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를 통해 살펴 본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빛과 그림자’
판례를 통해 살펴 본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빛과 그림자’
  • 황현희 기자
  • 승인 2017.04.19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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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10년, 유의미한 판례 있지만 낮은 법 적용률은 아쉬워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인차별시정기구로서 제 역할 해줘야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지난 2008년 제정 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법 제정 이후 10년 동안 장애인 인권과 권리에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장애인 인권 향상’, ‘권리 증진’ 등을 내세우며 처음으로 ‘사회 약자의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기 위해 만든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하지만 제정 이후 10년 내내 ‘실효성’ 측면에서 많은 사람들을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법으로써 역할을 전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여전히 주춤주춤 하는 법이 강력한 동력을 얻기 위해 조금은 다른 방법이 필요해 보인다.

이에 웰페어 뉴스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10년을 맞아 그동안 의미 있었던 판례들을 살펴보고, 법의 아쉬운 점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장애와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을 만나봤다.

장애인 권리를 ‘법’으로써 보장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명시한 차별구제기구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법무부장관과 법원이다. 인권위는 피해자 등의 진정을 받아 시정권고를 내리고, 법무부장관은 시정명령을 내린다. 법원은 차별행위에 대해 임시조치를 명할 수 있고, 차별행위의 중지, 임금 등 근로조건의 개선, 그 시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 등의 판결을 할 수 있다.

세 기관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여러 유의미한 판례를 남겼다.

지난 2014년 7월 전라북도 군산에 위치한 한 대학교 교직원이 장애를 이유로 승진에서 차별을 받았다며 제기한 차별구제청구 소송에, 법원은 대학이 적극적 구제조치를 명령했다.

법원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8조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따라 차별 행위의 중지, 임금 등 근로조건의 개선, 그 시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 등의 판결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을 명령 근거로 삼았다.

 이 판례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명시한 장애인 차별을 적극적으로 바로 잡는 첫 번째 소송이다.

김 변호사는 해당 판결에 대해 법 제정 이후 한번도 적용되지 않았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8조 권리구제조치 조항을 적용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그동안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제48조 조항 ‘적극적 구제조치’가 처음 적용된 것으로, 굉장히 의미있는 판례.”라며 “법원이 직접적으로 해당 대학교에 ‘승진을 시켜라’라고 명한 의무이행 소송이다. 법원은 성격상 법 판결에 소극적 역할을 해왔다면, 앞으로 장애인 인권 증진을 위해 법원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되는지 알려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 2011년. 지적장애가 있는 김 모 씨가 종로구에 위치한 ㄱ마트 방화사건의 가해자로 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진술 과정에서 의사소통 조력인이 필요했다.

이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는 재판부에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 제6항 정당한 편의제공을 근거로 ‘지적장애인의 의사소통을 지원할 수 있는 조력인 배치’를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요청을 수용해 형사소송 최초로 의사소통 조력인을 지원했다.

위 판례는 편의제공이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라는 점을 깨닫게 해준 결정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법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의사소통조력 지원은 ‘지원할 수 있다’로 의무사항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후 의사소통조력 지원은 의무로 바뀌었고, 지금은 지적장애인이 형사소송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일 경우 수사기관에서 조력인 지원 요청이 온다. 얼마나 의미있는 발전인가.”라고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지난 2015년 뇌변변 장애가 있는 윤 모 씨는 9급 세무회계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면서 인사혁신처에 개별 고사실과 계산과정에서의 대필지원을 요청했다. 인사혁신처는 윤 씨의 요청을 거절했고, 윤 씨는 해당 사건을 인권위에 진정됐다.

인권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규정된 정당한 편의제공을 근거로 인사혁신처에 계산과정 대필지원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면서 처음으로 공무원 시험에 계산과정 대필 지원 사례를 남겼다.

▲ 지난 2008년 장애계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해 삭발 투쟁을 하는 등 다양한 투쟁을 전개했다. 웰페어뉴스 DB
▲ 지난 2008년 장애계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해 삭발 투쟁을 하는 등 다양한 투쟁을 전개했다. 웰페어뉴스 DB

김 사무국장은 “정당한 편의제공은 어떤 측면에서는 다소 모호할 수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장애인 당사자들이 정당하지 못한 편의로 느끼는 차별을 인권위에 진정하고 인권위는 이를 인용할 때 정당한 편의는 영역을 점차 확장하게 된다. 처음에는 답안 대필만 가능했지만, 지금은 계산 과정 대필까지 가능해졌다. 얼마나 큰 변화인가.”라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정당한 편의제공에 기여한 바를 설명했다.

인권위와 수사기관은 장애차별과 관련한 사건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적용해 당사자들의 인권 증진과 편의제공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턱없이 적은 판례 수다.

인권위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4월~2016년 12월 까지 장애차별 진정 건수는 1만77건이다. 이 중 383건만 인용처리 됐고, 기각이 1,530건, 각하 5,408건이다. 진정의 절반 이상이 각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법원 판결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적용이 신통치 않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법원이 장애차별에 대한 적극적 구제조치 결정은 단 세 건에 그친다. 법무부 역시 지난 10년 동안 시정 명령을 내린 판례는 단 두 건에 불과하다.

