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고군분투’ 하는 부모에게 전하는 이야기
홀로 ‘고군분투’ 하는 부모에게 전하는 이야기
  • 황현희 기자
  • 승인 2016.09.28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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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치훈 정책실장과 인터뷰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는 대체로 자녀가 처음 장애판정을 받았을 때 ‘놀람, 당황, 슬픔, 현실부정, 죄책감’ 등을 느낀다.
한동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아이를 그저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병원을 가서 다시 검진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며 당장 내 자녀 앞에 놓인 미래와 마주하게 된다. 자녀의 치료와 교육, 직업 등의 문제를 떠올리게 되는데, 마땅한 정보도 딱히 찾을 수 없는게 현재 한국의 현실이다. 오롯이 부모 혼자 자녀의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

지난 2007년 발달장애재활서비스 시행에 따라 발달장애인은 등급과 소득수준에 따라 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시행된 지 10년이 됐지만, 한국의 발달재활서비스가 여전히 후진적인 모습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재활’ 개념 자체도 ‘나을 수 있는,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장애가 대부분인 발달장애인에게 맞지 않을뿐더러 서비스 제공도 장애등급과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으로 적용받는다.

발달장애인 개개인의 장애증상, 특이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일괄적으로 등급과 소득수준에만 기준을 맞췄기 때문에 합리성이 떨어진다.

원래 재활서비스의 가치는 ‘재활이 필요한 아이에게 어느 정도 필요한지 파악하고 그만큼을 제공해주는 것’인데 한국의 경우 질적인 경우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양적인 측면에서도 충분치 않다.

구조가 이렇다 보니 발달장애가 있는 어린이의 재활은 대부분 부모님이 결정하게 된다. 물론 의사의 조언,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부모의 선택에 맡겨진다.

부모가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장애 이해도가 높아 최적의 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정보가 부족하고, 혹은 과한 ‘욕심’에 각종 재활을 모두 다 시키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발달장애가 있는 어린이의 재활서비스는 ‘팀’으로 운영해야 가장 큰 재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팀은 부모, 재활전문가, 의사, 교육담당(가령, 선생님) 등 어린이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직이다.

팀 전체가 아이의 발달상황을 지켜보고, 성장에 필요한 최선의 것(재활, 교육, 치료 등)을 논의·결정한다. 이후 모니터링-피드백 과정을 통해 각 부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더 나은 활동을 찾아간다. 즉, 아이의 생애주기별 모든 재활, 교육 등을 함께 논의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협력’이다. 의사-치료사-부모-그 외에 전문가 사이의 협력이 있어야 원활한 논의와 분석이 이뤄질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제일먼저 팀 구성원이 각 분야의 경험과 실력을 갖춘 전문가 여야 한다.

현재 언어치료사, 물리치료사 등은 ‘민간 자격증’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어 체계화되고 전문화 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장애이해도나 유형별 대응 방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외국의 경우 치료사 등은 석사 이상의 전문가로 실무 경험이 많고 재활치료에 있어 보다 높은 전문성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도 치료 관련 관리 기준을 엄격하게 높일 필요가 있다.

발달재활서비스가 원활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팀 단위의 치료뿐만 아니라 국가의 역할도 중요하다. 국가가 재활서비스에 책임감을 갖고 적극 임해야 하는데, 현재 한국 정부는 단순히 ‘치료비용 경감’만(이마저도 충분치 않다)을 해주고 있다.

현재 한국의 초등학교, 중학교가 의무 교육인 것처럼, 조기재활 치료 또한 ‘국가의 의무’로 생각하며 적극 된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는 향후 발달장애인이 성인기에 접어들 때 국가가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작업치료, 재활치료 등)시킨다는 면에서도 충분히 효율성 있는 방법이다. 즉, 합리성을 전제로 볼 때 정부의 적극 된 자세와 충분한 지원이 있을 때 발달재활서비스를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통합학교… 지역사회로 가기 위한 첫걸음

▲ 지적장애가 있는 11살 허동구와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날아라 허동구’ 스틸사진.
▲ 지적장애가 있는 11살 허동구와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날아라 허동구’ 스틸사진.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님의 걱정이 비단 재활치료 뿐이랴. ‘어떻게 키울까’에서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는 ‘교육’이다.
비장애 어린이들처럼 발달장애가 있는 어린이들도 어떤 학교에서 어떤 선생님과 어떤 교육을 받느냐가 삶 전체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대다수 부모님들은 통합학교, 특수학교, 통합학교 특수학급 등 세 가지 선택지를 놓고 끊임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는 부모에게 조금이나마 ‘팁’을 말하자면, 선택은 간단하다. 아이의 현재가 아닌 아이가 10년 후에, 20년 후에 성인이 될 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지 상상해 보자. 여전히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 대부분 후자를 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통합학교!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특수학교란 용어는 나오지 않는다. 협약에서 교육은 직업교육과 통합교육이 핵심 골자다.

