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권리 지원센터 설립 위한 1인 시위, 마포우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조재현 소장 인터뷰

▲ 마포우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조재현 소장이 서울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 마포우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조재현 소장이 서울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를 맺기 위한 소통. 비장애인들에게 너무나 쉽고 당연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지원을 촉구하고 나섰다.

의사소통 지원을 요구하는 이들은 뇌병변장애인과 발달장애인 등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로, 이렇다 할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은 현실에 막혀 의사를 표현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제약이 있었다.

이와 관련한 지원을 요구해 온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이하 협회)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에 이어 1만 명 서명운동과 함께 무기한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장애인권리증진계획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서울시 5개 권역에 의사소통권리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를 만든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예산을 탓하고, 사업계획에서 지원센터 설립 근거가 없다며 이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는 것이 협회의 지적이다.

이에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김진철 서울시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서울특별시 의사소통권리 지원센터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의 조속한 통과와 집행을 촉구하고 있는 것.

지난 25일 서울시청 앞. 이날 1인 시위에 나선 마포우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센터) 조재현 소장 역시 의사소통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 당사자로,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AAC 만나고 삶 바뀌어… 당당한 목소리 내기 위해 의사소통 권리보장 요구

센터 조재현 소장은 어릴 때 심한 열병을 앓은 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뇌병변 장애 판정을 받은 뒤 일상생활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그에게 가장 필요했던 도움 중 하나는 바로 ‘의사소통’이었다. 활동보조인·가족·친구·직장동료를 제외하면 의사표현 또는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립생활을 하는데도 의사소통은 큰 걸림돌이 됐다.

▲ 마포우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조재현 소장
▲ 마포우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조재현 소장

그런 그의 삶에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보완대체의사소통기기(이하 AAC. 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와의 만남이다.

조 소장은 “우연한 계기로 한 단체에서 근무하면서 AAC를 접하게 됐고, 그 뒤로 삶이 크게 바뀌었다.”며 “처음 사람을 만나도 인사를 나누거나 활동보조인에게 식사나 화장실 등 도움을 요청하는 말,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구체적인 업무 등의 내용들을 모두 AAC에 입력하고 전달함으로써 큰 불편없이 대화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이어 “내 의사나 주장을 전달해야 함에도 장애를 이유로 억누르고 말하지 못했던 때와는 다르게 이제는 당당히 내 의견을 피력하고 필요한 내용을 조목조목 말할 수 있게 됐다. 내게 있어 AAC는 내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정의하며 “이렇게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까지 1인 시위를 하는 이유가 바로 모든 뇌병변·발달장애인이 나처럼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의사소통권리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다.”라고 강조했다.

장애 특성 반영한 의사소통지원센터 필요…

정부·기관·지역사회 긴밀한 협조 통해 당사자 중심의 지원체계 구축해야

AAC는 개개인에 따라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보완·대체하는 모든 방법·체계를 뜻하기 때문에 의사소통기기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글자판 등의 도구도 모두 포함된다.

조 소장에 따르면 현재 몇몇 지역에서 의사소통보조기기 보급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특정 대상에게 한정된 형태로 AAC를 단순히 보급하는 차원에 그치고 있다.

이에 중증 장애인 의사소통권리가 보장되려면 더 많은 사람이 AAC를 쉽게 접하고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는 문제가 시급하다는 것.

조 소장은 “사회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중증 장애인들에게 AAC 구입비·보장구 설치비·교육 참가비 등은 큰 부담.”이라며 “관련 콘텐츠 시장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모든 것을 찾아다니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AAC 지원을 받는다 해도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인터넷 검색 등으로 전락하기 일쑤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결국 집에 모셔두는 경우도 많다.”며 “언어장애인 특성상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장애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개별 지원을 통해 각자에게 맞는 AAC를 지원하고 교육할 수 있는 지원센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지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으로, 지원센터가 이런 역할을 해 장애인의 사회 활동을 촉진시켜주기 바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원센터가 설립되면 AAC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의 초기상담을 통해 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개개인에 맞는 AAC 적용과 활용방법 교육 등을 통해 주변기기 지원까지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 보완대체의사소통(AAC) 개별맞춤 과정 ⓒ서울시의사소통권리지원센터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보완대체의사소통(AAC) 개별맞춤 과정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서울시의사소통권리지원센터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조 소장은 “표준화된 지원체계를 마련해 놓고 공급자인 전문가 그룹 입장에서 장애인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일방적으로 고민하는 게 아니라 실제 수요자인 당사자 중심의 의사소통 권리보장 차원에서 접근해 개별적인 지원방법과 자원 연계가 필요하다.”며 “전문가와 당사자, 이를 매개해주는 지원센터와 주변 환경이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야 제대로 된 지원체계가 구축됐다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뇌병변·발달장애인들이 지원센터를 통해 의사소통권리를 보장받더라도,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인 자립생활을 할 수 있으려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환경도 구축돼야 한다.

조 소장은 언어장애를 권리에 기반한 단순한 의사소통 지원을 넘어 지역사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확보와 사회편견·차별 제거를 목적으로 하는 훌륭한 예로 캐나다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캐나다 비영리단체인 CDAC는 주정부 차원의 활동성과를 바탕으로 연방정부에 언어장애인의 지역사회 접근에 관한 법률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며 “더 놀라운 점은 AAC를 사용해 쇼핑도 하고, 기차표도 예매할 수 있는 무장애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언어장애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지역사회에서 소통할 수 있는 장이 열려야 한다. 그 첫걸음을 위해 반드시 지원센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가 ‘서울특별시 의사소통권리 지원센터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의 조속한 통과와 집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가 ‘서울특별시 의사소통권리 지원센터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의 조속한 통과와 집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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