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방안 근거 허약… 정비방안 문제 해결 위해 법 개정 필요

정부가 ‘복지재정효율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에 대한 정비방안(이하 정비방안)이 무서운 기세로 추진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장애계와 사회단체 등은 이러한 정비방안은 복지사업 본질에 위배됨은 물론, 정비방안을 시행하는 법적인 근거도 없이 정부의 임의로 진행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장애인인권포럼,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등은 26일 서울시 여의도 소재 이룸센터 누리홀에서는 ‘지자체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통·폐합 대응방안 모색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8월 11일, 사회보장위원회에서는 ‘복지재정 효율화’를 명목으로 ‘지방자치단체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 추진방안’을 의결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자체 사회보장사업 중 중앙정부 사업과 유사·중복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1조 원 규모의 1,496개 사업을 통·폐합할 것을 권고했다. 이는 전체 사회보장사업의 25.4%, 전체 복지예산의 15.4%(9,997억 원)에 달하는 규모다.

현재 사회보장위원회와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지난 25일까지 각 지자체에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에 대한 재정비계획안을 제출하고, 오는 11월 그에 따른 결과를 제출할 것을 공문을 통해 통보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국무총리실 산하 사회보장위원회와 복지부 등이 추진하고 있는 정비방안이 실시 될 경우, 취약계층의 사각지대를 양산하고 복지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의견들이 주로 논의 됐다.

지자체 자유에 맡긴다는 정비방안, 반강제성 띠고 있어

▲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남찬섭 교수.
▲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남찬섭 교수.
이날 발제를 맡은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남찬섭 교수는 정비방안이 추진되는 과정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가져왔다고 질타했다.

우선 남 교수는 이번 정비방안이 지자체의 자유 의지대로 추진을 전제로 한다는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강제성을 띠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에 따르면 정비방안은 지난 25일까지 시·도별로 정비계획안을 제출 받았다.

10월 초 시·도별 정비계획 사회보장위원회 보고, 다음달 27일 정비결과 1차 제출, 오는 12월 지자체 정비결과 사회보장위원회 보고, 내년 1월 15일 정비 결과 2차 제출 등 촘촘한 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

또한 이번 정비방안 결과를 행자부에서 실시하는 지자체 평가에 반영한다. 복지부에서 실시하는 지역복지사업 평가 역시 정비방안 실적을 내년 지자체 평가에 반영할 예정이다.

말만 자율 추진이지, 지자체 입장에서는 강제성이 짙은 사업이라는 것.

아울러 최근에는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며, 사회보장위원회의 심의·조정 결과를 따르지 않는 지자체에 대해 교부세 감액을 가능하게 하는 등의 불이익을 제도화하고 있는 상황.

정비방안, 현 정부가 정한 사회보장 원칙 위배

남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정비방안이 현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사회보장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새누리당 의원 시절, 사회보장기본법 역사상 최초로 ‘평생사회안전망’ 개념을 도입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평생사회안전망은 생애주기에 걸쳐 보편적으로 충족돼야 하는 기본욕구와 특정한 사회위험에 의해 발생하는 특수욕구를 동시에 고려해 소득·서비스를 보장하는 맞춤형 사회보장제도다.

또한, 사회보장기본법 제22조 제1항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든 국민이 생애 동안 삶의 질을 유지·증진할 수 있도록 평생사회안전망을 구축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남 교수는 “이에 비춰 볼 때,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비방안은 중앙정부가 자의적으로 정한 기준으로 유사·중복성을 판단하려는 점에서 정부 스스로가 천명한 수요자중심주의에 위배되며, 유사·중복성 판단의 주체인 지자체의 결정을 위배하는 방안.”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남 교수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정비방안의 경우, 주민의 복지욕구 우선의 원칙을 위배하고, 지방자치를 부정하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남 교수에 따르면 사업목적·기능이 동일하거나 유사하면서 사업의 대상범위 전부, 혹은 일부가 일치하거나 급여유형·제공형태가 유사하거나, 동일대상자에 대한 동일한 목적과 급여유형의 사업이 각각 존재하는 경우를 유사·중복사업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유사·중복성의 정의는 정부가 자의적으로 정한 것으로 어떠한 사회적 논의과정이 없었으며, 주민의 복지욕구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하는 사회보장사업의 본질에도 위배된다는 것.

