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4지방선거 사전투표 첫 실시 이후 참정권 보장 ‘아직도 미흡’
장애계 “1층 배치, 수어통역사, 쉬운 안내, 관계자 인권 교육, 시설 거주인 참정권 보장 등” 요구

‘승강기도 없는 건물 지하나 2층·3층에 설치된 투표소의 계단만 바라보고 발길을 돌리고.

승강기가 없어서 계단만 바라보니 짐짝도 아닌 장애인과 휠체어를 들어서 올려주겠다고 직원들이 달려들고.

리프트가 있어서 다행이다 했더니 무거워서 전동휠체어는 사용할 수 없다하고.

승강기가 없으니 1층에 기표소를 만들어놓고, 내 신분증과 기표용지를 직원에게 그냥 맡기라고 하고.

승강기가 없어서 투표할 수 없는 경우 차량이동지원을 해준다는데 안내해주는 사람도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도 없고.

수어통역사가 배치되어 있다고 하지만 선관위 홈페이지에서는 어느 투표소에 수어통역사가 있는 지 확인할 수도 없고.

투표소에서 수어통역사가 누구인지 찾을 수고 없고.

장애인의 기표를 도와주는 보조용구에 대해서는 누구하나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어디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선거과정에 대해서 누구한테 물어봐야할지 알 수도 없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하고.

선거안내원들은 장애를 전혀 몰라서 안내 같은 것 해주기도 어렵고.

투표하러 온 장애인에게 갑자기 사전투표 진행일지에 기록해야하니 장애등급과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면서 기록하고(개인정보).

장애인당사자에게 묻지도 않고 투표용지를 빼앗듯 가져가 투표함에 넣어버리고.

선거참관인으로 참여하면 투표함이 최종 이동하는 과정에 함께 이동해야하는데, 참관인인 장애인에게 차량이 없으니 함께 갈 수 없다고 미안하다고, 다른 비장애인들만 데리고 가고.’

 

 

오는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난 4일부터 오늘까지 사전투표가 진행됐다.

사전투표는 2014년 6.4지방선거에서 처음 실시된 것으로, 선거 당일 투표가 어려운 선거인이 별도의 부재자신고 없이 사전투표 기간 동안 전국 어느 사전투표소에서나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따라서 사전투표소는 사전투표 기간 동안 ‘누구나’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국민의 권리마저 박탈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17대선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대선연대)에 따르면 2017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소 전체 3,516개소 가운데, 장애가 있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사전투표소는 18.3%(644개소)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대구광역시(41%), 서울특별시(37.7%), 경상남도(37.6%)가 가장 접근성이 떨어졌다.

이에 대선연대는 5일 오후 2시 총리공관과 가까운 삼청동주민센터를 찾아 ‘장애인참정권 보장 촉구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상임대표.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상임대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삼청동주민센터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사전투표소 가운데 하나다. 행여나 투표권을 행사하는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봐 많이 고민하면서 이 자리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오자마자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공직선거법을 들이밀며 ‘즉각 형사조치 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왜 서있나. 선관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처음 사전투표가 이뤄진 이후 3년간 개선할 것을 이야기 했지만, 아직도 장애가 있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 있다.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규탄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정훈 정책국장은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목소리를 사회에 알릴 수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의 현안, 아픔, 고통 등에 대해 어떤 정치인이 알고 반영하도록 하는 게 대의제 민주주의의 꽃이다. 하지만 원천적으로 봉쇄된 현실.”이라며 “우리는 이에 항의하러 왔다. 근본적으로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공직선거법을 들이대며) 다른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이야기 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의 권리는 휴지조각이고 쓰레기인가? 보장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분노할 수밖에 없다.”고 질타했다.

그 역시 선관위의 태도를 비판하며 “선관위는 접근할 수 있는 사전투표소를 알아보라고 했다. 사전투표소는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곳이다. 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알아보고 가야 하는가. 이런 차별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오후 2시 30분경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삼청동주민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1층 임시기표소가 아닌 2층 사전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하기를 원했지만, 승강기가 없어 접근할 수 없었다.

