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성명서

- 장애등급제 ‘중·경 단순화’ 개편은 조삼모사이다! -

 지난 5월 20일, 보건복지부는 장애인단체를 대상으로 ‘장애등급제 개편 시범사업 계획(안)’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하였다. 이는 2012년 8월 21일부터 광화문 역 지하보도에서 시작된 장애등급제 폐지 농성 1004일째 되는 날이며,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3월 28일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통해 ‘빠르면 2016년부터 현행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는 계획 발표 이후 1년 여 만의 결과이다.

그 내용은 △ 서비스 총량이 축소되지 않으며, △ 단계적으로 추진하여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위한 전달체계 개편도 추진 △ 장애등급제 전면 폐지 여부는 충분한 의견 수렴과 동의 후 정책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은 현재의 1-6등급을 중(1-3급), 경(4-6급)으로 단순화시키겠다는 계획 및 전달체계의 개편이다. 계획(안)에 따라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박근혜 정권의 임기가 끝나는 2017년 하반기에 그 결과를 제도화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의 ‘장애등급제 개편 시범사업 계획(안)’은 ‘장애등급제 폐지’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 폐기’일 뿐이다.

‘등급 폐지’한다더니 ‘중증’과 ‘경증’으로 단순화하겠다는 ‘조삼모사’

이날 정부가 발표한 세부 개편방안 중 ‘의학적 장애기준 개편(안)’에 따르면, 장애유무판정 및 등급제는 감면할인제도 운영 등을 이유로 현행 6등급에서 중증과 경증으로 단순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장애등급의 ‘중·경 단순화’는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구성된 「장애판정체계기획단」 회의에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중간단계로 중·경의 단순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2013.12.16.)’는 장애계와의 최종합의 사항을 파기하는 것이다. 또한 장애등급제로 지금껏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낙인’을 강화해왔던 문제를 그대로 놔둔 채, 장애인을 ‘줄 세우는 숫자’ 가지고 장난치는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약속에 대한 최소한의 정책방향 수립과 예산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조삼모사’인 것이다.

차별의 구조에 가장 잘 적용되는 제도라고 선전하는 정부.
‘서비스 총량 축소’ 우려로 협박하는 정부

이번 계획(안)은 장애등급을 중·경으로 단순화 하면서 그 핵심적인 기조로서, ‘서비스 총량 축소’에 따른 ‘기존 수급자의 수급권이 최대한 보호되는 방향’으로의 개편 원칙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장애등급제 ‘개편 원칙’이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협박 원칙’으로 작동하고 있다 할 것이다.

‘서비스 총량의 문제’에 있어 지금의 한국은 ‘OECD 회원국 평균대비 3배나 가난하고 장애급여 지출은 1/10에 불과’한 너무나 부끄럽고 야만적인 현실이며, 이러한 가운데 2015년 한국의 장애인은 겨우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복지부는 ‘예산의 문제와 장애등급제 폐지는 별개이다.’라는 말로 장애등급제 폐지의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하면서, 장애계를 마치 오랑캐 제압하는 수법으로 줄 세우고 분열(이이제이[以夷制夷])시키고 있다. 또한 251만 장애인들에게는 ‘서비스 총량 축소 우려’라는 말로 협박하면서, 오히려 ‘기존 수급자 최대 보호’라는 말로 선량한 보호자로 자처하는 모습은 개탄스러울 지경이다.

복지부는 예산부처 핑계 요지부동, 박근혜 대통령은 숨바꼭질 중

이번 계획(안)에 장애등급을 중·경으로 단순화하면서 장애인연금은 <현행 수급자격 기준 유지>를 발표하고 있다. 현재 장애인연금 대상 기준은 (1급~중복3급)이다. 복지부는 ‘왜’ 장애인연금‘만’은 현행 수급자격을 유지하려는 것인가? 그것은 장애인연금 대상이 중복3급에서 3급으로 확대됨으로 인해 장애인연금 예산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이 복지예산 3조 절감이라는 깃발 아래 복지구조조정에 총력매진하고 있는 이 시점에, 장애인들의 장애인연금 대상 확대로 인한 예산 증액은 가당치도 않은 모양이다. 그렇기에 복지부는 예산부처를 핑계되는 자세로 줄곧 요지부동이며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빛나는 전달체계 개편(안), 전달체계는 완장 낀 통제기구(?)

‘서비스 전달체계 개편(안)’의 핵심 중 하나는 전달체계 개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필요한 서비스와 그 서비스에 따른 예산이 부족한데 무엇을 줄 수 있겠는가?!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는 무엇인가? 장애인들이 생활시설에서 집단적으로 갇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며, 그 전달체계는 다양한 공적 서비스의 필요도를 종합 판정하고 연계하는 체계이어야 한다. 그리고 중증장애인이라도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 of People with Disabilitis/CRPD)에 명시된 권리에 기반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예산이 없다고 엄살떨며 협박하는 상황에서 전달체계만의 개편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개편된 전달체계를 통해 기준과 과정만 복잡하게 만들고, 전문가 권력을 강화하는 ‘완장권력’ 기구로 기능하는 것은 아닌지. 박근혜 정권의 복지예산 3조 절감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살아갈 권리를 위협하는 통제기구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살아야 할 사람이, 살고 싶은 사람이 꼭 죽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정부가 발표한 ‘서비스 제공기준 개편(안)’에 따르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포함한 복지욕구 및 일상생활능력에 연계된 서비스는 ‘장애등급 기준을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서비스별로 제공기준을 재설정’하겠다고 한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대안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개인별 지원계획’의 기초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이는 몇 해 전부터 충분히 시행 가능했던 조치였으며 故송국현 님의 죽음을 생각해본다면 너무나 늦은 조치이다.

또한 공개된 개편(안)에서 현행 서비스를 ‘중장기적으로 종합 바우처 형태로 개편’하겠다는 계획이 초래하게 될 결과가, 개별 서비스의 총량과 예산은 증가되지 않은 채 서비스의 유동성만 증가되고, 서비스 제공 노동자의 노동조건 불안정만 가중시키는 것은 아닌지 매우 우려된다.

정부의 해묵은 사기극. 장애인은 분노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등급제 폐지는 바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구조의 폐지이자 비참한 현실의 폐지를 위한 요구임을 재차 강조하며,

- 감면할인제도를 앞세워 ‘장애등급제 완전 폐지’가 중증장애인의 혜택이 축소되는 것처럼 위화감을 조성하는, 또 다른 ‘공포 마케팅’을 멈출 것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 ‘중·경 단순화’는 장애등급제 폐지가 결코 아니며, 기존 합의사항을 존중하여 시범사업 계획(안)을 철회하고 새로운 계획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 장애등급제의 완전한 폐지와 대안 논의를 위해 국무총리가 책임지고 국무총리 산하에 보건복지부 이외 관계부처와 민간사업자, 그리고 장애계가 참여하는 범정부기구를 구성할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2015년 5월 26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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