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오전 5시쯤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에서 동생이 장애인 형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투신한 사건이 발생했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
▲ 지난 8일 오전 5시쯤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에서 동생이 장애인 형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투신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적장애인 형을 돌보던 동생이 형을 살해하고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이하 영등포경찰서)는 지난 8일 오전 5시쯤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에서 박 모(41) 씨가 형(43)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투신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 씨는 같은 방에서 자고 있던 형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다음 큰방에 있던 어머니 김 모(68) 씨를 데리고 아파트 25층으로 올라갔다.

박 씨는 “우리도 같이 가자.”며 어머니 김 씨에게 동반 자살을 요구했으나, 김 씨는 박 씨를 말렸고 경찰에 신고하러 내려갔다. 그 사이 박 씨는 25층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고 아파트 입구 좌측 화단에 떨어져 숨졌다.

박 씨의 유서는 따로 발견되지 않았다. 박 씨의 주변인들의 말에 따르면, 평소 박 씨는 어머니·형과 함께 운동하며 여느 가정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씨는 30여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와 지적장애 2급인 형을 부양해 왔다. 1년 6개월 전 어머니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면서 박 씨의 생계 책임 및 부담은 더욱 커졌다.

박 씨의 어머니는 “둘째 아들이 큰 아들을 극진히 돌봤는데 나까지 병에 걸리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힘들었던 것 같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생동안 지원이 필요한 발달장애인… 양육부담 줄여주는 정책 마련 시급

발달장애인(지적·자폐성장애인)을 둔 가족의 비극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2일 전라남도 여수에서 발달장애성인을 자녀로 둔 한 어머니가 아파트 14층 자택에서 투신했다. 자식의 돌봄에 모든 것을 바쳤던 부모가 끝내 삶을 포기한 것.

지난해 3월 광주광역시에서는 5세 된 발달장애자녀와 함께 가족 세 명이 동반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고, 지난 2013년 서울 관악구에서는 17세 된 자폐성장애가 있는 아들을 살해하고 자살한 아버지가 “이 땅에서 발달장애인을 둔 가족으로 살아가는 건 너무 힘들다. 힘든 아들을 내가 데리고 간다.”는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기룡 사무총장은 “발달장애인을 둔 가족은 양육에 따른 심리적·경제적·신체적 부담을 안고 살아간다. 국가와 사회는 이러한 부담을 가족이 맡도록 하고 있는 현실이다. 결국 이는 장애인가족의 연이은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며 “발달장애인 가족의 양육부담을 줄여주도록 양육비 지원과 휴식지원을 위한 돌봄서비스, 주간활동서비스 등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 지난 2012년 2월 22일 열린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 출범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종이비행기에 바램을 적어 날리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 지난 2012년 2월 22일 열린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 출범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종이비행기에 바램을 적어 날리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웰페어뉴스DB

발달장애인은 전체 등록장애인 중 7%를 차지한다. 소수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발달장애인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장애계는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맞춤 서비스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현재 발달장애인에 대한 복지서비스와 기반은 그 필요에 비해 지원 규모가 부족해 가족들의 신체적·정신적·경제적·정서적 부담이 높은 수준이다. 직업훈련이나 평생교육 등 능력계발을 위한 지원체계도 매우 미흡하다.

현재 정부에서는 발달장애인 성년후견인제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지원대상 범위 확대, 발달재활서비스 확대, 주간보호서비스, 장애부모심리상담서비스 등 발달장애인을 위한 권리보호 및 치료, 돌봄사업, 소득보장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이 중 주간보호서비스는 지역사회 안에 설치·운영되고 있는 주간보호시설에 서비스를 신청·이용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전국에 설치·운영 중인 주간보호시설은 558개소로, 약 1만 여 명의 발달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 수가 20여 만 명임을 고려할 때 수요에 비해 공급은 5% 수준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대기시간이 적게는 수개월에서 많게는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

지난 2013년 7월 자기결정과 신상보호에 어려움을 겪는 성인을 지원하기 위해 시작된 성년후견제도 역시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현재 성년후견제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피후견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에 정부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피후견인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13년 9월부터 공공후견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7월 30일 기준 공공후견인은 50인이다. 하지만 공공후견의 체계가 명확히 구성되지 않아 관계 기관의 협조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또 후견인이 제대로 활동하는지를 감시·감독·지원하는 체계도 미비해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빼돌리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후견인에 대한 감독은 가정법원의 조사관 1인이 사실상 전담하는 실정이다

이밖에도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재활할 수 있도록 돕는 복지서비스의 이용 수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가 실시한 ‘전국 성인 발달장애인 복지서비스 이용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국 49개 지역의 발달장애인은 4만5,770인으로, 이 중 발달장애성인은 3만4,747인이었다.

분석 대상 49개 지역의 발달장애성인 중 주간보호시설이나 거주시설에서 직업재활 등의 서비스를 한 가지 이상 받는 사람은 9,779인으로, 이 지역의 발달장애성인 3만4,747인 중 28.1%에 불과했다.

한편, 이러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가운데 오는 11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다.

해당 법은 발달장애인의 특성 및 욕구를 고려한 개인별 맞춤 지원 체계 구축과 개인별지원계획 수립 규정 등이 주요 골자로 한다.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욕구에 적합한 지원과 권리옹호 등이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규정한 발달장애인법의 본래 취지가 지켜지길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은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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