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력 있는 벌칙 조항 갖춰야… 국가인권위원회 역할 재정립 필요
발달·정신적 장애인 인권 위한 규정 추가 돼야

▲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4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10주년 장차법 개정안 수렴 토론회’를 열었다.
▲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4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10주년 장차법 개정안 수렴 토론회’를 열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2007년 ‘장애 당사자가 직접 법 제정운동을 펼쳐 쟁취해낸 성과물(당사자 주의)’, ‘시혜에서 인권으로, 장애인 운동의 패러다임 변화’, ‘장애인 인권 운동의 진일보’ 등의 의의를 갖고 제정됐지만, 2017년 10년차를 맞이한 법은 당시 의의가 무색하게, 실효성 측면과 장애인 권리 구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실성이 부족하고 강제성이 약해 법으로서의 역할이 다소 퇴색했다는 지적이 제기된 가운데, 법률을 새롭게 개정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4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10주년 장차법 개정안 수렴 토론회’를 열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지난 2000년 영국에 연수를 다녀온 장애인인권단체 활동가들의 입을 통해 외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한 내용이 전해지면서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2003년 4월 15일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장애계 단체 58개가 참여해 제정추진연대가 출범고, 이들은 법 제정을 위해 157일 노숙농성, 삭발 투쟁 등을 진행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지난 2007년 3월 6일. 마침내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실효성 낮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원인은 강제력 없는 시정조치

법의 목적과 기대만큼 법의 제정이 장애인의 권리구제, 차별 해결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4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다르면 장애당사자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많다고 느끼는 비중이 68.4%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년도인 2008년도에 79.7%에 비하면 소폭 감소했으나 여전히 절반 이상이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인지도는 22.4%로 매우 낮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법의 실효성 저해 요인으로 장애차별에 대한 강제력 없는 시정‧권고 조치를 꼽았다.

애초 장애인차별 시정기능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서 수행하도록 하되, 법무부 장관에게 시정명령권을 주는 선에서 법 제정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법무부의 시정명령은 현재 거의 기능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법무부는 지난 2010년 뇌병변장애가 있는 남성의 질병에 의한 직권면직 사건에 대해 최초로 장애인차별시정명령을 내리고 이후 2012년 수원역 앞 지하도상가의 관리주체인 수원시장에게 시정명령을 내린 것을 끝으로 5년이 될 동안 단 한건의 시정명령도 내리지 않는 상황이다.

현재 시정명령조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인권위의 시정권고율 저하에 있다. 실제로 시정권고 건수가 매우 적은 상황에서 시정명령은 근본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권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4월~2016년 12월 까지 장애차별 진정 건수는 1만77건이다. 이 중 383건만 인용처리 됐고, 기각이 1,530건, 각하 5,408건이다. 진정의 절반 이상이 각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

김 사무국장은 “인권위의 장애 차별에 대한 매우 낮은 인용률은 시정명령제도의 활성화를 막고 차별구제의 강력한 시정조치를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며 “인권위의 낮은 장애 감수성과 법리 판단은 결국 장애와 관련한 사건에 대해 당사자의 입장과 인권적인 관점을 담아내기 어려우며 결국 많은 사건이 장애가 고려되지 않은 채 기각 또는 각하 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질타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문희 사무처장도 시정기구로서의 인권위의 한계를 말하며, 인권위가 장애인 차별 사건을 처리하는데 인력과 예산이 충분한지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전했다.

지난 2015년 인권위가 발표한 인권통계를 살펴보면, 인권위 진정 비율 중 장애인차별에 대한 진정이 전체 사건의 43.4%를 차지한다. 그러나 장애인 인권증진에 대한 예산은 전체 예산 65억1,700만 원 중 3.5%인 3억7,500만 원에 불과하다.

또한 장애관련 차별 행위 접수현황은 지난 2014년 총 1,139건임에도 해당 업무 담당부서는 22명에 불과하다. 4개 지역의 지역인권사무소 인원도 10명 내외의 적은 수다. 대략 1명의 조사관이 연간 50여 건의 업무를 처리해야하는 것이다.

