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연금 기초근로능력평가, ‘제2의 장애등급제’ 비판
장애인연금 기초근로능력평가, ‘제2의 장애등급제’ 비판
  • 황현희 기자
  • 승인 2017.12.25 12: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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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 변경희 교수, 장애인연금 지급 대상 기준으로 제시
장애계 “평가를 통한 연금 지급, 장애등급제와 다를 것 없다”

▲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지난 22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소득보장제도의 개선을 위한 토론회-장애인연금제도를 중심으로’ 토론회를 열었다.
▲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지난 22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소득보장제도의 개선을 위한 토론회-장애인연금제도를 중심으로’ 토론회를 열었다.

장애등급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장애인 연금을 기초근로능력평가(가칭)에 기반을 둬 장애인 연금 대상자의 근로 능력에 따라 차등 지급하자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해당 연구에 긍정 된 반응을 보였지만, 한편에서는 기초근로능력평가가 또 다른 장애등급을 양산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지난 22일 서울시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소득보장제도의 개선을 위한 토론회-장애인연금제도를 중심으로’ 토론회를 열었다.

한신대학교 재활학과 변경희 교수에 의하면, 장애인의 부족한 소득을 보충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공적소득보장제도는 당초 의미가 무색하게 장애인의 소득을 보완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

장애인소득보장체계를 구성하는 각 제도별 수급자 현황을 살펴보면, 장애인연금제도의 수급자는 32만8,000명으로 가장 많다. 뒤를 이어 장애수당 32만 명, 산재보험의 장해급여 9만4,000명, 국민연금의 장애연금 수급자 7만8,000명이다.

한국의 장애인 빈곤율이 34.5%지만, 전체 장애급여에 대한 지출은 GDP대비 0.6%로 OECD 회원국 평균 지출2.2%의 약 1/4에 그친다.

즉, 장애인의소득보장체계를 구성하는 제도들이 장애인의 생활 안정이란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담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 한신대학교 재활학과 변경희 교수.
▲ 한신대학교 재활학과 변경희 교수.

이에 변경희 교수는 기존 장애인소득보장체계의 근본 문제점으로 의학적 판단에 기반을 둔 장애등급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방식을 꼽았다.

그에 따르면 장애인소득보장제도의 금전 지원 목적은 신체·정신적 손상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손상에 따른 유급근로활동의 중단 내지 감소로 인한 장애인과 그 가족의 생활 곤란을 방지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의학적 장애 개념을 사용하게 되면 부상이나 질병 등으로 인한 신체·정신 손상과 그 정도를 반영할 뿐, 유급 근로활동 능력의 상실이란 개념을 직접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변 교수는 “소득보장영역에서 장애라는 개념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근로능력 내지 직업활동 능력의 상실로 정의하는 반면, 한국은 의료 진단에 기초해 정신·신체 손상으로 정의하고 있다.”며 “의료 기준에 의한 장애개념은 근로능력과 상관관계가 높지 않아 기능손상 정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소득활동이 가능한 자에게는 불필요한 급여가, 기능손상 정도는 약하지만 소득활동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필요한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문제를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변 교수에 의하면, 경증 장애인은 57.9%는 전혀 취업에 종사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신체·정신 기능의 손상 정도가 낮다는 이유로 장애급여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

또 최근 장애등급폐지가 국정 과제로 부각된 만큼 이를 계기로 의학적 장애로 인해 초래되는 경제 직업결과를 반영하는 새로운 장애 개념을 사용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변 교수는 기존 장애인연금 지급 대상 기준의 문제점과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연금 지급 방법 등을 고려해 장애인의 소득 보전을 위해 지원되고 있는 각종 제도의 지원 기준에 근로 능력 평가를 도입, 결과에 따라 소득을 보전할 수 있도록 기초근로능력평가도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평가·기초근로능력평가 근거로 ‘근로 능력 여부’ 따라 지급해야

기초근로능력평가도구 연구는 현재 진행 중이며, 지난 22일 발표된 제1차 평가지표는 크게 환경 평가와 기초근로능력평가로 나뉜다.

먼저 환경평가는 개인의 인적사항과 지역고용여건으로 분류된다. 개인의 인적자원은 학력, 성별, 장애 시기, 약복용 여부, 자격증, 취업 경험, 연령, 취업 경력이 있다면 다시 그 직업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보조공학 필요성 등이다. 지역고용 여건지역 내 실업률, 교통 여건, 지리적 위치, 지역 내 장애인고용공단 지사, 보건복지부 산하 직업재활센터와 직업재활시설 접근성 등을 포함한다.

기초근로능력평가 지표 부분에서는 손 사용 능력(물건 들어 올리기, 집어들기, 움켜잡기 등), 보행 능력, 감각·학습 능력, 시각 능력, 언어 능력, 사회성, 체력유지, 기억력과 집중력이 주요 평가 지표다.

변 교수에 의하면 기초근로능력평가도구가 연구·개발되기 위해서는 ▲평가 단계 표준화 ▲평가기관의 적절성 및 일자리‧직업재활 연계에 대한 대책 ▲평가지표 타당성 검증을 위한 시범사업 등이 필요하다.

