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성명서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시외이동권은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시외구간을 이동할 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철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철도는 버스에 비해 문전 접근성이 떨어지고,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만 연결되어 있어,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시외이동권이 완전히 보장되기 위해서는 버스의 접근권 보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2014년 10월 기준 전국의 고속버스 1,905대와 시외버스 7,669대 중 휠체어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버스는 단 한 대도 없다.

이에 지난 2014년 3월 4일에 장애인 단체 및 시민사회단체는 국토해양부, 서울시, 경기도, 명성운수, 금호고속을 상대로 교통약자의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한 소송을 제기하였다. 재판부는 교통약자의 시외이동권을 보장해야한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법리적인 문제로 판결을 내리기 쉽지 않다는 이유로 원고와 피고에게 조정을 제안했다. 재판부가 제안한 조정안은 고작 추상적이고 원칙적인 수준 정도의 계획안이었으나 국토교통부는 행정절차를 내세우며 이 정도의 조정안 역시 거부하였다. 이로인해 조정은 불성립되었고 2015년 3월 25일 재판부는 화해권고결정을 내렸다.

화해권고의 주요골자는 “제3차 이동편의 증진계획(2017년 ~ 2021년)”과 지방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에 시외버스의 저상버스 도입에 관한 내용을 포함시키고 각 운수업체는 저상버스의 비율을 높이도록 노력하라는 아주 기본적이고 당연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조정과 마찬가지로 법체계 위반, 행정절차 등을 핑계로 화해권고 역시 거부하였고,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운수업체는 국토교통부를 방패막이 삼아 화해권고를 거부하여 화해권고 역시 무산되었다.

국토교통부는 재판부의 화해권고 결정에 대해 법체계 위반, 행정절차 등을 운운하면서 왜 정작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은 지키고 있지 않은가?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에 명시된 이동권은 보장하려 하지 않는가? 행정계획 수립절차에 따라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법 조항은 그리도 철썩 같이 지키고 있으면서 그 계획에 들어갈 내용에 대해서는 법을 그리도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가? 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행정절차가 법의 목적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상식을 국토교통부는 왜 모르는가?

2013년 7월 호주연방법원은 시외이동권 보장에 관한 유의미한 판결을 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시드니와 캔버라 구간을 운행하는 운수회사를 상대로 휠체어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버스가 없다며 제기한 소에 대한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운수회사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부지에 대한 접근(부지에는 버스도 포함됨), 재화와 용역 조항을 위반했다고 판결하고, 2015년 4월까지 시드니와 캔버라 구간의 버스에 휠체어 사용자가 탑승할 수 있는 버스를 55% 이상 도입할 것과 고정금 25,000달러를 지급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공공기관도 아닌, 민간기업인 운수회사에 대해서도 호주연방법원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전향적으로 해석해 장애인의 시외이동권을 보장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우리나라 재판부도 재판 과정에서 “(국토교통부에게)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관계 법률이 제정되었고, 제정 후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시외이동권 확보에 관한) 아무런 계획조차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라고 언급해 교통약자의 시외이동권이 심대하게 침해받고 있으며, 이는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책임을 다하지 않고,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이와 같은 인식을 같이하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재판부가 조정과정에서 제시한 추상적이고 원칙적인 수준의 계획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재판부의 재량껏 장애인 등의 교통약자의 시외이동권이 보장될 수 있는 판결을 내야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재판부 역시 국토교통부와 마찬가지로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시외이동권을 침해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2015년 6월 30일

사단법인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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