 이번 대회에 6위라는 좋은 성적을 내게 된 데는 김호용 선수 같은 고참이 궂은일을 도맡는 투혼으로 경기 주도권을 상대방에게 뺏기기 않았기 때문.”이라며 “국내에도 실업팀이 좀 더 생겨 팬들이 주말에 휠체어농구 리그 경기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인천세계휠체어농구선수권대회 김장실 조직위원장은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한국에도 실업팀이 좀 더 창단돼 아시아 휠체어농구의 보급과 발전을 이끌길 기대한다.”며 “휠체어농구를 통한 체육 한류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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