현재 한국 특수학교의 목적은 ‘통합학교를 가기 위한 단계’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도 통합학교의 전 단계로 특수학교를 만들지 않는다. 물론 특수학교도 사회성 증진, 공동생활 터득 등 나름의 장점이 있겠지만, 본인과 같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끼리만 모여 교육 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고 확신할 수 없다.

결국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성인이 되면 지역사회에 함께 살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그들끼리만 지내는 것을 배울 필요는 없다.

물론 많은 부모들이 통합학교에 자녀를 보낼 경우 선생님과의 문제,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 걱정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지금 피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과제고 현실이다.

따라서 통합학교에 보내는 것이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다만, ‘지원이 충분한 통합학교’란 전제가 있어야 한다. 통합교육의 핵심은 일반교사와 특수교사의 협력이다. 두담임제로 일반학급에 일반교사, 특수교사를 배치해 학생들을 살필 수 있게 해야 한다.

교사가 2인으로 늘어날 경우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예산이다. 그러나 현재 장애아동을 위한 특수 교육 예산이 2조원 정도다. 이중 절반이 특수학급 교육에 사용된다. 이 부분을 일반학교 교육에 사용한다면 예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혹은 찾아 주는 것

▲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이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은 ‘카드로 만든 집’ 스틸사진.
▲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이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은 ‘카드로 만든 집’ 스틸사진.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의 교육에 있어 통합교육 뿐 아니라 직업교육도 강조한다. ‘자립’에 기반이 되는 직업을 얻기 위해서 직업교육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

현재 한국은 보호작업장과 근로사업장 위주로 직업교육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직업서비스선택권리가 당사자가 아닌 기관중심으로 돼 있기 때문에 중증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배제되고 있는 상황이다.

직업교육을 원하는 이용자가 줄서서 대기하면, 복지관 등 기관은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가는’ 경증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는 개인이 어떤 서비스를 누구로부터 받을 지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이에 부모연대는 당사자에게 교육, 여가, 직업 활동을 함께 하는 주간활동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일반기업을 대상으로는 장애인 인턴제를 시도하려 한다.

일반기업 대상의 장애인 인턴제가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든다면,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1990년대 미국은 병원에 처음 장애인인턴제를 시행했다. 청소, 복사 등 단순 반복 노동을 발달장애인에게 시킨 결과 서로 굉장한 만족감이 있었다. 병원 측은 병원에서 해야 하는 많은 노동(단순 반복이라 비장애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을 덜 수 있어 좋고, 중증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과제 수행을 잘 이행했다.

영국에서는 이미 일반기업 인턴제를 믿을만한 프로그램으로 공식인증했다. 한국 역시 인턴제가 장애인 직업에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립…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닌 의사결정권을 갖는 삶

▲ 강인한 어머니와 첫사랑 소녀의 만남으로 지적장애가 있는 소년이 따뜻하게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포레스트 검프' 스틸사진.
▲ 강인한 어머니와 첫사랑 소녀의 만남으로 지적장애가 있는 소년이 따뜻하게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포레스트 검프' 스틸사진.

통합학교, 직업교육. 이들은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요소다. 또한 이는 곧 ‘자립’과 직결된다.

장애인의 자립이 처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70~80년도다. 이 당시 자립생활은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혼자 대소변 보기, 가사 일 하기 등을 뜻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자립의 개념은 ‘혼자 살아가기’로 통용됐다. 그러나 이것은 발달장애인에게는 맞지 않다.

일본과 미국이 자립생활을 하는 발달장애인을 살펴본 결과 6~70%가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즉, 비단 ‘부모에게서 벗어나’는 삶만이 자립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은 ‘최대한 자기결정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의미가 더 정확할 것 같다. 개념을 다르게 하면 자립을 위해 지원돼야 할 서비스 또한 바뀌게 된다.

