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고속·시외버스의 장애인 접근 ‘불가’… 전국 11개 시·도버스터미널에서 이동권 투쟁
전장연과 서울남부터미널운수사운영회, 저상버스 도입 위해 정부에 적극 건의 ‘합의’

“내 고향은 강원도는 기차로 5~6시간을 가야 하지만, 버스로는 3시간여 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버스를 한 번도 타지 못했다. 고향도 마음 편히 못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강민 사무총장-

“고향 부산에서 서울에 올라와 15년을 살았지만 남부터미널에 처음 와봤다. 장애인은 시외버스를 탈 수 없기 때문에 올 일도, 올 수도 없었던 곳이다.”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현 소장-

시외 지역을 이동하기 위해 이용하는 하는 광역·고속·시외버스. 하지만 시외지역을 운행하는 버스는 장애인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아, 장애인들은 평소에는 물론 추석이 되도 고향을 방문할 수 없다.

장애인 등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2005년 제정된 고툥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하 이동편의증진법)에서는 ‘교통약자가 모든 교통수단과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해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동편의증진법에 제정된 지 10여 년이 되고 있지만,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 권리는 여전히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2일 오후 서울남부터미널 등 전국 11개 주요 시·도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 및 시외버스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위한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날 서울남부터미널에서는 서산·예산·태안·양지·천안·청주행 시외버스에 장애인 30여 명이 집정 탑승을 시도했다.

하지만 버스에 있는 계단이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의 접근을 가로막았다.  이들은 버스에 오르기 위해 앞바퀴를 반쯤 걸친 채 20여분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고, 결국 휠체어에서 내려와 기어올라가는 광경이 벌어졌다.

이날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장애인들이 구입한 30장 및 전국에서 구입한 160여장의 버스표가 또 다시 휴지조각이 되는 순간이었다.

시내버스의 저상버스는 14.5%… 고속, 시외, 광역, 공항, 마을, 농·어촌은 ‘전무’

장애인에 대한 이동권은 여전히 바닥을 맴돌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계획 발표만 할 뿐 목표치의 근처에도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먼저 시내버스는 이동편의증진법에 의해 수립된 ‘제1차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5개년 계획(2006~2011)’에 따라 2013년까지 전체 시내버스의 50%를 저상버스로 교체돼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14.5%, 정부의 발표는 지켜지지 않았다. 저상버스 도입의 책임이 있는 기초지방자치단체 154곳 중 100여 곳에는 저상버스가 단 한 대도 없는 실정이다.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등)의 도입률 또한 법정 기준의 50% 수준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정확한 통계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1차 계획에 이어 ‘제2차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5개년 계획(2012~2016)’을 내놓았다. 문제는 2차 계획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2016년까지 41.5%로 설정, 1차 계획보다 오히려 축소되는 ‘퇴행’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저상버스 도입은 고속·시외·농어촌·광역·공항·마을버스 등에서는 ‘전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도 국민… 마음껏 고향가고 여행 할 자유가 있다”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현 소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위해 서울남부터미널을 처음 와 봤다고 했다.

박 소장은 “서울에 올라온 지 15년이 됐지만 서울남부터미널에 처음 와봤다. 장애인은 시외버스를 탈 수 없기 때문에 올일이 없었던 것.”이라며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살기 위한 기본 중 하나인 이동권이지만, 현실은 고향에 가는 것도, 여행을 마음대로 갈 수도 없는 것이 어찌 인간다운 삶이라 하겠는 가.”라고 질타했다.

이어 “이동편의증진법이 생긴지 10여년이 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시외버스 또는 고속버스를 타고 원하는 곳에 갈 수 없다.”며 “10년 전 시내버스에 저상버스를 도입하기 위해 외쳤지만, 10년 뒤 시내버스에만 아주 적은 저상버스가 배차됐을 뿐이다. 정부와 사회는 장애인의 이동권에 고민조차 없이 무딘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는 법에 명시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정부가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장애인들이 외치는 이동권은 헌법이 보장한 인간의 존엄한 가치와 평등권에서, UN장애인권리협약이 명시한 장애인접근권의 명문화 조항에서, 이동편의증진법이 이야기하는 ‘모든 교통수단의 차별없는 접근’에서 이야기하는 당연한 법적 권리.”라며 “하지만 정부는 계획만 세우고 예산 등을 이유로 외면만 할 뿐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이미현 간사 역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의무 이행을 강조했다.

이 간사는 “장애인들이 이야기하는 이동권은 단순히 저상버스에 국한 된 것이 아니다.”라며 “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교통약자가 버스는 물론 모든 시설에 차별 없이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적극적 방안이 세워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에 전장연은 “정부와 국회는 즉각 이동편의증진법을 개정함과 동시에 장애인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과 예산을 마련하라.”며 ‘장애인 이동권 요구안’ 이행을 외쳤다.

장애인 이동권 요구안의 주요 내용은 ▲광역·농어촌·고속·시외버스에 휠체어 이용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 발표와 예산마련 ▲접근권 보장을 위한 연구 및 2015년 시범사업 추진 ▲이동편의증진법과 시행령에서 마을버스와 전세버스가 제외되는 차별적 법조항 연내 개정 ▲시내버스의 100% 저상버스 도입 법에 명시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 상의 도입비율을 중앙정부가 강제할 수 있는 법적 수단 마련 ▲특별교통수단 운영비에 대한 국비 지원 명시, 도지사의 책무 강화와 광역이동지원센터 설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종합 대책 및 법률 개정안 마련 ▲국토교통부 장관 면담 및 논의기구 설치 등이다.


서울남부터미널운수사운영회 “저상버스 도입 위해 정부에 적극 건의하겠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전장연 대표단과 서울남부터미널운수사운영회(이하 운영회)는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에서 전장연 박경석 상임대표는 시외버스의 저상버스 도입을 정부에 적극 건의해 줄 것을 요구했고, 운영회 나대운 회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전장연과 운영회는 ‘시외버스가 대·폐차 될 때 대·폐차되는 모든 시외버스에 대해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탑승시설을 설치한다’는 내용을 국토교통부에 건의하겠다는 데 합의하고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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