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모금 광고 등 ‘빈곤 이미지’는 무엇을 낳았나

최근 온라인 커뮤티니 등에서 이른바 ‘패딩 후원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후원·모금에 대한 성찰과 인식이 요구되고 있다.

온라인에 떠도는 ‘패딩 후원 논란’의 내막을 살펴보면, 한 재단을 통해 어린이에게 매달 5만 원씩 후원하고 있는 A씨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자신이 후원하는 어린이가 원하는 선물이 있다면 알려 달라고 말했다.

이에 재단은 지난 11일 ‘해당 어린이가 특정 브랜드의 패딩을 원한다’고 알렸다. 이에 A씨가 해당 물품을 찾아본 결과, 20만 원 상당인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어린이는 피아노 학원도 다니고 있고, 이런 답변을 받고 그렇게 어렵지 않게 산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내용이 확산되자 재단은 해명글을 게재했다. 재단은 “A씨가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보내줄까 고민 중인데, 혹시 갖고 싶은 것 있니? 핸드폰 같은 것만 빼고, 특별히 원하는 것이 없으면 롱패딩으로 보내줄게. 답변 기다릴게’라고 편지를 남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에 해당 어린이와 어린이의 어머니는 주위 친구들에게 요즘 유행하는 브랜드를 물었고, 재단은 이에 따라 A씨에게 선물로 받고 싶은 특정 브랜드를 알려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글은 삽시간에 온라인상에 퍼지며 14일 기준 재단이 올린 게시물만 하더라도 437건의 댓글이 이어지는 등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저 아이나 가족이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 모르고 내가 겪어보지 않았지만 재단 후원이라는 게 못 먹는 아이, 교육 못 받는 아이를 후원하는 거잖아. 설령 20만 원이라도 30만 원이라도 뭔가 애가 꿈을 위해 악기가 갖고 싶다. 이랬으면 실망은 안했을 텐데 패딩 20만 원은… 나도 초등학생 때 패딩 20만 원짜리 안 입은 거 같다. 물론 10년도 더 전이지만 난 처음 글쓴이의 ‘이 애는 그렇게 어렵게 사는 게 아닌 거 같다’ 는 부분이 공감됨.”

“후원아동 부모는 생활능력이 없는데 후원자 돈은 우습게 봤다는 건가요? 11살짜리 애들이 뭘 안다고 고가의 등산복 브랜드, 제품명까지 얘기를 했단 건지 참. 게다가 그 나이 애들은 내년만 되어도 키가 쑥쑥 커서 그 패딩 못 입게 될 텐데. 매년 패딩 살 입장도 아니고.”

“애초에 사준다고 하질 말던가. 후원자가 처음부터 휴대폰 컴퓨터 롱패딩 이딴 얘기 안 꺼냈으면 후원아동이 저거 갖고 싶다고 얘기하지도 않았지. 어른이면 어른답게 행동하시길, 같은 어른인 게 부끄럽다.”

“가난은 벼슬이 아닙니다. 누가 사준다고 저렇게 대놓고 품명 적어 보내요? 하다못해 친척이 주는 용돈도 다 따져보면 기브 앤 테이크인데.”

“난 후원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어. 사실 ARS로 한달 3만 원 결제하기는 쉽지만, 어느 특정 아이를 선택, 지속적인 관심과 경제적 도움을 주기란 정말 쉽지 않거든. 후원자는 해당 아동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고, 선의의 만남을 추진했지만, 후원자에게 돌아온 건 뭐지? 만남 거절 의사와, 패딩의 브랜드 명칭, 사이즈뿐이었잖아. 설령 본인이 직접 사준다고 했어도 말이야.”

“진짜 후원아동은 뭐 예술도 하면 안 되고 무조건 가난하고 동정 받는 이미지여야 해요? 인권의식 바닥 친다. 정말. 20만 원짜리 패딩 사달랬다고 부들대면서 아이신상까지 퍼뜨린 사람이나 밑에 동조댓글 쓰는 사람들이나.”

-재단의 해명에 달린 온라인 댓글-

▲ 영국 가수 에드시런이 만든 아프리카의 어린이들 후원 독려 영상의 한 부분이다. 해당 영상은 피구호자를 수동적으로 불쌍한 존재로만 묘사한 자선 영상을 만든 유명인사에게 주는 상인 '2017년 녹슨 라디에이터상'을 받았다. 상을 준 단체는 영상이 아프리카의 정치 상황이나 빈곤의 구조적 원인 설명 없이 에드시런의 감상만 지나치게 부각됐다고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 피구호자를 수동적으로 불쌍한 존재로만 묘사한 자선 영상에 주는 '녹슨 라디에이터상'에 선정된 올해의 영상 한 부분. 해당 영상에는 유명가수 에드 시런이 나와 주목을 끌었다.

