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탕감 위한 사회봉사, 장애인은 할 수 없다?
벌금 탕감 위한 사회봉사, 장애인은 할 수 없다?
  • 황현희 기자
  • 승인 2017.05.3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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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지방법원, 장애인 활동가의 사회봉사 허가 신청에 ‘장애’를 이유로 기각
신청 기각은 장애인차별금지법·벌금미납자법에 어긋나는 행위

벌금형을 받은 장애계 단체 활동가들이 재정상 어려움으로 벌금 대신 사회 봉사를 하겠다고 법원에 신청했지만, 법원은 ‘장애인은 사회봉사 할 수 없다’고 당사자 신청을 기각한 일이 벌어졌다. 이들은 벌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꼼짝 없이 노역장 유치를 해야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15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의정부시는 지자체에서 지원하고 있는 활동보조 5시간의 예산을 삭감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의정부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의정부 장차연)은 의정부시장을 찾아갔고, 시장은 면담을 통해 추경예산으로 활동보조 5시간을 원상복귀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그 해 의정부시 추경예산에 활동보조 5시간 예산은 포함되지 않았다. 의정부 장차연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의정부시장을 찾아가 다시 한번 면담을 요청했다.

▲ 90만 원의 벌금형을 받은 의정부자립생활센터 이경호 소장.
▲ 90만 원의 벌금형을 받은 의정부자립생활센터 이경호 소장.

시장은 당시 면담을 거절했고, 활동가들은 시장을 만나기 위해 이틀동안 시청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했다. 시 측은 당시 활동가 3명을 검찰에 고소했고, 이들은 공무집행방해로 각각 280만 원, 190만 원, 9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문제는 활동가들이 재정상 어려움으로 큰 액수의 벌금을 내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국 활동가들은 사회봉사를 통해 벌금을 탕감받기 위해 법원에 사회봉사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의정부지방법원 담당재판부는 ‘이 사건의 사회봉사허가 청구를 기각한다’는 결정문을 지난 11일 당사자들에게 보냈다. 결국 사회봉사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벌금형을 받은 당사자인 의정부자립생활센터 이경호 소장은 “벌금 대신 받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던 중, 사회봉사 제도를 찾았다. 나도 사회봉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신청했더니, 법원은 아무런 말도 없이,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불가 통지문을 보냈다. 최소한 내가 왜 안되는지, 내가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알아는 봐야 하지 않나. 오직 장애인이니깐 사회봉사가 안된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의정부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계 단체는 30일 국가인권위원회앞에서 ‘법원의 사회봉사신청기각결정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를 이유로 사회봉사 신청허가를 기각한 법원을 규탄했다.

▲ 의정부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계 단체는 30일 국가인권위원회앞에서 ‘법원의 사회봉사신청기각결정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의정부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계 단체는 30일 국가인권위원회앞에서 ‘법원의 사회봉사신청기각결정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애인의 사회봉사 불허… 명백한 법 위반 행위

장애계에 따르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회 봉사 허가를 기각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 26조는 공공기관 등은 장애인 생명, 신체 또는 재산권 보호를 포함한 자신의 권리를 보호·보장받기 위해 필요한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 제공에 있어 장애인을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벌금 납부가 어려운 비장애인의 경우 상황을 고려해 대체할 수 있는 사회봉사제도를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장애인은 장애가 있다는 사회봉사제도 대상자에서 거절하는 행위는 차별이라는 것이 장애계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벌금 미납자의 사회봉사 집행에 관한 특례법(이하 벌금미납자법)에 따른 사회봉사 허가 요건에도 맞지 않는다. 법원은 사회봉사 허가 청구가 있을 시 벌금 미납자의 경제 능력, 사회봉사 이행에 필요한 신체 능력, 주거의 안정성 등을 고려해 사회봉사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장애계에 따르면 법원은 활동가의 신체 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장애’를 이유로 기각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사회봉사는 사회속에서 봉사활동을 통해 벌금을 탕감받을 수 있는 편익 제도다. 편익 제도에서 조차 장애인은 배제되고 거부됐다.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위반되는 차별행위.”라며 “아울러 벌금미납자법에는 사회봉사 신청자의 신체 능력을 고려한다고 명시됐다. 그러나 해당 법원은 장애인은 무조건 신체 능력이 없다고 판단, 활동가 3명 모두에게 기각 결정을 내렸다. 장애가 있으면 모두 신체 능력이 없는 것인가 묻고 싶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선영 집행위원장은 “장애인들은 신체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며 사회봉사를 거절해놓고서는 100만 원 이상의 벌금을 내라고 말한다. 신체 능력이 없어서 봉사도 못하는데, 어디에서 노동을 하며 돈을 벌 수 있겠는가. 스스로 모순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장애 이해 없는 법원을 꼬집었다.

한편 장애계는 기자회견이 끝난 뒤 의정부 법원 담당 판사 등을 피진정인으로 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