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생계비 해체와 개별급여화로 소관부처로 이전하는 개편안 추진

빈곤현장의 목소리를 공유하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과 대안을 고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19일, 국회의원 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빈곤층이 말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 진짜문제 증언대회’가 열렸다.

이날 증언대회에는 기초생활수급기준의 문제점으로 수급에 어려움을 겪거나 사선에 내몰리고 있는 사람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서울시 영등포구에 살고 있는 정종훈 씨는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부모가 죽을 때까지 자녀를 돌봐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정 씨의 딸 수연 씨는 독립하고 자립할 나이가 됐지만 뇌병변 1급 장애로 일하기 어려운 상태. 경제활동이 어려운 수연 씨는 자립하기 위해 국민기초생활수급이 절실한 상태지만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신청조차 할 수 없다.

현재 정 씨는 노들장애인학교에서 운전사로 일한다. 한 달 소득은 100만 원 가량으로 딸의 병원비와 오래 전 위암수술로 건강이 안 좋은 아내를 함께 부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정 씨는 “죽을 때까지 자식하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도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며 “수연이가 수급자가 돼야 내가 눈을 감아도 좀 마음이 놓이지 않겠나.”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주거급여 삭감 예정으로 하루하루 걱정으로 살고 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성북구에 사는 58세 이종대 씨는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으로 제공되는 매입임대주택에서 살고 있다. 주거급여 9만7,000원을 받으며 채광도 되지 않고 습기와 곰팡이가 피는 반지하에서 생활한다.

이 씨가 반지하 집을 선택한 이유는 집세를 낮춰 생계비를 보충하려는 생각이었다. 앞으로 기초법이 개정될 경우 실제임대료와 기준임대료 중 적은 금액을 지원하기 때문.

이 씨는 “현재 집세 5만 원을 내고, 남은 주거급여를 생활비로 쓰고 있다. 기초법이 개정되면 주거급여비가 삭감돼 5만 원을 받게 된다.”며 “나도 환기가 잘 되고 채광이 좋은 1층이나 2층 같은 곳에서 살고 싶다.”고 토로했다.

또한 몸이 아파 일하지 못하고 기초생활수급으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노원구에 사는 75세 김광 씨는 한 달 38만 원의 수급비와 10만 원의 기초노령연금을 받는다. 그 돈으로 한 달을 버틸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김 씨는 한 달에 월세로 9만 원, 공과금이 5만 원 정도 들고 병원비도 최소한 9만 원이 나간다.

김 씨는 “매일 점심도 집 근처 복지관의 무료급식으로 해결하고 외식은 엄두도 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노인들에게 20만 원 씩 기초연금을 지급한다는 소식을 듣고 김 씨는 한 시름 덜 줄 알았다.

김 씨는 “기초연금이 처음 지급되고 나서 약국에서 약을 사봤다. 약사 말로는 세 번 쯤 지어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 했지만 한 번 밖에 못 먹었다.”며 “기초연금을 다시 기초생활수급비에서 빼앗아 갔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행 기초연금법안 제5조 제6항에 따라,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에 대해 기초노령연금을 지원할 수 있다.

기초노령연금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제3조에 따라 실제 소득으로 간주돼, 김 씨의 수급비는 28만 원으로 줄었다.

한편 수원시에 사는 60세 곽혜숙 씨는 남편 故 최인기 씨가 잘못된 근로능력평가로 죽음을 맞이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난 2005년, 좌석버스 운전기사였던 故 최 씨는 회사의 정기검진을 통해 흉부대동맥류 이상을 알게 돼 한 차례 수술을 받았다. 당시 수천만 원의 병원비가 들어가면서 가계가 악화됐다. 이어 지난 2008년, 2차 수술을 받은 뒤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게 됐다.

2차 수술 이후, 故 최 씨는 건강이 더욱 악화됐다. 곽 씨는 “남편은 오래 걷지도 못하고 조금 경사진 곳도 숨이 차 쉽게 올라갈 수 없었다.”며 “쉽게 피로가 오고 약간의 환경 변화에도 감기가 걸리는 등 면역력이 약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던 2012년 근로능력평가 심사가 강화되기 시작하면서, 수원시 권선구청과 주민센터는 故 최 씨에게 6개월에 한 번씩 근로능력진단서를 떼어올 것을 요구했다.

곽 씨는 “진단서를 떼는 데 돈이 드는 것도 문제지만, 진단서를 받는 과정 자체도 큰 스트레스였다.”며 “담당의사가 ‘왜 자꾸 진단서를 떼느냐’, ‘무슨 근로능력평가를 이렇게 자주 받느냐’는 등의 질문과 면박을 줬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근로능력평가 요청에 의해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를 제출했다. 이에 국민연금공단(이하 공단)에서 파견된 두 사람이 곽 씨 부부를 찾아와 조사했다.

