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시행, 입원 적합성 판정 기구 등 구체화 된 계획 없어
단순 개정에 그치지 말고 ‘탈원화-지역사회 정착’ 가기 위한 과정이어야

▲ 장애계는 지난 2015년 9월 2일 강제입원 조항 폐지, 정신질환자 복지 증진을 위한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 제정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웰페어뉴스DB
▲ 장애계는 지난 2015년 9월 2일 강제입원 조항 폐지, 정신질환자 복지 증진을 위한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 제정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웰페어뉴스DB

지난해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이 오는 5월 3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 시행되는 정신건강복지법에 대해 이견은 있지만, 대부분 강제입원 요건이 더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 정신보건법은 강제입원 기준을 ‘치료를 필요로 할 정도의 정신질환이 있으며’, ‘자해나 타해의 위험성이 있는 심각한 경우’로 정했다.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만 충족하면 강제입원이 가능했다.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은 두 가지 기준 모두 충족해야 하며, 정신의료기관의 장은 정신질환자에 대해 입원 등이 필요하다고 진단한 경우 2주 안의 기간을 정해 입원하게 할 수 있다.

정신의료기관의 장이 계속 입원 등이 필요하다고 진단할 경우,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 소속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2명 이상(국립·공립 정신의료기관 또는 보건복지부장관 지정 정신의료기관 소속 1명 필수)은 의 일치된 소견이 있는 경우에만 계속 입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의료계와 장애계는 ‘정신의료기관이 사람의 신체 자유를 좌지우지할 절대 권한을 갖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정신질환이 있는 당사자들은 그동안 의사가 ‘진단’과 ‘치료’를 넘어선 결정권자가 되는 것자체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입원 적합성 판정 기구, ‘유명무실’ 될 가능성 높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서동운 센터장은 ‘의사는 강제입원 결정권자가 아니라 치료와 진단을 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못박았다.

서 센터장은 “그동안 잘못된 법이 너무 쉽게 의사한테 권한을 준 꼴이다. 의사에게 강제입원 결정권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한게 잘못된 것.”이라며 “의사는 진단하고 치료하는 사람들이다. 강제입원은 신체 자유를 구속하는 측면에서 이와 별개로 다뤄져야 함에도, 의사는 마치 강제입원을 결정하는 것이 정당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희대학교 신경정신의학과 백종우 교수 역시 ‘의사는 강제입원 결정권자가 아니라 치료와 진단을 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지적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며, ‘입원 결정권자’의 역할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바라봤다.

정신건강복지법은 강제입원 적합성 여부를 심사하는 기구로 국립정신병원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 안에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이하 위원회) 설치‧운영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위원은 10명~30명으로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판사·검사 또는 변호사의 자격이 있는 사람 ▲정신건강복지센터 소속 정신건강전문요원 ▲정신질환자의 보호와 재활을 위하여 노력한 정신질환자의 가족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으로서 정신건강에 관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 중 각각 1명 이상을 포함해야 한다.

하지만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이 100여 일 남은 시점, 해당 위원회의 설립·운영 등에 대한 논의가 없는 실정이다.

백 교수는 “다양한 인력으로 위원회를 구성하는 데는 찬성하지만, 예산‧인력‧운영 등에 관한 세부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위원회의 강제입원 심사와 평가 시스템은 어떻게 운영할지 등 구체화 된 계획이 전혀 없다. 이대로 법이 시행된다면 위원회는 분명 유명무실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치료·관리 넘어선 국가의 역할 없이 ‘탈원화-지역사회 정착’ 어려워

이러한 우려 가운데 정신질환자는 더이상 병원·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야 한다는 패러다임을 반영한 정책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높다.

▲ 당사자들은 광화문에서 강제입원 폐지와 지역사회 정착 위한 법 제정을 요구하는 팻말 시위를 했다.   ⓒ웰페어뉴스DB
▲ 당사자들은 광화문에서 강제입원 폐지와 지역사회 정착 위한 법 제정을 요구하는 팻말 시위를 했다. ⓒ웰페어뉴스DB

의료계와 장애계 모두 이를 위해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가는 강제입원 적합성 여부를 평가하는 소극적 역할에서 벗어나, 적극 개입해 정신질환자의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 예로 미국은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유형의 사례관리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1980년대 활성화된 ACT(Assertive Community Treatment, 지역사회 기반 치료)는 중증의 정신장애인 1명당 정신과의사와 간호사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 등 10명으로 구성된 하나의 팀이 사례관리를 맡는다. 이들은 단순 치료와 관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담, 취업, 주거문제 등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평화주민사랑방 문태성 활동가는 “정신의료기관, 사회복귀시설, 요양시설 결국 다 같은 시설이다. 우리는 정신질환자가 병원에서 나와 시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미국과 같은 선례를 참고해 한국도 사례관리 프로그램을 제대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장애계는 이번 정신건강복지법이 강제입원을 폐지하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신석철 사무국장은 “정신건강복지법이 100%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당사자 동의 없는 강제입원을 금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 폐지 하기에는 사회합의가 덜 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요건과 절차를 점점 강화해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확률이 줄어든다면, 언젠가는 당사자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법이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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