당사자의 자립 지원이 아닌, 가족중심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 당사자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가족 혹은 동거인은 함께 노력해야 한다.

또한 자립에서 많은 부모들이 ‘시설’을 염두(반드시 시설을 보내야 한다가 아닌, 방법이 없으면 할 수 없이 시설을 보내야 하나 등의 마음)해 두는 것에 비판보다는 시설이 아닌 다른 대안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실제 많은 부모들이 발달장애인이 자립해 살아가는 성공사례를 접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부모가 죽고 난 뒤 자녀의 삶을 생각할 때 시설을 하나의 선택지로 넣고 있다.
이를 부모의 잘못으로만 몰고 갈 순 없다. 오히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국가, 사회 전체가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다.

부모연대도 자립 성공 사례를 많이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이 점차 더 알려지면, 부모는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도 저렇게 살 수 있구나. 시설이 해결책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시설의 또 다른 형태인 그룹홈도 마찬가지다. 복지관 아래 장애가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거주 형태인 그룹홈은 학교로 비유하자면, 통합학교 특수학급 정도일 것이다.

통합학교에 입학했으면, 비장애 어린이들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끼리만 뭉쳐 있으면 그것이 특수학교와 다를 게 없다. 그룹홈도 마찬가지다. 지역사회에 함께 살기로 했으면 함께 살아야 한다. 그곳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란 회의감이 든다. 물론 자립할 수 있도록 기반을 잘 닦아야 하는 것 또한 우리의 과제다.

▲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이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은 ‘카드로 만든 집’ 스틸사진.
▲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이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은 ‘카드로 만든 집’ 스틸사진.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국가, 지역사회, 시민단체의 노력에도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발달장애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이다.

한국은 발달장애인의 의사결정권을 위해 성년후견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성년후견제는 발달장애인이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결정을 지원해주는 제도지만, 한국은 결정대행을 해주는 것으로 변질됐다.

특히 성년후견제는 임의, 특정, 한정, 성년후견으로 나뉘는데, 성년후견의 경우 모든 의사결정을 성년후견인이 대행하기 때문에, 의사결정권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이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옳지 않은 제도라고 권고한 바 있다.

따라서 특별한 사안(상속, 재산 관리 등)에 대해서는 임의적으로 성년후견인이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모든 의사결정을 대행하는 취지의 성년후견인은 없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발달장애인의 의사결정권을 지지·권장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까. 그 중 하나가 자조모임을 통한 권리 찾기다.

지난 8월 발달장애인 자조모임 단체인 피플퍼스트가 한국에서 출범됐다. 이를 계기로 발달장애 당사자가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피플퍼스트 외에도 자조모임이 많지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자조모임이 문화·여가 생활에 치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문화·여가 부분에서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사회 분야에서 보다 높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자조모임이 한 단계 발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물론 자조모임 자체가 의사결정권을 존중받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옆에서 ‘이런 쪽으로 흘러가라’고 조언하는 것 또한 다른 측면에서보면 의사결정권을 방해하는 행동일 수 있다. 따라서 피플퍼스트내에서 스스로 좀 더 많은 영역에서 그들의 권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

한국은 아직 자조모임이 활성화되지 않아 정형화 할 수 있는 움직임이나, 프로그램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이에 앞으로 미국처럼 많은 자조모임이 생겨 그들이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선험적인 사례, 연구 등이 활발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했듯이 발달장애인의 자립은 가족중심서비스가 제공돼야 하기 때문에 당사자뿐만 아니라 비장애 형제, 자매들 사이의 자조활동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

아울러 동료상담을 통한 정서적 지지 등이 필요한 부분이다. 서로 힘든 점을 나누고,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함께 해결하면서 연대해야 비장애자녀 역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 지지하고 힘을 보태야 오랜 싸움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끝으로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한마디 힘을 보태자면,
사회문제는 누가 이 문제에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지지 하며, 대안과 목표를 제시하느냐에 따라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 면에서 발달장애인은 ‘부모’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다.

발달장애인 문제를 가장 앞서서 제시하고 활동한 사람 역시 부모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발달장애인의 삶은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다. 그러니 지치지 말고 열심히 힘을 내자.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지원받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