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휴가, 여행인가? 고행인가?’ 아고라
“정부, 여행지 접근성·인식 개선 나서야…소비자로서 적극 여행 즐겨”

▲ 장애계 단체가 '공감 아고라, 여행 속 장애인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 장애계 단체가 '공감 아고라, 여행 속 장애인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여름을 맞아 휴가를 계획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불편한 여행으로 애초에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환경 등으로 인해 여행을 하는 동안 불편·부당함을 겪는 장애당사자들은 ‘여행은 나와 먼 이야기’라고 표현할 만큼 여행을 즐기지 못하고 있다.

실제 지난 2015년 국민여행실태조사에 따르면 87.9%의 국민이 국내여행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반면, 2016년 장애인고용패널조사에서 장애인은 36%가 여행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에 당사자들이 직접 겪은 여행을 공유하고 누구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관심을 촉구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척수장애인협회,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는 지난 13일 ‘장애인의 휴가, 여행인가? 고행인가?’를 주제로 아고라 형식의 토론회를 열고 다양한 여행에 관한 사례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장애 당사자 위한 여행지 정보 부족

아고라에 참여한 사람들은 ▲정보부족 ▲이동 제한 ▲여행 활동 제한 ▲부정적 인식으로 장애인들이 여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여행을 계획하면서 편의시설 등을 확인하기 위한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큰 불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편의시설의 유무, 저상버스 등의 정보가 포함된 여행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전윤선 대표에 따르면 현재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에는 노인·장애인·어린이를 위한 정보가 제공되고 있지만 실제로 도움이 될 만큼 많은 정보가 마련돼 있지 않다.

▲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전윤선 대표가 여행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전윤선 대표가 여행정보가 부족한 현실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제공되는 정보와 다른 환경에 마주해 불편을 겪는 경우도 많다.

전 대표는 “정보를 믿고 편의시설이 있는 숙소에 막상 도착해도 숙소 안 화장실 앞에 턱이 있는 등 당사자에게 유용한 상세한 정보가 없다.”며 “지자체에 직접 전화해서 알아보는 방법도 있지만, 결국 몸으로 부딪쳐 정보를 알아가는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찬우 총장은 “대부분 숙소 화장실에는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직접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좋았던 곳은 메모장에 적어 놓으며 나만의 여행 목록을 만들고 있다.”며 “그나마 실용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모여 만든 홈페이지에서 개개인의 여행 후기를 보는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역마다 저상버스가 얼마나 자주 오는지, 저상버스 이동경로, 장애인콜택시 등 운영 방식이 달라 이동 동선을 계획하는 것도 어렵다.

배를 이용할 경우 배가 선착장에 제대로 붙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배에서 내리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이 총장은 “거제도에서 외도로 가기위한 배를 탔지만 도착해 배에서 내리려고 하니 뱃머리를 넘어 선착장으로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동을 도와달라고 요청할까 고민하다 결국 포기하고 그냥 배에서 일행을 기다렸다.”고 경험을 전했다.

편의시설의 여부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겪게 되는 황당한 상황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참석자들이 경험에서 전하는 문제점이다.

따가운 시선, 차별대우 등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관광객

시설의 불편함 뿐 아니라, 잘못된 인식으로 여행 중 불편한 시설은 이겨내야 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 김이경 운영위원은 자녀와 함께 여행을 다닐 때,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겪는 사람들의 시선을 전했다.

▲ 한국자폐인사랑협회 김이경 운영위원
▲ 한국자폐인사랑협회 김이경 운영위원이 딸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 불편했던 경험을 전하고 있다.

김 운영위원은 “딸이 22살 성인이다. 하지만 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해 함께 화장실에 들어가게 되면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봐 불편하다.”며 “한번은 들고 있는 옷을 활용해 일부러 큰소리로 옷 갈아입자고 외치며 화장실을 이용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김현수 사진작가는 “제주도에서 말타기 체험을 하려는데 운영자가 시각장애가 있어서 말에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말타는 것을 제한했다.”며 “말을 탑승하는 데 안전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 체험을 거부당해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중구길벗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한동국 사무국장 역시 “여행을 할 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식당에서는 내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보고 입장을 거부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경험을 전했다.

대다수의 참가자들은 관광객, 관광지 운영 관계자 등의 장애 인식 부족이 여행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여행 “정부, 사회, 장애당사자 모두 변화 필요”

아고라에 참여한 당사자들은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 △관광지 기본 편의시설 마련, 인식개선 등 국가 지원 △수요자로서 관광서비스 적극 이용으로 입지 다지기 등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전윤선 대표는 “문화바우처와 여행바우처가 있었다. 두 가지를 합치면 약 15만 원 정도 활용이 가능했지만 지난 정부가 이 두 가지를 통일해 6만 원으로 줄였다. 이 문화바우처로 책을 구매하거나 영화를 보는 것 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 장애인문화연구소 홍서윤 소장이
▲ 장애인문화연구소 홍서윤 소장이 문화바우처가 확대된다면 장애 당사자들이 여행을 즐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장애인문화연구소 홍서윤 소장 역시 “정부가 관광을 권리로 인정해 문화바우처의 지원을 늘리게 된다면 이를 활용해 활동지원·숙박·이동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의견을 더했다.

또한, 김현수 사진작가는 중국여행 경험으로 유명 관광지를 대상으로 숙박·음식·관광 시설의 접근성을 확보하는데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사진작가는 “중국의 경우 지역마다 발전진행 속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 인도에 턱이 아예 없다. 탈선 방지 구조물이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고 인도에는 오로지 점자블록만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는 중국 정부에서 국가 법으로 정한 사항. 상점 앞에 점자블록이 없거나 간판이 세워져 있으면 우리나라 돈으로 50만 원 상당의 벌금을 낸다. 그러나 상점 앞에 점자블록이 있으면 나라에서 세금을 깎아주는 등 지원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각 지역의 장애인 단체와 지자체가 협력해 해당 지역의 여행 정보를 구성하는 방법도 제시됐다.

이찬우 사무총장은 정부의 지원으로 관광 환경이 조성된다면 소비자로서 여행을 적극 즐기는 태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사무총장은 “여행도 산업이다. 관광지의 운영자들은 수익이 되는 곳에 투자하기 마련. 장애 당사자들이 여행을 활발하게 즐기면서 해당 관광지를 이용하게 된다면 운영자들은 장애 당사자를 위한 편의시설을 마련할 수 밖에 없다.”며 정부와 사회, 장애 당사자 모두에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웰페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