▲ (왼쪽) 5일 삼청동주민센터의 풍경. 많은 사람들이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사전투표소를 찾은 모습. (오른쪽) 삼청동주민센터 2층 앞 계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정훈 정책국장이 ‘우리를 즈려밟고 투표를 하십시오-중앙선관위는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목에 걸고 앉았다. 그는 전동휠체어에서 내려 2층 사전투표소 앞까지 기어 올라가며 ‘참정권을 보장 받지 못하는 장애인의 현실’을 알렸다.
▲ (왼쪽) 5일 삼청동주민센터의 풍경. 많은 사람들이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사전투표소를 찾은 모습. (오른쪽) 삼청동주민센터 2층 앞 계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정훈 정책국장이 ‘우리를 즈려밟고 투표를 하십시오-중앙선관위는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목에 걸고 앉았다. 그는 전동휠체어에서 내려 2층 사전투표소 앞까지 기어 올라가며 ‘참정권을 보장 받지 못하는 장애인의 현실’을 알렸다.

이 정책국장은 목에 ‘우리를 즈려밟고 투표를 하십시오-중앙선관위는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걸었다. 그는 전동휠체어에서 내려 2층 사전투표소 앞까지 기어 올라가며 ‘참정권을 보장 받지 못하는 장애인의 현실’을 알렸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나는 임시기표소가 아닌 투표소에서 투표하기를 원한다’고 밝혔지만, 선관위 관계자와 직원 등은 ‘1층 임시기표소를 이용하라’며 별다른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다.

▲ 오후 4시경,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결국 휠체어와 함께 다른 사람 손에 들려 옮겨지고 있다. ⓒ2017대선장애인차별철폐연대
▲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다른 사람 손에 들려 옮겨지고 있다. ⓒ2017대선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에 김성연 사무국장이 한 선관위 관계자에게 ‘승강기가 없다면 처음부터 1층에 투표소를 마련하면 된다’고 했지만, 해당 선관위 관계자는 ‘차량 지원도 해드리기 때문에 접근이 가능한 곳을 찾아 투표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전투표소에 들어오고 나가는 사이에도 박 상임공동대표의 투표권 행사는 계속 방치됐다.

오후 4시경이 돼서야 중앙선관위, 종로구선관위, 삼청동 투표소 관리 담당자 등이 한자리에 모였고, 결국 관계자와 직원 등이 박 상임공동대표를 휠체어와 함께 들어 올려 사전투표소까지 옮겼다.

대선연대는 중앙선관위 관계자 등에게 오는 8일 중앙선관위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아래와 같은 요구안을 전달하고, 남은 대통령 선거일까지 참정권 보장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1. 모든 투표소의 장애인 접근성을 확보하라.

-모든 투표소는 1층 배치를 원칙으로 한다.

-1층 이상의 배치시에는 반드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있어야 한다.

-출입구에는 장애인이 안전하게 출입할 수 있는 경사로가 설치되어있어야 한다

-출입구와 투표소 내부에 점자유도블럭이 설치되어있어야 한다.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안내판(그림, 사진 등)이 설치되어있어야 한다.

 

2. 투표과정에서의 모든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라.

-청각장애인의 투표과정을 지원할 수 있는 수어통역사가 배치되어야 한다.

-기표대 높낮이 조절, 기표소 내 양손장애인을 위한 고정핀, 휠체어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기표소의 폭 확보, 휠체어의 출입을 고려한 기표소 설치, 출입문의 크기 등 모든 정당한 편의가 제공되어야 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투표용지와 확대경이 준비되어있어야 한다.

-발달장애인, 노약자 등 글씨를 읽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그림 등 알기쉬운 방식의 안내판이 설치되어야 한다.

-장애인의 투표권 행사를 위한 차량이동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

 

3. 선거사무원 등 관련자들의 장애인지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라

-선거사무원 등 투표소에 관련자들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장애인 인권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시행하여야 한다

-장애유형별 안내를 위한 교육을 사전에 반드시 진행하여햐 한다

 

4. 모든 투표과정에서 장애인당사자의 직접 참여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라

-모든 투표참여 과정에서 장애인당사자는 모든 과정에 스스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정당한 편의는 이러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도록 지원되어야한다.

-선거관련자들의 장애인에 대한 자기결정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한 지침을 제시하여야 한다.

 

5. 장애인거주시설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라.

-장애인거주시설 장애인도 지역사회안에서 평등하게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거소투표는 반드시 거동이 매우 불편한 당사자 중 본인의 선택에 의해서 참여하도록 해야한다.

-선관위는 거소투표 대상자가 아님에도(이동이 가능한 경우) 거소투표를 하는 경우가 없도록 철저하게 관리감독해야한다.

-선관위는 시설장애인도 한사람의 유권자임을 인식하고, 공정하게 진행되는 지역투표소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시설내 거소투표가 투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선관위의 철저한 관리감독과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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