남 교수는 “사회보장사업의 목적은 해당 수혜자가 어떤 환경에 처해있으며, 어떤 욕구를 갖고 있는가에 따라 다양하게 규정될 수 있다.”며 “특히 지자체가 시행하는 사회보장사업은 주민들의 생활상의 복지욕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현 정부가 강조하는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사회보장이 갖는 본질적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사업목적이나 기능이 동일한지 유사한지의 판단 기준은 중앙정부가 생각하는 사업 분류 기준이 아니라 주민의 복지욕구여야 한다는 것.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의 존재 이유라고도 할 수 있는 ‘복지 증진’을 중앙정부가 나서서 막는 것은, 한국의 지방자치를 부정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남 교수는 “사회보장기본법과 사회보장급여법에서 규정한 사회보장급여는 주민의 복지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지자체가 사회보장급여와 관련된 사무를 처리하는 것은 주민의 복지 증진을 지향하는 지방자치의 본질적 내용에 속한다.”며 “이런 점에서 비춰 볼 때,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비방안은 지방자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정비방안이 정비대상으로 명시한 사업은 지자체가 국비보조 없이 자체예산으로 시행하고 있는 자체사업이다.

지자체가 지방회의의 자치입법인 조례 제정에 따라 신설된 사회보장급여를 내용으로 신설·변경한 제도 과 동 제도에 기초해 지방회의의 심의·의결을 거쳐 편성한 자체에산은 곧 관할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얻은 것이며, 이러한 민주적 절차에 거쳐 확정된 자체예산 사업을 중앙정부가 지역주민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자의기준으로 지자체에 정비를 요구하는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

정비방안 뒷받침하는 법적 근거도 허약

현재 정부는 정비방안의 추진에 대한 법적 근거로 사회보장기본법 제20조 제2항(사회보장위원회)에 ‘사회보장에 관한 주요 시책을 심의·조정하기 위하여 국무총리 소속으로 사회보장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고 명시하고, 해당 조항 7호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비용 분담을, 제 9호에 사회보장 전달체계 운영과 개선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남 교수는 “중앙정부와 개별지자체 간의 개별적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특별규정은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의 협의·조정 규정이다.”며 “이 규정을 이번 정비방안에 적용할 수 있다고 해도, 이것이 적용되는 시간적 한계는 동 조항이 발효된 지난 2013년 1월 27일부터고, 그 이전에 지자체가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나 제도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7호에서 국가와 지자체의 비용 부담이 언급 돼 있는데,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정비방안은 지자체의 지체사업을 대상으로 하므로, 전국 공통으로 적용되냐의 여부를 떠나 사실상 비용분담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비방안 근간 되는 법조항 폐지해야

남 교수는 이에 대해서 정비방안의 근간이 되는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 제1항과 제2항을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협의 및 조정) 제1항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경우 기존 제도와의 관계, 사회보장 전달체계와 재정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고 상호협력하여 사회보장급여가 중복 또는 누락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해당 조항 제2항에는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경우 신설 또는 변경의 타당성, 기존 제도와의 관계, 사회보장 전달체계에 미치는 영향 및 운영방안 등에 대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복지부 장관과 협의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해당 조항은 지역복지에 관한 지자체의 자치권과 충돌하는 규정으 자치권의 본질을 침해할 수 있으며, 중앙정부 차원의 복지서비스가 열악한 현실에서 지역복지의 축소 내지 자율성 억압의 강제 수단으로 작용해 복지의 후퇴와 획일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

국회 심사보고서에서도 해당 조항에 대해 ‘무분별한 복지정책의 시행이나 변경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복지인력의 업무부담 가중, 지방재정 악화, 급여 중복·누락, 유사목적의 사회보장제도 도입 등을 방지하기 위한 중앙정부의 지역복지 통제장치’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남 교수는 “이번 정비방안 파동도 결국 위와 같은 사회보장기본법 관련 조항들을 중앙정부가 재정사정과 복지팽창 욕구를 억제하기 위해 무리하게 적용한 결과일 수도 있다.”며 “이와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시정하기 위해서는 위 법률 조항의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법률 개정이 필요하며, 국회를 통한 법률 개정이 어렵다면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 등이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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