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장애인 영화관람권 보장 위한 차별구제청구소송 ‘승소’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장애계 단체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1심 판결 선고 이후,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강지향 기자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장애계 단체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1심 판결 선고 이후,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강지향 기자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시‧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조건에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화면해설, 자막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7일 김준형·박승규·오정윤·함효숙 씨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상대로 낸 ‘시‧청각장애인 영화관람권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청구소송’ 1심에서 이와 같은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들은 원고가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원고들이 관람하고자 하는 영화 중 제작업자 또는 배급업자로부터 화면해설과 자막파일을 제공받은 경우에 한해 시각장애가 있는 원고에게는 화면해설을, 청각장애가 있는 원고에게는 자막을 제공하라. 아울러 청각장애인 오정윤에게는 에프엠 보청기(일반 보청기에 비해 말하는 사람의 음성만을 더욱 명확하게 증폭시켜 언어이해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보청기)를 제공하라.”고 판결했다.

▲ 승소 소감을 전하고 있는 원고 함효숙 씨. ⓒ강지향 기자
▲ 승소 소감을 전하고 있는 원고 함효숙 씨. ⓒ강지향 기자

이어 “피고들은 원고들이 영화 및 영화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웹사이트를 통해 화면해설 또는 자막을 제공하는 영화와 상영관 및 상영시간 그밖에 장애인에게 제공할 수 있는 편의의 내용을 제공하라. 아울러 영화상영관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자료나 큰 활자로 확대된 문서를, 청각장애인을 위해 한국 수어 통역 또는 문자에 의한 정보를 제공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의 판결은 원고 측이 재판과정에서 청구했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인 결정이다. 이에 원고 측은 판결 이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원고 함효숙 씨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 ‘도가니’가 개봉했을 때, 영화를 보고 싶어서 이리저리 알아봤지만, 자막해설을 제공해주는 곳이 없어 볼 수가 없었다. 이렇듯 인기가 많은 한국 영화를 보고 싶지만, 자막해설이 없으니 볼 방법이 없었다. 친구들이 영화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항상 배제된 느낌이었는데, 앞으로는 친구들과 영화 이야기를 하며 서로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소송 연대단체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는 “너무 기쁘다. 법원이 장애인의 온전한 권리를 위해서 완벽하게 우리의 손을 들어준 판결.”이라며 “그동안 시‧청각장애인은 문화 향유에서 늘 배제된 존재였는데, 판결을 통해 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 같다. 영화관도 이제는 장애인을 고객으로 생각하며, 그들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계획 만드는 데 더 노력해 주길 바란다.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면 아낌없이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22개월의 재판 과정, 원고‧피고가 다퉜던 쟁점은?

재판 과정 동안 원고와 피고가 치열하게 다퉜던 사항은 ‘영화상영업자가 화면해설 제공의무가 있느냐’의 여부다. 이 부분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21조 1항이 규정하는 정보통신‧의사소통 편의제공의 ‘행위자’에 대한 해석이 갈렸다.

원고 측은 법에서 문화예술사업자도 편의제공의 대상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에 영화상영업자는 행위자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 측은 자막‧화면 해설을 만드는 것은 제작‧배급업자로 영화상영업자는 관계가 없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제21조 제5항은 영화, 비디오물 등 영상물의 제작업자 및 배급업자는 접근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 의무가 아닌 재량으로 간주된다. 이에 영화상영업자에게 자막‧화면해설 제공 요구는 무리한 법해석이라는 주장이다.

법률 해석이 다른 가운데, 재판부는 영화상영업자가 장애인에게 자막‧화면 해설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했다.

뿐만 아니라 피고 측은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지 않은 것은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피고 측은 비장애인이 자막과 화면해설이 나오는 화면을 볼 경우 불편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장애인이 원하는 만큼 모든 영화에 자막‧화면 해설을 틀 수 없다는 점과 자막과 화면해설, 보조기기는 비용이 많이 들어 영화운영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원고 측은 지난 10월, 영화 관람 시 다양한 보조기기가 충분히 상용화 될 수 있 있음을 검증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연회를 통해 검증이 이뤄진 기기는 ▲특수안경 ▲자막 처리기 애플리케이션 ▲화면해설 기기 총 세 가지로, 시·청각장애당사자와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검증단은 기기를 활용해 영화를 보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평가했다.

자막 처리기 애플리케이션은 개인 휴대폰으로 영화관에서 자막을 볼 수 있는 기기로, 영화에서 나오는 배우의 음성을 인지해 미리 입력된 자막 중 상영되는 화면에 맞는 자막을 선택해서 화면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또한 화면해설기기는 배우들의 표정과 행동, 영화 내 장면을 묘사해주는 음성파일을 수신해 이어폰으로 사용자에게 화면해설을 전달한다.

보조기술이 접목된 기기를 사용한 장애인 당사자들은 보완을 거치면 충분히 사용가능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즉, 22개월에 걸친 재판과 시연회를 통해 재판부는 원고의 주장을 모두 수용한 판결을 내리게 됐다.

한편 영화관에서 제공해야 하는 화면‧자막 해설 영화가 제작업자 또는 배급업자로부터 화면해설과 자막파일을 제공받은 경우로 제한한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원고 측 법률대리인 희망을 만드는 법 김재왕 변호사는 “처음에는 모든 영화에 대해서 자막과 화면해설 제공을 요구했다. 하지만, 영화상영업자들이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는 데는 부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제작업자나 배급업자로부터 자막과 화면해설 받은 경우만 지원을 해달라고 청구를 변경했다. 이 부분이 인용됐다.”고 전했다.

이에 원고 박승규 씨는 “판결을 계기로 앞으로는 모든 영화에 편의제공이 이뤄져 시‧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차별받지 않는 상황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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