이 사무총장은 “급속히 늘어난 장애인 차별 분야의 진정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 관련 분야의 인력과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 이런 요건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인권위는 지금처럼 장애차별 시정기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1장 총칙부터 6장 벌칙까지 새롭게 개정돼야

장애인법연구회 법무법인 하민 박종운 변호사는 그동안 체감했던 법의 부족한 부분은 법의 개정을 통해 메꿔야 할 때라고 전했다.

먼저 그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총칙 자체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 제1장 제1조 목적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다’로 직접 차별에 한정돼 있다. 이에 ‘장애인에 대한 차별’ 또는 ‘차별받은 장애인’으로 차별 일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장애인법연구회 법무법인 하민 박종운 변호사.
▲ 장애인법연구회 법무법인 하민 박종운 변호사.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를 ‘의료’ 측면으로만 제한한다. 법 제2조를 보면 ‘장애라 함은 신체, 정신 손상 또는 기능 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정의는 장애를 손상중심, 의료적인 모델로 다루는 것으로 장애인의 사회생활 제약을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받아 왔다.

이에 개정을 통해 ‘장애라 함은 다양한 장벽과의 상호작용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동등한 기초 위에서 완전하고 효과적인 사회 참여를 저해하는 신체적 기능, 정신적 능력, 심적 건강에 있어 제한을 초래하는 상태’라고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차별로 정의되는 행위에 ‘괴롭힘 등’이 빠진 것도 문제다.

법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는  ‘직접차별, 간접차별, 정당한 편의 제공 거부 등이다. 괴롭힘은 차별 행위에서 빠져 있다(해석상 충분히 다툼의 여지가 있다). 이에 박변호사는 차별행위에 ‘장애인, 장애인 관련자에 대해 이법에서 정하는 괴롭힘 등의 행위를 하는 경우’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성연 사무국장이 지적했던 낮은 인용률에 대해서 박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벌칙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장애인차별금지법 제6장의 벌칙에 관한 규정은 ‘차별행위를 행하고 그 행위가 악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악의적이라 함은 차별의 고의성‧지속성‧반복성‧피해자에 대한 보복성‧차별 피해의 내용과 규모를 ‘전부’ 고려해 처벌 여부를 판단한다’고 명시돼있다.

박 변호사는 “시정명령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 차별을 당해도 위 4가지 사유와 함께 피해 정도, 공익에 미치는 중대성까지 고려하는 것은 지나치다. 이 조항을 삭제해야 된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차별 피해를 당한 개인이 자신이 받은 피해에 대해 구제를 받기가 어려운 실정(법원 접근성, 절차의 어려움 등)이므로 장애인 권익증진을 위한 단체가 대신해 법원에 개별 피해를 당한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청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보면, 어떤 법령은 잘되고 있지만, 편의증진법 같이 어떤 법령은 시행령이 정체되고, 시대의 요구에 따라가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체 법률 체제가 작동을 못하기도 한다. 당사자나 인권단체들의 욕구는 꾸준히 높아지는데 법 해석, 실현 권고, 법원 구제조치는 당사자의 의식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인권 옹호적인 태도나 사회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토론자들도 한목소리로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에 의견을 보탰다. 특히 차별을 가한 가해자에 대한 벌칙이 지나치게 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강력한 손해배상제가 도입되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문희 사무총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필요하다. 이는 피해구제를 원하는 사람한테 적정한 피해보상과 차별행위자의 경각심을 일으키는데 굉장히 중요하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철웅 교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신체적 장애인 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 정신 장애인 모두를 아우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뇌병변 장애인에 대한 많은 재원과 관심을 쏟도록 하는 것이 법 개정의 핵심.”이라며 “특히 정신병원, 요양시설, 거주시설 등에서 일체의 자유구속 조치는 장애인의 신체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임을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규정해야 한다. 이를 제한하는 일체의 조치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하며, 사법 심사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임은 물론, 개정안이 수만명의 강제입원환자들의 인권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과연 장애인을 위한 법이라 할 수 없다.”고 전했다.

한편 인권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10년을 맞아 오는 7일 대전을 시작으로 5개 지역에서 순회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인권위는 지역별 순회 토론회를 통해 법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향후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 권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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