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체육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

*웰페어뉴스에서는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장애인생활체육 수기 공모전 사례집을 연재합니다.*

택시 운전을 하던 우리 시동생이 어느 날 손님을 싣고 장거리 운행을 한 후 돌아오다가 사고를 당했다.

왕복 2차선 도로의 맞은편에서 오던 자가용과 서로 정면추돌을 한 것이었다. 대형 사고였다. 삼촌은 하반신 마비의 장애인이 되었고 상대편 자가용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남편과 나는 사고수습에 뛰어다녔고 예의상 그 집의 아내와 아이가 입원한 병원에도 들렀었다. 남편을 잃은 미망인은 울부짖었고 하나 밖에 없는 그 집의 아들도 오랜 투병생활 후 장애인이 되었다. 그때 그 집 아들의 나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으니….

그 후 남편은 그 미망인과 어린 아들이 불쌍하다며 자주 그들을 만나 이런 저런 조언으로 그 집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것도 십년이 넘게 이어오고 있다.

“이제 그 집하고 인연을 좀 끊으세요. 일이 년도 아니고…. 이제 할 만큼 했잖아요.”

나는 저녁 늦게 돌아온 남편에게 불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러자 남편은 소파에 앉으며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도 있는 거야. 내 일이 아니라고, 내 동생이 저지른 잘못이라고, 나까지 모르는 척 한다면 사회가 바로 굴러갈 수 있겠어?”

정말이지 남편은 혼자서 세상일을 다 짊어지고 가려는 듯 온갖 일에 참여하고 관여를 한다. 한마디로 오지랖이 넓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 남편은 한쪽 어깨에는 장애인 시동생을, 또 한쪽 어깨엔 또 다른 장애인 어린 꼬마를 얹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면서….

남편은 자신의 동생이 지은 죄를 꼬마 정식이한테라도 갚겠다며 무슨 날만 되면 꼭 그 집에 들러 마치 그 애의 아버지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아주버님, 남편이 또 술을 먹고 난리를….”

동서는 가끔 우리 집으로 전화를 했다. 장애인이 된 시동생이 자신을 비관한 나머지 술을 마시고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남편은 한밤중이건, 새벽이건 시동생 집으로 출동해 그를 달래는 것이 일과처럼 되다시피 했다.

남편은 중학교 체육교사다. 그래서 대전시에서 각종 체육활동에 참여하여 체육에 관해 많은 일을 맡아하고 있다.

“영재야, 너 배드민턴 한 번 배워보지 않겠니?”

어느 명절 날 식구들이 모두 모이자 남편은 시동생에게 운동을 권유하고 나섰다.

“몸이 불편하다고 마음마저 불편하면 술이 생각나고, 술을 먹으면 우울해 괜히 시비를 붙고 싶은 마음만 생기잖니?”

“참 형님도 장애인이 무슨 운동을 해요.”

시동생은 단박에 거부의사를 표시했다. 그래도 남편은 동생을 잘 달래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사람아, 여러 사람과 한 번 어울려서 운동을 해보게. 삶이 새롭게 보일 테니까.”

남편의 설득으로 시동생의 마음도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그리고 며칠 후 남편은 삼촌 집 근처에서 생활체육 활동을 하고 있는 후배들의 모임에 소개를 시켜주었다. 그들은 초등학교 체육관을 빌려 야간에 주로 운동을 했다. 비록 휠체어를 타고 운동을 해야 했기에 처음에는 무척 불편하고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시동생은 잘 적응하고 이겨내는 것 같았다.

“형님, 요즘은 그이가 술도 안 먹고 아주 운동에 빠졌어요.”

동서의 전화를 받은 나는 한시름을 덜은 듯 기뻤다. 우리 가족은 삼촌을 응원하러 야간에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에 들어서자 이곳저곳에서 함성이 터졌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배드민턴 라켓에 힘을 주고 있었다. 모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었다. 선수들 모두가 웃는 모습이었고 얼굴에 근심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역시 어느 철학자의 말이 맞는 듯했다. ‘태초 인간의 언어는 노래이고 인간의 행동은 운동이라고….’

얼마 후 남편은 전에 없던 그 집 여자의 호출을 받았다. 남편이 10년도 넘게 정식이를 만나왔지만 정식이 엄마가 남편을 먼저 만나자고 했던 일은 없었다. 그 집에 다녀온 남편은 걱정스런 얼굴로 알 듯 모를 듯 한 말로 중얼거렸다.

“글쎄, 정식이 녀석이 학교를 안 다닌다고 난리를 폈다더군.”

“아니, 그 꼬마가 그랬다고요?”

“이제 꼬마가 아냐. 대학을 갈 나이야.”

아마 그럴 것이다. 그 애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사고가 났고 벌써 10년도 넘었으니 분명 어엿한 청년으로 자랐을 것이다. 남편은 며칠간 그 집으로 출퇴근을 하 듯 오고갔다.

“내일부터 정식이와 함께 운동을 하기로 했어요.”

남편은 운동밖에 모른다. 학교에서도 문제 학생이 생기면 무조건 운동을 권장한다. 나는 한 때 그런 것을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동생의 문제를 운동으로 해결한 것으로 보아 역시 운동도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름 결론을 내렸다.

이번에는 정식이 혼자 운동을 하게 방치하지 않았다. 남편도 정식이와 함께 운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남편과 정식이의 운동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런 생활이 1년은 계속된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 들어왔다.

“아니, 생전 술을 안 먹는 사람이 웬 술이에요?”

“정식이가 오늘 치러진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대전시 대표로 뽑혔거든…. 어디, 대표선수 뿐인 줄 알아. 취직도 되었다고. 테크노벨리에 있는 중소기업에….”

오지랖 넓은 남편의 인간 승리였다. 술에 취한 남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우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국가에서도 그들을 위해 각종 혜택이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그 중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 쪽에는 많은 투자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 쪽이다. 즉 장애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줘 그들과 비장애인이 하나가 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 중 장애인의 생활체육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요즘의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고 시설만 만들어주고 그에 대한 인적관리를 소홀히 한다면 구슬을 실에 꿰지 못함과 똑같다. 그 한 예로 생활체육을 함에 있어 시설의 설비를 돌봐 주고, 운동이 끝난 후 설비의 정리를 도와줄 비장애인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프트웨어인 것이다. 남편이 정식이와 함께 운동을 한 것이 바로 이러한 설비의 설치와 정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문명의 이기에 묻혀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명의 이기가 때론 흉기가 되어 우리를 위협하고 있기에 나도 어쩌면 잠재적 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체육활동의 장소로 불러내어 함께 어울리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에 진력해야 할 것이다. 이로 인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수행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명랑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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