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목소리 빠진 장애인 건강권법, ‘누굴 위한 법인가’
당사자 목소리 빠진 장애인 건강권법, ‘누굴 위한 법인가’
  • 황현희 기자
  • 승인 2017.09.2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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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개 장애계 단체는 장애인공동대응네트워크를 구성하고 20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건강권법 하위법령 개선요구 장애계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 57개 장애계 단체는 장애인공동대응네트워크를 구성하고 20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건강권법 하위법령 개선요구 장애계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애인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지원, 장애인 보건관리 체계 확립과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사항을 규정해 장애인의 건강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 건강권법).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오는 12월 30일 장애인 건강권법 시행을 앞두고, 지난 8월 18일 장애인건강주치의제, 건강검진기관 지정 등 구체화 된 하위법령을 입법예고 했지만, 장애계는  ‘당사자의 목소리도 반영 안 된 실효성 없는 법령’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등 57개 장애계 단체는 장애인공동대응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20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건강권법 하위법령 개선요구 장애계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치의제도, 방문 진료 사업 시행? 대상 제한, 규정 빠진 하위법령

장애인 건강권법에는 장애인이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는 장애인주치의 제도가 명시돼있다.

법 제16조 제1항은 국가‧지방자치단체는 장애 정도가 심해 건강에 대한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장애인에 대해 장애인건강주치의 제도를 시행하도록 했으며, 대상이 되는 중증 장애인의 범위와 내용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명시했다.

문제는 주치의 제도를 지원 받을 수 있는 중증 장애인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이다. 하위법령은 대상을 1~3급 중증 장애인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동안 장애계는 주치의 사업 대상에 의료진에 의해 건강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된 장애인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

▲ 한국근육장애인협회 정영만 회장.
▲ 한국근육장애인협회 정영만 회장.

한국근육장애인협회 정영만 회장은 “근육 장애는 증상이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발병과 동시에 재활치료와 물리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처음 발병했을 때는 등급판정이 안되지만, 이후 증상이 심해지면, 경증, 중증으로 가게 된다. 장애 유형 특성상, 장애가 발생되면 그때부터 진행이 덜 되게 하거나, 제대로 재활치료 받기 위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데, 하위법령대로라면, 장애의 진행이 심해져 중증 장애인이 되기 전까지 주치의 관리를 받을 수 없다. 중증 장애인만 주치의 사업 대상이 된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관 등을 직접 이용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위한 방문 진료 내용도 하위법령에 빠져있다.

장애인 건강권법 제9조는 장애인의 거주지를 방문해 진료 등을 행하는 방문진료 사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명시하며, 방문 진료 사업의 대상 기준과 방법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네트워크에 따르면, 중증 장애인 중 와상 장애인은 열악한 의료 접근성으로 병원 방문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이 건강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방문 진료가 꼭 필요하지만, 하위법령에는 방문 진료 세부 추진을 위한 조항이 전혀 없는 상태다.

네트워크는 “안양시, 전주시 등 많은 지자체는 조례를 통해 방문보건사업을 실시하고 있다.”며 “지역사회에서 이미 조례를 통해 방문 진료가 활성화되고 있는데 중앙정부는 왜 방문 진료 사업에 대한 내용을 규정하지 않는가. 이것은 직무유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소통 없고 차별만 있는 의료진-장애인 관계, 하위법령 규정은 ‘미흡’

장애인이 장애 유형에 따라 맞춤형으로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반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경우 의료 기관에 갈 수 있는 접근성 보장이 되지 않는다.

장애인 건강권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이 의료 기관을 이용하는 경우 장애인의 장애 유형과 정도, 모성보호, 성별 등의 특성에 따른 적절한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관련 사항을 하위법령에 명시하도록 했다.

▲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주현 공동대표.
▲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주현 공동대표.

하지만, 하위 법령은 ‘장애인이 특별교통 수단을 이용해 의료 기관 등을 방문하는 경우 지자체장은 차량 배차 등 운영에 있어 적절한 편의를 제공’이라고만 규정했다.

또한 청각장애인의 경우 의료 기관에 수어통역사가 없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 보완대체의사소통기기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경우도 의료진이 기기에 대한 이해가 없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이 부분도 하위법령에 빠져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주형 공동대표는 “언어 장애가 있는 경우,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으면 증상을 정확하게 전달받기 어렵다. 대부분 의사들은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결국 언어 장애인들은 동행인이 없으면 병원 진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장애인을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에 의사소통을 지원해주는 시스템 혹은 조력자를 배치한다면, 병원에 가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장애인 건강보건관리사업에 따라 시행되는 의료인 대상 장애인 건강권 교육도 핵심은 빠져있다는 지적이다.

장애인 건강권법 제14조는 장애인의 진료‧재활 등을 담당하는 의료인, 보조인력, 업무 담당자 등에게 장애인 건강권에 관한 교육을 실시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교육의 실시 시기‧내용‧방법 등에 필요한 사항은 시행규칙(하위법령)으로 정한다.

이에 하위법령은 의료인 대상 장애인 건강권 교육 내용으로 ▲장애의 정의와 유형 이해 ▲장애인과 의사소통 방법 ▲장애인 진료, 상담, 검사 등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시 유의사항 ▲관련 법령, 정책, 제도 이해 등이다.

네트워크는 “하위법령의 교육 내용은 장애인 차별 해소와 건강권 이해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다.”며 “장애인들이 의료 기관에서 겪는 차별은 여전하다. 시각장애인에게 ‘주사실 저쪽으로 가세요’라고 말하거나, 청각장애인에게 어려운 의학용어가 적힌 진단서를 아무 설명 없이 전달하는 등 차별이 계속 되고 있다. 형식적인 교육으로는 이런 부분이 해소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네트워크는 기자회견을 통해 장애인 건강권법 하위법령에 △의료기관 접근성 보장 위한 별도 이동수단, 의사소통지원체계 보장 △방문진료사업 대상과 기준 확대, 건광관리 예방차원의 구체성 있는 방안 담보 △포괄적 건강관리와 일원화된 건강주치의 제도 마련 △장애인 인권교육 의무화 △장애유형과 특성 고려한 맞춤형 건강검진 도입 △장애인 재활체육 구축 △의료비 지원체계 마련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 강경희 대표는 “장애인 건강권법이 왜 제정됐나. 당사자들이 병원을 갈 수 있고, 진료 받을 수 있는 의사가 있고, 엄청난 병원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면, 이법은 필요하지 않았다.”며 “장애인 건강권법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병원도 갈 수 없고, 의사를 만날 수 없고, 병원비 부담이 늘어났다. 그런데 법이 무슨 필요가 있나? 정부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해 진정 당사자를 위한 건강권법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