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형제복지원 모의재판 개최

▲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은 지난 29일 서울 건국대학교 법학관 신관 4층 모의법정에서 ‘형제복지원 국민법정-끝나지 않는 악몽을 고발합니다’를 개최했다.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여준민 사무국장
▲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은 지난 29일 서울 건국대학교 법학관 신관 4층 모의법정에서 ‘형제복지원 국민법정-끝나지 않는 악몽을 고발합니다’를 개최했다.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 여준민 사무국장

27년 만에 국민법정에 소환된 형제복지원 사건에서 배심원들이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형제복지원 원장이었던 박인근과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각각 무기징역과 22년 6개월 형에 처하도록 한 것.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은 지난 29일 서울 건국대학교 법학관 신관 4층 모의법정에서 ‘형제복지원 국민법정-끝나지 않는 악몽을 고발합니다’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를 위해 사법연수원 제44기 인권법학회 학회원들이 힘을 보탰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저지른 인권침해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피해자들은 국가의 주도 하에 형제복지원으로 강제 수용됐고 국가의 묵인 하에 형제복지원 내에서는 불법 감금과 강요, 협박, 폭행, 강간, 상해, 사망 등의 범죄가 이뤄졌다.

사법부는 지난 1987년 당시 이미 형제복지원 사건을 법정에 세운 바 있다. 그 당시 재판을 여러 번 거치며 박인근 전(前) 원장은 형이 감형돼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이러한 사실로 미뤄 봤을 때 정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담고 있는 진실과 시대의 모순, 국가의 책임에 대해 전혀 다루지 않았고, 눈에 보이는 형제복지원 관련자들을 법정에 세운 것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

이번 형제복지원 국민법정은 인터넷을 통해 모집된 배심원들이 평결을 하는 국민참여재판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당시 형제복지원 원장이었던 박인근(국민법정에서는 ‘박인권’으로 가명을 사용),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을 피고인으로 세우고,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피해자 및 당시 형제복지원을 수사했던 검사, 부산시장 등을 증인으로 신청해 그들의 증언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검찰 측이 제기한 공소 사실은 ▲피고인들의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 등 감금) ▲피고인 박인권의 살인 및 사체 은닉 ▲피고인 전두환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이었으며, 피고인 측 변호인들은 ‘공소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섰다.

한편,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사건 당시 겪은 가혹행위에 대해 가감없이 드러냈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 공동대표 한종선 씨는 “형제복지원은 헌법에 위반되는 내무부훈령 제410호의 명목을 들어 죄 없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감금, 폭행, 살인 등 인간다운 삶을 빼앗고도 법은 아무에게도 죄를 묻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사건 후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기억이 훼손된 것이 아니냐’는 변호인 측의 심문에 한 씨는 “소대 내에서 매일같이 자행됐던 매질과 구타, 조장에 의해 무차별하게 이뤄졌던 매타작은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였다.”며 “이러한 기억이 어찌 훼손되고 잊혀질 수 있겠는가. 나에게 복지원 생활은 폭행과 구타만이 유일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30여 년이 다 되어 가도록 은폐와 축소로 점철된 사건을 바로잡고, 우리의 삶이 다시 평범하게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또다른 피해자 강신용 씨는 “스무 살 무렵 수능시험을 본 후 부산으로 놀러갔다. 서울로 돌아오던 날 부산역 대합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경찰에 의해 복지원으로 끌려가게 됐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강 씨는 “그곳에서는 수많은 구타와 폭행이 이어졌지만, 심지어 치료조차 제대로 해주는 경우는 없었다.”고 밝혔다. 도주의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을 막았다는 것.

최후변론 후 배심원의 평의를 거쳐 재판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조직적으로 부랑인들을 청소하고, 복지를 표방한 시설에서 인권은 완전히 무시됐다.”며 피고인 전두환을 징역 22년 6개월에, 피고인 박인권(박인근 前 원장)을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로 “△피고인 박인권(박인근 前 원장)은 엄격한 위계질서의 정점으로서 피해자들이 구타로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했으면서도 피해자 일부를 때려 죽이고 사체를 유기하는 등 범행 수법이 잔인했다는 점 △피고인 전두환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죄도 짓지 않은 사람들을 단속하고 구금할 것을 지시했다는 점, 수사를 방해한 점 등을 들었다.

한편, 대책위는 이번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사건을 효과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대책위 집행위원장 조영선 변호사는 “형제복지원 사건은 박인근 전(前) 원장과 정부에 법률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라는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에, 국민의 시각에서도 사건을 판단해 보자는 취지로 마련하게 됐다.”며 모의법정의 의의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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