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없는 투표소에 제각각인 관계자의 안내… ‘역시나’ 여전한 투표소 접근성

오는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4일~5일까지 이틀간의 사전투표가 시작됐다.

사전투표는 선거 당일 투표 할 수 없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마련된 것으로, 해당 기간에 신분증만 있으면 전국 어디서나 사전 신고 없이 투표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승강기가 설치돼있지 않은 사전투표소가 많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등 이동약자의 투표소 접근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서울 시내 사전투표소로 지정된 424곳 중 40% 정도인 160곳은 2층 이상 또는 지하로 계단을 이용해야 하지만 승강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휠체어 이용인은 ‘전국 어디서나’가 아닌 ‘승강기가 있는 곳’을 찾아 헤매며 투표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3분이면 사전투표 가능? 휠체어 이용인은 140분 걸린다!

▲ 3층에 사전투표소가 마련돼있지만, 승강기가 없어 휠체어 이용인은 투표소장을 갈 수가 없다.
▲ 3층에 사전투표소가 마련돼있지만, 승강기가 없어 휠체어 이용인은 투표소장을 갈 수가 없다.

사전투표 첫날, 3분이면 끝날 줄 알았던 황인현 씨의 투표는 승강기 있는 사전투표소를 찾아 3곳을 돌아다닌 끝에 140분 만에 완성됐다.

황 씨가 첫번째로 방문한 사전투표소는 동네의 주민센터에서 그를 맞이한 것은 계단이었다.

이곳은 3층에 투표소가 마련돼있었지만, 승강기가 없어 휠체어 이용인은 투표소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임시기표대가 마련됐지만, 황 씨는 “나도 비장애인처럼 내가 직접 지문인식하고,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하고 싶다. 내가 직접 투표함에 내 투표용지를 넣고 싶다.”고 임시기표대 이용을 거절했다.

그러자 투표소 관계자는 “임시 기표대 이용을 꺼리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우리 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이에 황 씨는 1층에 투표소가 있거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투표소로 이동하고 싶다고 의사를 전달했고, 투표소 관계자는 ‘별도의 장애인전용차량은 없다’며 장애인콜택시 이용을 권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차량지원을 계획했다고 밝힌바 있지만, 해당 투표소 관계자는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황 씨는 전용차량을 불러줄 것을 요청했지만, 투표소 관계자는 ‘본인이 택시비를 직접 지급할 테니 콜택시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거듭 같은 말만 반복했다.

시간이 계속해서 지연되자 결국 황 씨는 첫번째 사전투표소에서 돌아나왔다.

하지만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연휴가 시작되는 전날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대기시간은 최소 1시간이상으로 장애인콜택시 이용도 하늘에 별따기인 상황이었다.

▲ 황인현 씨가 찾아간 두번째 사전투표소. 지하 1층에 투표소장이 마련돼있지만, 역시 승강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 황인현 씨가 찾아간 두번째 사전투표소. 지하 1층에 투표소장이 마련돼있지만, 역시 승강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황 씨는 고심 끝에 버스를 이용해 이동할 수 있는 다른 사전투표소를 찾아나섰다. 다만 저상버스를 기다려 탑승하고 이동하는 시간만 해도 50분이 소비됐다.

그렇게 두번째 사전투표소를 찾아간 황 씨는 다시 좌절했다. 투표소는 지하 1층, 이 곳 역시 계단 뿐이었다.

첫 번째 투표소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투표소 역시 관계자는 임시 기표대 이용을 권했으나, 황 씨는 거듭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관계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마련한 장애인전용차량이 있다. 차량을 제공할 테니, 엘리베이터가 있는 다른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권유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해당 투표소 관계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계획해 놓았던 지침을 숙지하고 있었다.

대기한 지 30여 분, 장애인전용차량이 도착했다. 투표 관련 지원을 하고 있는 차량 기사와 관계자가 안내조끼를 입고 도움을 줬다.

이어 도착한 세번째 사전투표소에서 비로소 황 씨의 '소중한 권리'가 마무리 됐다.

비장애인이라면 3분 안에 끝났을 사전투표, 황 씨는 휠체어를 이용한다는 이유만으로 140분 이상이 걸렸다.

두시간이 넘게 방황하며 지쳐버린 황 씨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1표가 주어지는 선거지만, 승강기가 있는 곳을 일일히 찾아야 하는 장애인에게는 여전히 험난한 과정.”이라는 씁씁한 후기를 남기고 돌아섰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원한 장애인전용차량을 타고 엘리베이터가 마련된 다른 사전투표소로 이동하고 있는 황인현 씨.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원한 장애인전용차량을 타고 엘리베이터가 마련된 다른 사전투표소로 이동하고 있는 황인현 씨.
▲ 140분이 지나서야, 투표함에 본인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넣을 수 있었던 황인현 씨.
▲ 140분이 지나서야, 투표함에 본인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넣을 수 있었던 황인현 씨.

승강기 없는 사전투표소… 대응도 '제각각'인 투표소 반응도 문제

장애인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은 사전투표소 문제점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국회의원선거, 대통령 선거 등 선거철이 될 때마다 장애인을 비롯한 이동약자의 투표소 접근성은 문제가 돼왔다.

이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휠체어 이용인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사전투표소를 찾을 경우 1층에 임시 기표대를 마련해 투표를 돕거나, 이동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그러나 장애계는 임시 기표대도 이동지원도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승규 활동가는 “장애인을 위해 따로 임시 기표대를 마련했지만, 선거 관계자들은 ‘왜 휠체어 이용인은 비장애인과 분리된 공간에서 따로 투표를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있다.”며 “장애인도 직접 투표소에 가서 본인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을 권리가 있다. 근본적으로 장애인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투표함에 투표용지조차 넣지 못하는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특히 사전투표소마다 휠체어 이용인을 대하는 태도 또한 일관되지 않아 ‘과연 장애인을 위한 지침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의견도 나왔다.

▲ 투표소 관계자와 투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황인현 씨.
▲ 투표소 관계자와 투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황인현 씨.

임시 기표대 투표를 거부할 경우 장애인전용차량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황 씨가 방문했던 첫 번째 사전투표소 관계자는 장애인전용차량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오히려 ‘사비를 줄테니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해달라’는 다소 황당한 말을 내뱉었다. 반면 두 번째 투표소의 경우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지침대로 안내해 이동을 지원했다.

가장 중요한 교육이 충분하지 못한 현실이 확인된 것.

박승규 활동가는 “접근성 자체도 문제지만 투표소 관계자들의 태도도 중요한 문제.”라며 “첫번째와 두 번째 투표소의 반응은 너무 달랐다. 이는 장애인 유권자 편의제공 관련 지침의 전달 또는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이어 “심지어 일부 투표소에서는 ‘휠체어를 들어 운반해주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게 하는 경우도 있다.”며 “정당한 편의도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주의도 없는 것이 지금의 투표소 접근성.”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사전투표와 오는 9일 대통령 선거일 동안 투표소에서 차별 받은 사례를 제보 받고 있다. 이후 사례를 모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투표소 개선을 요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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