인권위는 장애감수성을 가져야하는 ‘장애인차별시정기구’다

▲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 된 이후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 걸린 현수막. 웰페어뉴스 DB
▲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 된 이후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 걸린 현수막. 웰페어뉴스 DB

장애계는 인권위, 법원, 법무부 모두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며, 특히 인권 증진과 권리 구제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하는 인권위의 낮은 인용률을 질타했다.

인권위는 법에서 규정한 장애인차별시정기구지만, 낮은 장애감수성과 ‘인권’이 아닌 ‘법리적’ 판단으로 진정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것.

장애인고용공단에 수화통역사가 배치돼 있지 않아 청각장애인이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수화통역사 미배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정당한 편의제공에 위반되는 행위라며 인권위에 진정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구체적으로 피해를 본 당사자가 없다’는 이유로 해당 진정을 기각했다.

김 사무국장은 “제도, 지원 체제가 부족하면 근본적으로 차별은 예정돼있는 일이다. 꼭 문제가 발생해야만 권고하고 시정하는 수동적인 자세는 옳지 않다. 차별을 방지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인권위가 적극적 조치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 사례 뿐만 아니라 인권위가 기각한 장애차별 사건은 수없이 많고 기각 사유 또한 다양하다. ‘피해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적법한 행위였다(한 공단 직원이 탈시설한 당사자의 등급 신청 조사를 위해 시설 관리인에게 시설에서 생활을 물어본 진정사건에 대해)’ 등이 대표 사례다.

김 사무국장은 “한 인권위 관계자가 우리에게 인권위는 법원처럼 ‘공정성’을 늘 염두해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권위라면 약자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다만, 가해자에 대해 억울하지 않도록 사실관계만 명확히 판단하면 된다. 그것이 인권위의 공정성이다. 앞으로도 인권위가 법리적인 잣대로만 사건을 바라본다면, 인권위가 과연 장애인차별시정기구로서 적합한 기관인가를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인권위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인권위의 역할 변화와 더불어 법 개정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제1장 총칙, 제2장 차별금지, 제3장 장애여성·장애아동 등, 제4장 장애인차별시정기구·권리구제 등 제5장 손해배상, 입증책임 등, 제6장 벌칙의 순서로 총 6개장 50개 조문으로 구성됐다.

법 총칙에서 규정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목적은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 받은 사람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이다.

법에 따라 차별을 받은 피해자와 차별을 가한 가해자를 규정하고 가해자에게는 적법한 조치를 피해자에게는 권리 구제를 해줘야 하는데, 문제는 법이 규정하는 ‘차별행위’의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실제 장애인 인권 증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법 제6장 제49조 벌칙은 차별행위 판단 기준으로 ‘행위가 악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란 전제를 달았다.

이어 법은 ‘악의적’ 기준을 차별의 고의성, 차별의 지속성·반복성, 차별 피해자에 대한 보복성, 차별 피해의 내용·규모를 전부 고려해 판단한다.

법에 따라 모욕적 언행(지속성·반복성 없음), 범인을 상대로 한 모욕(피해 내용 추측 어려움) 등 위 요건 중 하나라도 성립이 안되면 차별행위가 부정된다.

김 변호사는 “내가 차별을 받았다고 가정하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 해도, 악의적 판단기준에 위 고려사항을 전부 고려한다면 가해자는 ‘혐의 없음’ 판결 날 것이 불보듯 뻔하다. 뻔한 싸움에 누가 소송을 제기하겠나. 차별을 당했지만, ‘차별행위’ 자체를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법원에 진입하는 벽 자체가 높아져 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되돌아본 10년, 앞으로의 10년?!

▲ (왼쪽부터)김예원 변호사, 김성연 사무국장
▲ (왼쪽부터)장애 권익 옹호 관련 다양한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는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 차별금지법 위반 사건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을 하고 있는 김성연 사무국장.

법 제정 10년 동안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주춤댔던 법은 앞으로의 10년, 100년을 위해 날갯짓을 준비 중이다.

일각에서는 ‘식물입법’이라며 비판을 받기도 하고, 당사자 조차도 법이 일상생활에서 그들의 권리를 증진시켰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답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제정 자체로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사회에 던지며, 차별을 차별이라 말할 수 있고, 권리를 구제해 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었던 기반이 바로 법이기 때문이다.

김 사무국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은 포괄적으로 차별 금지를 선언하고 있다. 이전에는 어떤 대응도 못하고 그저 차별을 당했다면, 법으로 인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앞으로는 지난 10년 보다는 한단계 넘어서서 확실한 권리 구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인권위의 인용률이 높은 사건은 대부분 ‘정당한 편의 제공’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권리 구제를 목표로 하는 법인 만큼, 앞으로는 개인의 인권, 권리 측면에서 무게감 있는 판결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