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당, 이달 말 공식 활동 종료… 전국 순회 선전전 통해 당 정책 알릴 것

“광화문에서 4년여 간의 외침은 매번 허공의 메아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우리의 목소리를 직접 낼 수 있는 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정식정당은 아니다. 가상의 정당이지만 시민들에게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우리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한)당(이하 폐지당)’이다.”

아직은 쌀쌀한 21일 아침 7시 30분. 경복궁역 4번출구에는 분홍색 꽃 장신구를 단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무슨 일일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법도 한데 무심히 지나치는 발걸음들 속으로 분주히 무언가를 준비하는 이들은 폐지당 당원들이다.

당원들이 제법 모이자 사람들은 저마다 손팻말을 들고 경복궁역 7번 출구 앞 사거리로 향한다. 손팻말에는 ‘국무총리와 면담을 요구한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등의 문구들이 적혀있다.

궁금했다. 정식 정당도 아닌데 아침부터 나와 선전전을 펼치는 이유가.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철균 활동가가 발언을 진행하고 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철균 활동가가 발언을 진행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알리기 위해 나왔습니다. 우리는 정식정당은 아닙니다. 하지만 선거유세라는 것을 해보기 위해 나왔습니다. 매번 선거 때마다 우리는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그 누구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정당을 만들고 지역구 후보자와 비례대표를 뽑아 시민들에게 우리의 정책을 알리는 겁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철균 활동가의 외침이다. 박 활동가는 선전전 내내 시민들을 향해 외치고 또 외쳤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그저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일 뿐이다.

폐지당은 선거 후보들이 수백 장 씩 찍어 나눠주는 명함도 만들었다. 바탕이 분홍색이라 눈에 확 띈다. 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그다지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민아영 활동가가 나눠주는 명함을 받아들고 유심히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민 활동가는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가면 기운이 쭉 빠지다가도 관심 있게 폐지당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게 힘이 돼서 또 열심히 하게 된다. 그게 매력이다. 한 번은 광화문 농성장에 대학생들이 찾아와서 폐지당을 알고 있다며 응원한다고 찾아왔다. 정말 힘이 됐다. 아, 우리의 행동이 결코 작은 것은 아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외치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는 무엇일까? 이들은 왜 정당을 만들었을까?

의문이 커지는 순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문애린 활동가가 웃으며 물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문애린 활동가가 손팻말을 들고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문애린 활동가가 손팻말을 들고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분홍색 꽃 장신구 이상하지 않아요?”

이들이 외치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는 4년여 전 광화문 농성에서 시작됐다.

장애인의 신체에 낙인을 부여하고 복지 이용을 제한하는 장애등급제와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최후의 사회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이 제도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으로 문제점이 발견됐지만 아직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은 기존 1~6등급으로 나눠진 장애등급을 1~3급은 중증, 4~6급은 경증으로 구분하는 단순화 시범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장애계는 말한다. 정부가 진행하는 사업은 장애등급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껍데기’만 바뀐 정책이라고.

또한 부양의무자 기준은 한국의 빈곤 심각성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제도다. 현재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5% 수준으로 OECD 국가 가운데 최상위 권에 속한다.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하는 절대적 빈곤율도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약 500만 명이 절대빈곤, 약 750만 명이 상대빈곤에 처한 상황이다.

더욱이 빈곤층임에도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410만 명이다. 이 중 74.2%가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한 수급자격 탈락자다.

문 활동가는 “이러한 부당한 복지를 비판하고 복지확대를 요구하기 위해 광화문 농성장에는 분홍종이배가 있다. 그래서 폐지당도 이러한 뜻을 담아 분홍 꽃 장신구를 상징으로 사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꽃 장신구가 처음에는 창피하기도 하고 해서 목도리, 장갑, 모자 등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 선택된 게 꽃 장신구인데……. 괜찮아요? 우리는 할 때마다 창피해서……. 하하.”

▲ 폐지당 당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선전전을 하고 있다.
▲ 폐지당 당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선전전을 하고 있다.

웃고 떠드는 사이 어느새 1시간 남짓 흘렀다. 마무리 발언으로 폐지당 이형숙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형숙 대표에게 물었다. 폐지당 선전전으로 시민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그리고 폐지당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무엇을 바라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시민들에게 바라는 것은 이번 총선에서 누가 우리들의 목소리를 듣고 삶을 바라볼 수 있냐는 거예요. 그 목소리를 듣고 제대로 된 ‘한 표’를 행사해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죠. 이 사회에서 차별받고 억압받는 사람은 없어야 돼요. 모든 차별이 폐지돼야 한다는 거죠. 장애, 가난을 이유로 삶을 옥죄이지 않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은 사회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 해요.”

선전전이 끝난 뒤 폐지당은 광화문 농성장으로 발걸음을 돌렸지만 그 또한 녹록지 않았다. 경찰들이 에워싸고 이들을 막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참 실랑이가 이어진 뒤 광화문 농성장으로 돌아가는 폐지당의 뒷모습은 힘찼다.

이달을 마지막으로 공식 활동이 종료되는 폐지당. 이들의 외침에 답은 언제쯤 듣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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