그는 “기초근로능력평가결과에 의해 장애인연금대상, 일반고용 일자리 대상 그리고 직업재활시설 대상 등에 대한 판정 결과를 지역사회 내 일자리와 직업재활기관들과의 서비스 연계를 통해 장애인소득보장체계의 순환성을 실천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기초근로능력평가는 ‘가면 쓰고 나타난 장애등급제’

변 교수의 기초근로능력평가도구에 대한 발표가 끝나자, 참가자들의 지적과 비판이 이어졌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기룡 사무총장은 “장애등급제 폐지 논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폐지 이후 장애인연금제도의 신청 자격을 부여하는 선정 기준은 중요한 화두.”라며 “변 교수가 발표한 기초근로능력평가가 장애등급제보다는 발전된 접근이라고 생각하지만, 여러면에서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김 사무총장은 기초근로능력평가 역시 의학적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각 능력, 언어 능력, 체력 유지 등 평가 도구가 기능 상실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그는 “물론 환경 요소를 반영하려는 노력은 보이지만, 평가도구 역시 의학 관점에 기반한 문항들이 일부 발견돼 우려스럽다. 실제 장애인의 직업획득과 직업 유지 같은 직업 성공은 업체의 상황, 고용주의 태도, 장애인 고용을 지원하는 사회 제도 등 다양한 환경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근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지만, 지역사회의 고용 환경으로의 진입 장벽이 높아 본인 의지와는 관계없이 직업을 갖지 못하는 장애인의 소득 상실 문제를 더 고려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평가도구도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애인연금 지급 기준은 현재 수입액과 지출 비용만 확인하면 되는 것이지, 기능 수준 등 다른 수준을 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며 “모든 장애인에게 그 문이 다 열려있다면 평가도구를 엄격하게 개발할 필요도 없고, 수행하기 위한 행정비용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전했다.

김 사무총장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장애인연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산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장애인연금 지급 대상자를 확대하고, 지급 액수를 상향 조정하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연급 지급대상을 중증 장애인 중 소득 하위 70%로 한정하지 않고 기초노령연금과 같이 모든 중증 장애인을 대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또한 급여액의 적절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초급여 수준을 월 20만 원에서 월 4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부가급여의 경우 장애수당과 통폐합한 뒤 실제 개인별 장애로 인해 발생되는 추가 비용을 별도로 추가 지급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약 8,300억여 원 수준의 장애인연금 지원 예산은 적어도 3조 원 규모로 증액돼야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김 사무총장은 “장애인연금제도의 구체화 된 개편 방안을 검토하고 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하고 예산 확보 방안을 마련하는 논의가 전제돼야만 이와 같은 지급 기준 개편 방안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고 전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문희 사무차장도 기초근로능력평가제도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기초능력평가제도는 ‘장애를 개인의 결함으로 보는 시각’이 내포돼 있다.”며 “현대사회에서는 장애문제의 해결을 위해 당사자가 갖고 있는 문제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장애문제를 야기한 사회 결정 요인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발제자는 장애인 소득보장의 문제 해결을 위해 당사자가 가진 근로능력 내지 직업활동능력의 상실을 평가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이 사무차장은 기초능력평가제도 도입으로 장애인이 기초근로능력평가를 통해 근로 능력이 있다고 판정된다 하더라도 선진국과 같이 장애인 취업 프로그램이 본격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한편, 현재 일부 장애계 단체가 중증 장애인 등 공공일자리 1만 개 창출을 요구하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공공일자리 81만 개 창출 목표 중 장애인 일자리 1만 개 확보도 어려운 것이 한국사회 장애인 고용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초근로능력평가제도가 도입된다면 이는 근로능력이 있지만 노동시장에 진입 못하는 장애인들은 장애인 연금 등 각종 제도의 지원에서 심각한 불이익을 당하며 생존권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뿐만 아니라 기초근로능력평가 항목이 각 기업의 어떤 업무와 연계해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분석도 전혀 없는 상황이다.

이 사무차장은 “기초근로능력평가는 가면 쓰고 나타난 장애등급제.”라며 “결국 장애인근로능력평가는 근로능력이 있고, 취업하고 싶지만 노동시장에 진입 못하는 장애인에게 장애등급제보다 더 심각한 부작용을 나타낼 것이다. 결국 장애인당사자의 근로능력에 의해 각종 지원을 결정해야한다는 논리는 장애등급제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여러 비판에 대해 변 교수는 “의학적 관점을 축소하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한국은 유독 의학적인 것이 나쁘게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해외에 가보면, 제일 정확한건 의료라고 말한다. 의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문제다. 환경도 봐야 하지만, 양쪽을 다 봐야 한다.”고 반문했다.

이어 “기초근로능력평가 이후 노동시장 진입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며 “해외 사례 보면, 일단 기본 기초근로능력을 평가하고 평가를 통과하면 해당 직종 직무개발을 통해 구직을 한다. 물론 한국은 기초근로능력-고용이 연계되지 않는다. 그래서 해당 연구 진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앞으로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