곽 씨는 “우리는 아직 일하기에는 몸이 아프다고 표했지만 그 사람들은 남편이 ‘보기에 건강해보인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며 “얼마 지나지 않아 온 곡선동 동장의 통지서에는 ‘일을 하지 않을 경우 의료급여를 포기하는 걸로 생각하겠다.’다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만약 의료급여를 박탈 당하면 당장 정기검진마저 받지 못했기 때문에, 故 최 씨는 어쩔 수 없이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故 최 씨가 취직한 곳은 집 근처 아파트 지하주차장. 일하는 내내 감기가 떨어질 날이 없었고 몸의 붓기도 심해졌다.

급기야 지난해 5월, 故 최 씨는 일하는 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처음에는 백혈병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곧 백혈병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종양내과에서는 흉부 쪽 검사를 다시 해봐야한다는 소견을 줬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 우선 퇴원을 했다.

곽 씨는 “당시 남편은 자신의 병을 일하던 직장에 미리 알리려고 했다. 취업당시 상담을 담당하던 수원 고용센터 담당자가 ‘쓸데없는 얘기를 뭐하러 하느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퇴원 뒤 곽씨는 故 최 씨의 건강이 걱정돼 종양내과의 진단에 따라 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는 이상이 없었으나, 검진 받는 동안 故 최 씨는 엄청난 고통을 호소했다.

진단결과에 따라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를 재차 발행했다. 역시 내용은 이전과 같이 근로능력 있다는 판정을 받았던 진단서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얼마 뒤 故 최 씨는 다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고, 검사결과 이식 받은 대동맥 주변에 이미 상당한 감염이 진행됐다. 몇 차례의 수술이 있었지만 끝내 세상을 떠났다.

곽 씨는 “당시 남편이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공단에서 전화가 왔다. 공단 관계자는 ‘일을 왜 하지 않느냐며 집에 방문하겠다.’고 했다.”며 “이에 당장 병원에 와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보라고 분개하자, 찾아오더니 그제야 조건부 의료급여 지원이 아닌 일반 의료급여 지원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곽 씨는 남편과 사별 뒤, 수원시청과 권선구청, 국민권익위원회와 청와대 신문고에 억울한 마음을 토로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도대체 왜 일할 수 없는 사람을 억지로 일을 시켰으며, 지금 이것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근로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정확히 진단조차 할 수 없는 의사와 국민연금공단 직원에게 모든 결정권한을 맡겨주고 복지와 수원시청, 권선구청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저생계비는 ‘유지’하고 부양의무제는 ‘폐지’

새누리당 유재중 의원이 지난해 국회에 발의한 개정안은 최저생계비 개념을 해체하고 주거급여, 교육급여 등을 개별급여화해 소관부처에 이전한다.

각 급여의 기준을 각 행정부처 장관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하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운영하는 데 있어 각 행정부 장관들의 협의체인 사회보장위원회에서 주요 사안들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정숙 씨 발표모습
▲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정숙 씨 발표모습

건강세상 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 김정숙 씨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의 가장 큰 요인인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지 않고선 급여 수준도 높아진다고 보기 어렵다.”며 “공공부조제도로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보장성을 높이고 사각지대를 해소해 나가기 위한 전진적인 안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최저생계비는 유지돼야 하고 국가최저선으로서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의 선정기준이자 보장수준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정책에 사용되고 있는 기준”이라며 “최저생계비가 개별급여라는 미명아래 경기와 예산에 따라 좌우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국회의원 김성주 의원은 “복지사각지대를 낳은 첫 번째는 부양의무기준이고 두 번째는 너무 협소한 최저생계비 기준으로 인정했다.”며 이어 “최저생계비 개념을 상대적 빈곤개념인 중위소득으로 전환해 최저생계비 개념을 유지하는 쪽으로 일정 부분은 정부와 여·야가 합의를 이뤘다.”고 전했다.

정부는 이번 개정을 통해 부양의무제 폐지가 아닌 부양능력판정 기준을 대폭 완화한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의 소득 기준은 ‘수급자가구의 최저생계비’와 ‘부양의무자가구의 최저생계비’ 합의 130%다. 이를 ‘수급자가구 최저생계비’와 ‘부양의무자가구 중위소득’의 합으로 완화해 사각지대를 해소할 계획이다.

김 씨에 따르면 수급률은 지난 2001년 3.2%에서 2006년 3.2%, 2007년 3.2%로 동일했지만 2012년에는 2.7%까지 떨어졌다.

김 씨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더라도 기타 요인을 통한 수급자 수 통제가 언제나 이뤄져 온 것이 문제.”라며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이미 부양의무자 기준을 몇차례 완화한 바 있지만 수급자 숫자가 늘어난 바가 없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 씨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최저생계비 유지 ▲종합적 빈곤정책으로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강화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면 권리로서 보장과 조건부수급조항 폐지 ▲재산, 소득기준의 개선과 추정소득 부과 폐지 ▲수급권자 권리보장 강화와 수급자의 의견을 반영한 제도 운영 등을 제시했다.

한편 현재 기초법 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지 못한채 계류 중이며, 보건복지부의 수정안이 제출된 상황이다.

김 의원은 기초법 개정안이 빨리 국회를 통과할 수 없는 근본이유에 대해 “정부와 여당, 야당은 예산부담으로 인해 타협에 이르지 못하고 있지만 계속 논의중.”이라며 “부양의무기준의 원천적 폐지에 부합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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