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친구들의 당찬 도전, ‘점자메뉴판 만들기’
‘고3’ 친구들의 당찬 도전, ‘점자메뉴판 만들기’
  • 이명하 기자
  • 승인 2017.06.12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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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로 시작한 공공정책 제안하기 “시각장애인의 권리 함께 찾을래요”
▲ 인화여자고등학교의 (왼쪽부터)신현서, 신승은, 채현아, 이예진 학생이 시각장애인 점자메뉴판 만들기에 나섰다.
▲ 인화여자고등학교의 (왼쪽부터)신현서, 신승은, 채현아, 이예진 학생이 시각장애인 점자메뉴판 만들기에 나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쁘고 힘든 시기로 꼽히는 ‘고등학교 3학년’, 인화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신현서·채현아·이예진·신승은 학생은 시각장애인의 권리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회의 불편한 점’을 찾아보자는 과제를 고민하던 학생들은 ‘점자메뉴판’ 만들기에 주목했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물품에는 제대로 된 점자표시가 돼 있지 않고, 식당에도 점자메뉴판이 없다는 ‘불편한 사실’을 알게 된 열아홉 소녀들.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으로 바꾸기 위한 학생들의 도전은, 작지만 기본이 돼야할 ‘권리’에서 출발했다.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원하는 메뉴를 선택할 수 있을까?”

새 학기가 시작되던 지난 3월, 네 명의 친구들은 ‘공공정책 제안하기’라는 발표과제를 받았다.

발표 주제에 대한 친구들의 고민은 학교를 마친 뒤 향한 떡볶이 집에서 답을 찾았다.

채현아 “떡볶이를 시키고 기다리는데, 벽에 있는 메뉴판이 보였어요. 만약 내가 눈을 감고 메뉴를 골라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의문이 들었고, 시각장애인은 음식을 어떻게 시킬까 궁금해졌어요.”

그들의 궁금증은 ‘점자메뉴판’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의 씨앗이 됐다.

▲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학생들이 당사자들과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신현서 학생
▲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학생들이 당사자들과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신현서 학생

먼저 시각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막막한 그들 삶의 현실을 마주했다.

선택을 위한 점자 표기 또는 정보제공은 커녕 모든 사회 환경에 배려는 없었다.

채현아 “당사자분들에겐 점자메뉴판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많은 제도와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예를 들면 대중교통 이용할 때 정류장에서 몇 번 버스가 오는지 제대로 알기가 어렵고, 버스의 앞문인지 뒷문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고 이야기 해주셨어요.”

신승은 “직접만난 당사자분들은 단순히 점자메뉴판이 생기는 것 자체 뿐 아니라, 이런 활동이 알려지고 인식하게 되면서 시각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응원해 주셨어요.”

당연한 권리로서 사회에 자리 잡아야 할 점자메뉴판 도입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학생들은 학교가 끝나고 지하철역 앞과 학교 앞에서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학생들의 예상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점자메뉴판 도입을 찬성했다. 반면 찬성의 이유는 다소 아쉬웠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학생들의 설문조사를 그저 ‘착한 일’이라고 여겼고, ‘권리’를 찾겠다는 취지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도움’이라는 생각을 먼저 했기 때문이다.

채현아 “제일 속상했던 것은 ‘아~시각장애인 위해서? 좋은 일이네, 그럼 해야지’하는 반응이었어요. 점자메뉴판이 왜 필요한지, 왜 중요한지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동정의 측면에서 점자메뉴판 도입을 찬성한 사람이 많았어요.”

신현서 “장애인 차별 금지법에서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이 동등하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동등한 선택권을 보장 받기 위하여 필요한 서비스의 정보를 제공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합니다. 점자메뉴판 의무화가 권리실현을 돕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 학생들이 학교앞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신현서 학생
▲ 학생들이 학교앞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신현서 학생

큰 변화의 시작을 위한 학생들의 ‘제안’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만든 정책안에는 두 가지 원칙이 포함됐다. 지속가능한 운영과 실제 활용 가능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사실 점자메뉴판을 고민하면서 학생들은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점자메뉴판을 시도한 사례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활성화돼 있지는 않했다. 이유는 ‘점자메뉴판 사업을 추진하던 임원진이 퇴사해서’라는 답변이었다.

▲ 학생들이 발표를 위해 마련한 시각자료.ⓒ신현서 학생
▲ 학생들이 발표를 위해 마련한 시각자료.ⓒ신현서 학생

이에 학생들은 계속해서 이용할 수 없는 제도는 ‘보여주기 식’에 그친다는 것을 느끼고 대형 업체의 점자메뉴판 의무 도입을 기본으로 영세 사업장에서 점자메뉴판을 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안을 마련했다.

여기에 메뉴가 바뀌거나, 훼손됐을 경우도 꼼꼼하게 따져 제작방식에 대해서도 정책안에 명시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만난 서울점자도서관에서는 점자메뉴판 생산에 대한 긍정된 답변을 받았고,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에서도 점자메뉴판 의무화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진심이 담긴 외침에 조금씩 힘이 실리는 것을 경험한 학생들은,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 인식개선과 정책 제안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학교과제로 시작한 정책 제안은 학생들에게 교내 발표대회에서 1등이라는 결과를 안겨줬고, 오는 11월 진행되는 청소년사회참여발표대회에도 참가하게 됐다.

이예진 “발표를 마치고 친구들의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친구들도 저희가 느낀 것을 똑같이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6월 6일 현충일에 부평역에서 서명운동을 진행했어요. 다음 아고라에서도 서명운동을 하고 있고요. 이렇게 사람들에게 열심히 알리다보면 우리가 그랬듯이 사람들에게도 인식의 변화가 생길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