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애인 인식, 국가 아니라 당사자 투쟁통해 성장
한국 장애인 인식, 국가 아니라 당사자 투쟁통해 성장
  • 하세인 기자
  • 승인 2018.03.1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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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2012 런던 패럴림픽 홍보 활동으로 사회 내 인식 변화
한국, 당사자의 권리는 투쟁으로 이뤄낸 것… 보조기기 등 환경에서 지원돼야

스포츠와 인권활동으로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증진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국장애포럼은 지난 8일 강원도 속초 롯데리조트에서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국제컨퍼런스’를 열고, 스포츠와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장애인의 생활체육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번 컨퍼런스는 장애인 생활체육과 관광권, 장애인 문화, 탈시설, 중증장애인의 노동권과 관련해 뉴질랜드, 대만, 미국, 영국, 일본, 홍콩 등 6개국 8명의 연사 등을 초대해 이야기를 들어보고, 국내의 분야별 현황과 향후 과제를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특히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에서 발달장애인당사자와 아세안자폐성장애네트워크, 자립생활센터 등 다수의 장애인인권활동가와 장애인 부모가 참가했다.

▲ @한국장애포럼
▲ @한국장애포럼

영국, 패럴림픽으로 사회참여 기회 확대

이날 참석한 영국 국립 패럴림픽 유산 신탁 비키(Vicky Hope-Walker) 프로젝트 매니저는 영국에서 패럴림픽 대회가 사회통합의 기회와 정책 등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비키 매니저에 따르면 지난 1948년 런던올림픽 개최시 패럴림픽에 영향을 끼친 루드윅 구트만 박사는 양궁대회를 개최해 최초의 패럴림픽 선수를 양성했다고 설명했다. 1952년 네덜란드는 국가대표팀을 이 대회에 파견했고, 구트만 박사는 이를 ‘장애인 올림픽’이라고 언급했다.

비키 매니저는 “구트만 박사는 스포츠를 통해 장애인의 사회적 재통합을 이뤄냈고, 사회 참여를 이끌어 내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국 스토크맨더빌에 위치한 국립 척주손상센터를 설립한 루드윅 구트만 박사는 2차 대전 뒤 부상을 당해 재활이 필요한 군인들에게 공과 스틱을 주며 스포츠를 도입했다.”며 “그 결과 패럴림픽의 기초가 됐으며, 당시 삶에 비극적이었던 군인들에게 사회참여를 이끌어내는 큰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그는 “루드윅 구트만 박사의 초점은 휠체어 이용자에게 맞춰진 측면이 있지만, 재활에 스포츠를 도입한 것은 장애인 건강권을 비롯해 모든 당사자를 아우르는 국제적인 스포츠행사의 뿌리가 됐다.”며 “루드윅 구트만 박사가 ‘여러분 모두를 납세자로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발언했다. 이것이 구트만 박사가 스포츠를 도입한 이유다. 당시 영국의 장애인은 타이핑과 목공 등 제한된 직업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스포츠 도입 뒤 국제 행사로 확대돼 장애인당사자의 사회참여 기회를 확대했다.”고 덧붙였다.

패럴림픽 이후 영국 사회 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불렀다. 시간이 흘러 2012 런던 패럴림픽에서는 그 영향력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영국인의 3/4가 패럴림픽을 지켜본 후 장애인의 역할에 대해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

2012년 런던 패럴림픽 당시 BBC와 LOCOG의 조사결과 ‘조사 응답자 3명 중 2명은 패럴림픽이 장애인에 대한 수용성을 증대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영국 내 장애인의 70%는 2012 런던 패럴림픽 대회가 장애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으며, 패럴림픽이 장애인 인식을 변화시킨 획기적 순간으로 인식됐다고 밝혔다.

사실 이러한 획기적 인식 변화는 많은 노력이 수반된 결과다.

