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계, 민중총궐기 통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외쳐
밤10시까지 청와대 일대 행진

2016년 11월 12일. 민중총궐기의 날이 밝았다.

민중총궐기는 지난해 11월 14일 박근혜 정부의 노동·농민·빈곤·장애인 정책 등에 항의해 노동자·장애인·농민·학생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박근혜 정부에게 그들의 요구안을 알리는 자리다.

이에 지난해에는 쌀수입저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세월호 진상규명, 사회공공성 확충 등을 주요 요구안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올해 진행된 민중총궐기는 의미를 조금 달리했다. 최근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는 일명 ‘최순실 게이트’라 불리는 각종 비리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농단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분노했고, 12일 민중총궐기를 기점으로 광화문, 서울시청 일대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기로 한 것.

장애계도 민중총궐기에 참여해 목소리를 높였다.

11월 12일 1시. 그들의 문제를 세상에 알리다

민중총궐기 본대회 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전장연 총궐기를 열고,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외쳤다.

‘빈곤의 사슬’이라 불리는 부양의무자 기준은 기초생활 수급권자의 1촌 직계혈족(부양의무자)의 재산과 소득 수준이 제도가 정한 수준(2016년 기준 484만7,468원 이상)에 미달해야만 수급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문제는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신청자가 부양 받지 않고 있음에도 법률상 1촌 직계혈족의 재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급권 신청에서 탈락되는 등 수급 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늘어나고 심지어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1년 4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을 받지 못하게 된 김 모 씨는 폐결핵 치료를 받지 못해 병원을 오가다 거리에서 객사했다. 또한 지난 2012 여름에는 사위의 소득 증가로 수급을 박탈당한 이 모 씨는 거제시청 앞에서 독극물을 들이키고 숨을 거뒀다.

‘낙인의 사슬’이라 불리는 장애등급제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1~6급으로 등급을 나누는 것이다. 사람을 급수로 나누면서 비인격적 존재로 치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장애등급제는 장애인 개인별 맞춤형 지원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의학적 판단에 따라 등급을 획일적으로 나누다 보니, 정작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 활동보조인(1~3급만 신청 가능)이 필요하지만 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신청자격 자체가 없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곧 장애인의 생존권과 직결된다.

지난 2014년 숨을 거둔 송국현 씨는 종합장애등급 3급(언어장애 3급, 뇌병변장애 5급, 당시 활동지원서비스 제공은 장애등급 2급) 판정으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송 씨는 당시 살고 있던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자립생활체험홈에서 불이 났지만, 혼자서는 밖으로 나올 수 없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이렇듯 장애인에게는 빈곤, 낙인의 사슬이자 생존권의 문제인 부양의무자기준·장애등급제를 폐지시키기 위해 전장연은 지난 2012년부터 광화문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외치며 현재까지 1544일(12일 기준) 동안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한 국정 운영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장애계는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였다.

전장연 박경석 상임대표는 “우리가 4년째 농성을 하고 있지만, 목표를 잘못 잡은 것 같다.”며 “우리는 왜 박근혜 대통령에게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외쳤을까. 너무 억울하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박근혜가 아니라 최순실 이었다. 우리는 완전히 속았다.”며 한탄했다.

이어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형숙 상임대표는 “박근혜 정권은 분명히 우리에게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약속했다.”며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모두 ‘뻥’이었다. 4년 동안 죽어라고 투쟁했지만, 그것이 정말로 잘못된 것이란 걸 알았다. 우리가 4년 넘게 농성한 것이 억울해 반드시 박근혜 정권 물러나고, 새로운 정부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주길 바란다. 우리의 미래는 누구하나 소외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반드시 우리의 투쟁이 헛되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합시다.”고 강한 다짐을 전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박근혜 폐지를 외치는 총궐기를 가졌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외치는 총궐기를 가졌다.
▲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시민들에게 대통령 퇴진하라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장애계.
▲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시민들에게 대통령 퇴진하라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장애계.

11월 12일 2시.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종각역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종각역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오후 2시. 전장연은 청계광장으로 이동해 빈민-장애인 대회를 가졌다.

빈민-장애인 대회는 노점상, 철거민, 장애인, 노숙인, 쪽방주민, 기초생활수급자 등 도시에 살아가는 빈민-장애인의 현실을 알리는 집회다.

이날 대회에 참여한 민주노점상전국연합은 최근 노점상을 강제 철거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수역 7번 출구에서 장사를 하는 노점상들은 대부분 70대가 넘은 빈민이다. 15년 동안 노점을 해왔지만, 지난달 2일 이수역 용역반에 의해 노점상이 강제철거되면서 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에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이수역 노점상 이기철 회원은 “강제철거는 현행 법상 금지돼 있다.”며 “벼랑 끝에 내몰린 우리는 이제 절망을 딛고 싸우는 방법 밖에 없다.”고 투쟁 의지를 전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노량진수산시장의 현대화로 전통노량진수산시장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정부는 노량진수산시장을 없애고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

전통노량진전통수산시장 총연합회 윤헌주 공동위원장은 “사라질 위기에 놓인 전통노량진수산시장을 지키기 위해 모진 탄압과 폭력적인 권력의 횡포에 맞서 싸우길 벌써 1년이 됐다.”며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은 생존권을 위해 험난한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어민들의 시장, 바로 89년 전통의 노량진수산시장.”이라고 수산시장을 지키기 위한 강한 의지를 전했다.

▲ 빈민-장애인 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노점상 연합.
▲ 빈민-장애인 대회가 열리고 있다.

11월12일 오후 4시. 100만 명이 전하는 외침

빈민-장애인 대회가 끝난 뒤, 전장연은 서울시청에서 민중총궐기 본대회에 참석했다. 1시간 가량 본대회가 열린뒤, 오후 5시부터 민중총궐기 참가자 전원이 행진을 시작했다.

전장연은 을지로1가~청계천1가~종각역~종로2가~경복궁 앞을 약 5시간 가량 행진했다.

그리고 민중총궐기를 참석한 각계각층의 단체, 시민들과 함께 외쳤다. “퇴진하라!”

한편 이날 민중총궐기에 참석한 사람은 주최측 추산 100만 명 이상이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종각역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종각역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