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성명서

1월 8일 국회는 인권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오는 5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이하 ICC)의 한국 인권위에 대한 최종 등급심사를 앞두고 통과시킨 이번 인권위법 개정안은, 인권위가 보도자료에서 “ ICC의 권고를 반영하여 등급심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과 달리, 오히려 등급심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만큼 엉터리로 만들어졌다.

당초 ICC가 한국인권위원회의 A등급을 보류한 가장 큰 이유는 인권위원구성의 다양성 및 선출절차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 인권위법 개정안은 ICC의 권고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다양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하였다.

파리원칙과 어긋나는 다원성의 결여, 인권위원 자격 엘리트로 제한

개정안은 인권위원 자격으로 대학교수, 법조인, 인권분야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사람으로 자격을 한정하였다. 10년이라는 기간을 꼭 명시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일 뿐만 아니라, 대학교수와 판사, 검사, 변호사란 직업을 특정하면서 ICC가 권고한 인권위원의 다원성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법조 엘리트들이 제대로 인권위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은 현재의 인권위가 잘 보여주고 있으며 2014년 ICC가 한국인권위 등급심사를 보류시키면서 지적한 것 중 하나가 인권위원의 다원성 결여이며, 법조인 중심의 인권위원을 변화시킬 것을 권고한 것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개정안다.

현재 한국 인권위는 위원장을 포함하여 11명의 인권위원 중 7명이 법조인 출신이다. 그런데 법조인 출신 인권위원들이 국가인권위원회를 또 다른 법원처럼 운영하면서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고통보다는 법조문 해석과 적용에 매달려 있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인권위원의 자격조건을 인권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 및 활동경험이 아닌 직업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미 한국 인권위는 현병철 전위원장을 포함하여 인권에 대한 이해가 없는 법조인들로 인해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지가 오래된 상황이다.

게다가 인권분야에 활동했던 사람의 자격을 비영리민간단체와 법인 및 국제기구로 제한하고 인권위원 추천단체를 비영리 민간단체나 공익법인 등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많은 인권활동가들은 비영리민간단체나 법인으로 규정되지 않는 다양한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다. 어떤 활동을 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단체에 속해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많은 인권활동가들과 시민들의 인권위원 선출기회와 추천기회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인권위법이 평등권을 제한하는 황당한 상황인 것이다. ICC 가 말한 시민사회의 참여는 파리원칙에 드러나듯이, 노동, 여성, 농민, 장애,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이해가 반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나 이러한 내용은 전혀 없다.

시민사회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인선절차

ICC는 인선절차에 있어서 시민사회와의 협력과 참여를 보장하라고 권고 하였다. 그러나 인권위법 개정안은 “국회, 대통령 또는 대법원장은 다양한 사회계층으로부터 후보를 추천받거나 의견을 들은 후 인권의 보호와 향상에 관련된 다양한 사회계층의 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위원을 선출·지명하여야 한다.”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어떻게 후보를 추천받고 의견을 들을지에 대한 절차가 구속력 있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 이미 청와대는 2014년도 3월과 10월에 ICC로부터 한국인권위가 등급보류를 당하고 인권위가 인선절차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음에도, 2014년 11월에 성소수자 차별운동을 해온 최이우 씨를 인권위원으로 임명한 바 있고, 2015년 3월에 또 등급보류를 당한 상황에서도 밀실에서 이성호 위원장을 선출한 바 있다. ICC의 권고를 청와대가 나서서 무시하는 상황에서 “추천받거나 의견을 들은 후”라고 규정한 것은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하여 시민사회의 참여가 보장되지 못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ICC 권고의 핵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개정안이다.

인권위원에 대한 면책이 아니라 인권위의 독립성 확보가 관건

ICC가 권고한 인권위원 면책조항 신설의 핵심은 인권위가 독립적으로 인권침해 사안을 조사하고 권고하는데 국가권력으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보호 장치를 만들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개정안은 인권위원들이 한 발언과 의결에 대해서 면책조항을 주고 있다. 인권위원 뿐만 아니라 인권위 직원들이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보호하라는 ICC의 권고를 엉뚱하게 해석하여 무자격 인권위원들이 반인권적인 발언이나 의결을 하는 것을 보호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인권침해를 발로 뛰면서 조사하는 조사관에 대한 보호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가 특정 조사관의 배제를 종용하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개입했던 과거를 떠올리면 꼭 필요한 것이지만 이러한 내용은 없다.

인권위법 개정 과정의 문제점

이번 인권위법 개정과정에서 정부와 국회는 인권위법 개정과 관련하여 시민사회와 충분히 소통하고 시민사회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등급보류 사태가 2년이 넘게 계속되었음에도 국회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내다가 최종 등급심사가 가까워지니까 이제야 졸속으로 인권위법을 개정한 것이다. 아니 등급심사에서 A 등급 유지를 위한 내용없는 개정안이다. ICC권고의 의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생색내듯이 만든 인권위법 개정은 결코 등급심사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한국인권위의 등급이 하락한다면 그 책임은 청와와 대법원을 물론이고, 엉터리로 법을 만든 새누리당과 더불어 민주당이 져야할 것이다. 특히, 더불어 민주당은 국민의 인권과 국제사회에서의 평가를 앞둔 중차대한 법안을 시민사회와 소통 없이 이렇게 어이없이 통과시킨 일은 실망스럽다. 작년 새정치민주연합은 비상임위원 인선을 위한 후보추천위원회에 시민사회를 참여시킨 긍정적 경험이 있음에도 그것보다 못한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인권위의 후퇴에 지대한 역할을 한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미 기대하지 않았으나, 더불어 민주당은 그나마 ICC의 권고에 따른 인권위법 개정을 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헛된 기대였다.

우리는 이번 인권위법 개정안의 문제를 ICC에 전달하고 현재 한국정부와 국회, 인권위가 얼마나 ICC의 권고를 무시하고 왜곡하고 있는지를 국제사회에 알려나갈 것이다. 등급보류를 세 번이나 당한 것도 창피스러운데 엉터리 인권위법 개정으로 국제사회를 속일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와 인권위 독립성 확보 의지가 없음은 만천하에 알릴 것이다. 국회는 지금이라도 ICC의 권고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인권위법 개정에 다시 착수하여야 한다. 이것은 인권위의 등급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한 한국의 책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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