채널 4는 장애인의 역량을 보여주는 홍보영상과 장애인이 호스트를 맡아 진행하는 코미디 쇼를 영국 전역으로 방송했다. 여기서 패럴림픽에 대한 홍보활동을 하면서 패럴림픽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모든 과정을 내보냄으로써 대중들의 인식을 제고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비키 매니저는 “패럴림픽을 단순히 선수들의 경기만으로 바라보고, 이에 대한 변화로 한정해서는 안된다.”며 “정기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정부와 국회의 정책마련과 예산확보가 필요하다. 또 당사자와 장애계 단체가 꾸준히 관리·감독해 정책 마련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한국장애포럼
▲ @한국장애포럼

국내 장애인 인식, 국가가 나선 것 아닌 당사자 투쟁으로 변화

영국과 달리 대한민국의 장애인 권리는 장애인당사자들의 투쟁을 통해 쟁취해온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이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장애계 단체)는 끊임없이 투쟁했고, 여전히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에 의하면, 지난 1988년 서울 패럴림픽 당시 장애인복지법(심신장애자복지법) 개정을 위한 투쟁이 시작됐고, 그 뒤 당사자 권리를 위한 투쟁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우리는 지난 2001년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며 이동권 투쟁을 했고, 뒤이어 교육권 투쟁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활동보조제도화, 탈시설, 발달장애인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싸워왔다.”며 “제정된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은 우리가 싸워서 이뤄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자 기준, 장애인수용시설 등 3대 적폐를 위해 지난 2012년 8월 21일부터 1,842일 동안 광화문에서 농성을 진행했다. 그 투쟁 덕분에 2017년 8월 박능후 장관이 농성장을 방문해 정부부처와 민관협의체를 구성한 것 또한 우리 투쟁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우리는 여전히 이동권, 노동권, 문화예술권리, 장애인연금, 장애인 활동지원 등 복지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며 “88 서울 하계패럴림픽 이후 30년 만에 다시 평창 동계패럴림픽이 열린다. 평창 패럴림픽이 단지 국제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당사자가 사회통합이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장애는 ‘신체조건’이 아닌 보조기기 지원 등 ‘사회·환경’이 만드는 것

이날 참석한 연세대학교 작업치료학과 김종배 교수는 ‘장애는 신체 기능에 제한이 있는 사람이 사회적, 물리적 환경을 만나 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1985년 서울의 환경은 ‘당사자로서 열악한 사회·물리적 환경’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활동보조서비스, 보조기기 공적 급여, 이동권, 교육권, 접근성, 인권보호 등을 제공하지 않았던 사회였으나, 33년이 흐른 2018년 서울은 보조기기 지원, 활동보조서비스 쟁취, 이동권·접근성 개선 등의 변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33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답게 살 수 없었지만, 휠체어로 인해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또 장애인콜택시, 지하철역 승강기 설치 등이 변화했고, 보조기기로 직업도 갖고, 운전도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환경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해주며, 이는 장애가 신체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며 미국 모션디자인스 메릴린 해밀턴 대표를 예로 들었다.

1978년 헹글라이더 사고로 척주손상을 입은 메릴린 대표는 휠체어농구, 장애인테니스 선수이며, 경량 휠체어를 최초로 제작한 사람이다.

김 교수는 “메릴린 대표가 휠체어를 가볍게 만든 것은 휠체어 이용자에게 자유를 준 것.”이라며 “휠체어 등 보조기기는 당사자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조기기는 당사자에게 자유를 주는 동시에 자존감을 높여준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당사자에게 맞는 보조기기가 아닌 예산 맞춤형 보조기기를 지원한다. 한국의 보조기기 지원은 OECD 국가 중 가장 미흡하다.”며 “당사자의 유형, 욕구에 맞는 보조기기 지원이 없다면, 당사자는 독립적 삶을 살기 힘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사자의 욕구에 맞게 국가가 보조기기 지원을 해야하며, 예산 또한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