빈곤은 어떻게 정의되고 있나

지금 또 한 아이가 굶주림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배불리 먹는 것이 소망인 아이들 지구촌 굶주린 아이들의 희망이 되어 주세요.

병든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던 어린 두 손녀, 돈을 벌기 위해 타지에 간 엄마, 저혈당 쇼크로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할머니 사랑만 받아도 부족한 아홉 살 ○○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익숙한 듯 해내는 집안일. 이 겨울, ○○이의 소원이 얼어붙지 않도록 여러분이 도와주세요.

11살 ○○이가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낡고 오래된 집 칼바람 부는 마당, 차가운 수돗물 이곳에서 ○○이의 하루는 시작됩니다. 몇 년 전 헤어진 엄마, 몸이 불편한 할머니, 아픈 할머니를 보살피는 어린 손녀. 추운 겨울, ○○이와 할머니에게 따뜻한 손길을 전해주세요.

-미디어에 나온 후원·모금 광고-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언론을 통해 노출되는 빈곤은 극히 단편.”이라며 “가난한 사람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다양한 성격·성향을 갖고 있는 입체성 있는 사람이지만, 광고는 단순히 ‘약자’, ‘결핍된 사람’이라는 단편만 보여준다.”고 말문을 열었다.

광고 속 후원·모금 대상은 가난을 ‘이미지’화 하고 있다. 폐지를 줍는 모습, 한겨울 차가운 물로 씻는 모습 등 극단적이고 특정 모습만 부각시키고 있다. 이를 본 대중은 ‘나와 다르게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되고, 이는 곧 ‘가난’으로 고착화 된다.

이와 같은 편견은 이번 논란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가난한데 왜? 나도 못 입는 비싼 패딩을 가난한 사람이?’라는 질문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푸른복지사무소 김종원 연구원은 “이번 논란을 처음 접하고, ‘가난하면 패딩을 입으면 안 되나’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 광고를 통해 가난한 사람과 자기를 구분 지었던 사람들이, 실제 나와 비슷하게 생활(가령 비싼 패딩을 사는 등) 하는 모습을 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번 논란은 그 부분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광고에서 보이는 가난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빈민은 나와 다르게 어렵게 사는 사람’이라고 각인시킨다. 핵심은 ‘나와 다르게’다. 즉, 타자화를 통해 그들의 가난을 내 생활과 분리시키고, 곧 가난한 사람의 삶을 단정 짓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러한 광고를 보고 동참하는 후원자들은 ‘좋은 뜻’으로 시작한다 해도, 결국 배제·분리하는 현상에 일조하게 된다. 후원자와 후원을 받는 사람을 동등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닌, ‘늘 어렵게 사는 존재’,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 수 있는 존재’로만 남기 때문이다.

김윤영 사무국장은 “후원은 후원자에게 만족감과 효능감을 준다.”며 “후원자는 후원을 통해 ‘나는 어려운 사람에게 기부하는 소중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나아가 도덕적·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판단하게 한다. 이는 곧 후원을 받는 사람을 평가하거나 간섭하는 사태를 초래하기도 한다.”고 우려했다.

치열할 수밖에 없는 경쟁, 광고는 ‘더 자극적’으로

‘누군가가 한겨울 추위에 떨지 않게, 보다 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업한다는 후원·모금 기관의 광고는 왜 의도와 달리, 가난을 고착화하고 빈곤에 대한 편견만 확산시키는가.

일정 부분은 후원·모금 기관 수에 있다. 지난 2012년 이후 국내 방송 광고를 내보낸 곳만 20여 군데에 이른다.

김종원 연구원은 “후원·모금 기관이 많을수록 ‘더 많은 후원자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가난을 더 자극적이고, 적나라하게 보여줄수록 후원자의 수도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후원자 확보에 이와 같은 유형의 광고가 유용한 수단이 되는 것.”이라며 “특히 최근 규모가 커지고, 수도 많아지는 후원·모금 기관 사이에서 후원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광고 경쟁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빈곤 이미지’ 확산 아닌 ‘빈곤 해결’에 나서야

김윤영 사무국장은 ‘후원·모금 기관이 늘어나는 원인이 가난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면, 결국 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는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를 위해 국가는 마땅한 사회보장체계를 마련해 국민의 복지를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복지 사각지대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고, 이는 결국 현행 체계가 그 의무를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김 사무국장은 “빈곤 해결에서 국가가 나서는 몫이 적어, 민간에서 이뤄지는 잘못된 후원·모금 방식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빈곤 해결은 민간영역이 아닌, 공적 복지 지원으로 해결해야 한다. 광고를 통해 ‘누가 더 못사나’를 보여줘 후원을 받는 ‘빈곤 경쟁’이 아닌, 개개인의 삶에 부족한 부분을 국가가 메워줘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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